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개인의 일탈” 나몰라라 너무해
관치산업인 금융회사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책임소재를 따져 묻기 어렵다. 여의도 증권가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일요신문DB
문제는 관치산업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소재를 따져 묻기 어렵다는 데 있다. 잘못된 정책으로 발생한 혼란이나, 경영 실패로 나타난 수익성·건전성 악화, 사건·사고에 있어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보유한 기간 중에 벌였던 알짜 자산 매각과 사업포트폴리오의 붕괴, 수익성 악화, 과잉 배당 등. 이를 두고 론스타는 물론, 외국계 사모펀드에 은행을 판 금융당국 관계자 중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최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은행의 성과주의제도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실적주의 도입으로 무리한 영업이 가져올 사건·사고·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다만 금융회사 임직원이 일으킨 비리·횡령은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로 책임소재가 분명하다. 물론 임직원이 법을 어겼다면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아쉬운 점은 이들이 회사를 위해 여러 횡령을 저질렀다고 해도, 금융회사는 일말의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잘못은 개인의 일탈로 규정한다. 금융소비자의 권익이 더욱 강조되는 요즘, 금융회사의 이 같은 태도는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검찰은 재테크 서적 베스트셀러 저자인 A 은행 전 지점장 K 씨를 지난 1월 12일 기소했다. 2012년 K 씨가 서울 강남지역 지점장 시절 불법 사금융을 알선하고, 고객의 서명이 포함된 사문서를 위조한 혐의다.사연은 이렇다.
K 씨가 관리하던 중소기업 대표 L 씨는 S 씨의 회사에 연대보증을 맺고 있었다. 그런 중에 L 씨는 연대보증에서 빠지겠다며, S 씨에게 보증 이전계약 체결을 희망했다. 자기가 갖고 있던 보증계약을 S 씨에게 넘기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추가 대출 등의 문제로 보증 이전이 길어지면서 230억여 원의 대출에서 7억여 원의 연체이자가 발생했다. 보증 이전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 이자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했고, 서로의 논쟁이 격해지며 자칫 보증이전 계약이 깨질 위기에 놓였다.
이에 K 씨는 보증을 떠안은 S 씨에게 이 비용을 떠넘기기로 마음먹고 S 씨의 서명 등을 위조, 백지 계약서를 만들었다. 또 홀로 서게 된 S 씨가 보증 이전 계약을 받는 조건으로 20억 원 대출을 요구하자, L 씨에게서 돈을 꿔 S 씨에게 빌려주는 사금융을 알선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은행 지점장인 K 씨는 고객에게 사금융을 알아봐주는 한편, 이자 비용을 전가하기 위해 고객 명의를 도용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여러 후문은 있지만, 일단 K 씨는 보증 이전 계약이 무산될까, 고객이 이