단속 뜨면 막아주는 든든한 보호막 있다
성매매 업소를 중심으로 인근에 업소녀들을 위한 24시간 미용실·음식점·사채업 등 대규모 상권이 형성돼 있다. 고성준 인턴기자
담배 연기와 알코올 냄새가 바닥에 깔리고 짙은 화장품과 향수 냄새가 코끝에 닿는다. 오후 8시,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한 유흥주점 인근의 모습이다. 업소 앞은 한산한 편이다. 남성들이 하나둘씩 서성이기 시작하고, 조용히 그들을 반기는 종업원들만 있을 뿐이다. 업소 뒤편엔 ‘콜뛰기’라 불리는 검은색 중형차가 속속 들어오기 시작한다. 지하 주차장으로 통하는 길목이나 업소 뒷문이 위치한 곳이다. 차에서 내린 여성 종업원들은 종종 걸음으로 업소에 들어선다.
같은 시각, 분주해지는 곳이 있다. 강남의 일부 상권은 이 시간을 전후로 살아나기 시작한다. 업소 종사자들이 거주하는 논현동과 역삼동 일대의 원룸, 오피스텔촌과 업소 뒤편이다. 소위 말하는 나가요촌이다. 미리 출근 준비를 하지 못한 여성들은 집 근처 24시간 미용실과 네일아트숍 등을 찾는다.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머리와 화장은 점차 닮아가고 있다. 그동안 김밥 아줌마가 그 사이를 누빈다.
명품 대여점도 성황이다. 운동복을 입고 들어간 여성들은 저마다 마음에 드는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한다. 바깥에 위치한 노점들은 호떡과 붕어빵을 봉지에 눌러 담기 바쁘고, 길게 늘어선 편의점 계산대 앞의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오후 10시, 거리가 한산해지기 시작한다. 이제 업소 앞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적당히, 혹은 거나하게 취한 남성들이 업소 앞에 무리지어 나타난다.
기자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삼·선릉역이 닿아 있는 테헤란로 인근과 논현동, 대치동 등 강남 지역에서 성매매가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는 업소를 직접 파악했다. 하루에도 몇 개씩 개·폐업을 반복하는 데다 단속을 피해 음지에서 영업을 하는 이유로 정확한 집계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공식 통계 자료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경찰과 구청 단속 기록과 관계자 인터뷰, 현 유흥업소 업주와 종업원, 전직 마담의 증언, 그리고 국내 최대로 꼽히는 인터넷 유흥 커뮤니티 정보 등을 토대로 할 수밖에 없다. 또한 룸살롱과 같은 유흥업소부터 오피스텔, 카페 등 신·변종 업소 등을 전화·방문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방대한 취재 과정을 거쳐 확인한 내용을 바탕으로 보면 테헤란로 인근에서만 무려 330여 곳에서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실제 영업을 하는 업소는 287곳이었으며, 이들 가운데 성매매를 한다고 밝힌 업소는 120곳이었다. 나머지 업소들은 응답을 회피하거나 ‘상담 후 결정’ ‘방문 후 확인’ 등으로 대답했다. 전직 업소 마담은 “최근 룸살롱도 단속을 피해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개조해 영업을 하고 있다. 여기에 사업자 등록이나 정식 허가를 거치지 않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휴게텔, 오피스텔, 마사지 등 신·변종 성매매 업소까지 포함하면 1000여 곳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경찰청 등에 따르면, 미아리 집창촌이나 청량리588과 같은 대규모 성매매 집결지는 성매매 업소를 중심으로 인근에 대규모 유흥주점, 여성 종업원들의 거주지, 그들을 위한 미용실, 24시간 음식점, 사채업체 등으로 구성된다.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한 상권 구성도 비슷하다. 선릉역과 역삼역 주변에는 크고 작은 유흥주점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고, 그 사이는 립카페, 마사지 등 성매매를 제공하는 신·변종 형태의 업소들이 채우고 있다. 또한 강남역과 역삼역 인근엔 오피스텔을 빌려 성매매를 제공하는 업소가 자리하고 있다. 신논현역과 논현역 사이 주거지, 대치동 등 원룸, 오피스텔에는 여성 종업원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여성이 주 고객인 24시간 미용실과 피부 관리실, 음식점 등으로 상권이 형성돼 있다. 사채 사무실도 곳곳에 모여 있다. 불법 성매매가 거의 토착화된 것과 다름없는 수준이다.
심지어 한 업주는 “이 지역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면, 성매매 업소를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다. 실제로 이 지역의 상권은 얼어붙어 있다. 테헤란로의 주인들은 정보기술(IT) 기업들이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높은 임대료를 피해 비교적 값이 싼 다른 지역 오피스촌으로 떠났고, 수년 전부터는 판교로 대거 이탈하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현대, 삼성 등 대기업의 사옥도 이전했다. 서울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기로 손에 꼽히는 강남역이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이 지역 상권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앞서의 업주는 바로 이러한 요인이 성매매 업소가 강남 지역에 뿌리 깊게 내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업소 하나가 호황을 누리면 그 주변 상권이 다 일어선다. 미용실·네일숍·피부관리실·음식점 등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사채업자에 점집까지 장사가 잘 된다. 이 지역경제가 업소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며 “결국 이곳에서 생업을 이어 나가는 주민들이 우리(업소)편을 들게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동안 대대적인 단속이 있을 때마다 구청과 경찰서 등에 항의한 것은 업소뿐만이 아니었다. 곧바로 지역 사회 일부 주민들의 힘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과거 성매매 단속에 참여한 적이 있는 한 경찰 관계자는 “단속 과정에서 업소 입구에 경찰이 배치되면 막을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인근 상인들이나 여성들이 항의하러 찾아온다”라며 “(성매매) 업소들이 단속에 걸려 영업을 못하게 되면 수입이 급감해 임대료 감당이 안 된다는 이야기”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종종 주민들의 민원이나 신고를 받고 단속을 나가기도 하는데, 그러면 또 다른 주민과는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며 “그렇게 며칠을 시달리고 나면 온 몸에 진이 다 빠진다”고 전했다.
구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사무실에 항의가 들어오는 건 예삿일이고 심지어 구청장의 친척, 지인 등까지 알아내 직접 전화를 걸어온다”며 “이 때문에 구청장은 지난해부터 ‘성매매 단속을 나가기 직전까지 관련 정보를 자신에게 보고하지 말고 강력히 조치한 후 보고하라’고 했다”고 귀띔했다.
성매매 업소가 주거지·교육시설 등의 200m 거리 제한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강남에서의 업소의 ‘힘’을 보여준다. 강남 소재의 중고등학교 주변에서 성매매 관련 업소가 버젓이 영업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수년 전까지 성업을 하던 유흥주점은 자취를 감췄지만, 대신 그 자리에는 아파트나 사무실 등을 개조해 성매매나 유사 성행위를 제공하는 업소들이 채우고 있다. 한 업소 관계자는 “낯선 남자들이 매일 오가는데 인근 주민들이 모르겠느냐?”며 “전국에서 소문난 사설학원이나 학교 가까이에서 업소들이 영업하고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지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만큼 먹고사는 문제를 앞서는 건 없다는 뜻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여기에 앞서의 업주의 말에 따르면 경찰, 공무원 등에 ‘뒷돈’을 주는 관행이 사라졌어도 업주들이 단속 정보를 입수하는 것도 이러한 상업적 역학관계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는 “과거에는 업주들이 관청을 직접 관리했다. 업소에서 담당 경찰서 지구대, 여성·청소년계, 생활질서계 등에 각각 수십만 원가량의 ‘뒷돈’을 정기적으로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관청과 업주의 유착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이제는 이러한 관행이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업주는 “여전히 복수의 정보 입수 창구가 있다. 단속이 시작되면 어떤 식으로든 연락을 받는다”고 말했다.
강남의 성매매 업소의 경제규모를 추산한 통계나 자료는 없다. 일부 유흥업소들은 국내 ‘최고가’를 자랑하기도 하고 반대로 저가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숫자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신·변종 업소 역시 유흥업소와 상황은 비슷하다. 다만 과거 단속 기록에서 업소 하나가 연간 180억 원에서 300여 억 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볼 때, 강남 유흥산업의 경제규모는 매년 수천 억에서 수조 원까지 이를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 때문에 성매매 단속은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단속수사팀, 강남경찰서 수서경찰서 합동 단속팀은 성매매 집중단속부터 첩보를 입수하면 즉시 수사·단속에 나선다. 경찰은 ‘기소 전 몰수보전 제도’(범죄 혐의자를 기소하기 전 범죄 수익이나 이로부터 나온 재산을 처분할 수 없도록 미리 금지해놓고 유죄가 확정되면 몰수하는 제도)를 활용해 단속을 당해도 며칠 뒤 영업을 재개하는 행태를 차단하고 있다.
강남구청 역시 성매매와 전쟁을 선포하고 지난해 2월 성매매 관련 부서를 도시선진화담당관실로 격상, 특별사법경찰을 운용해 업소를 철거하는 등 경찰 단속과 사후 조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성매매 단속 강도가 높아지면서 적발되는 건수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업주들이 영업장을 쪼개 지분을 나눠 영업하거나 주택가 등으로 숨어 온라인이나 회원제로 업소를 운영하고 있어 뿌리 뽑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강력한 단속 외에도 근본적인 대책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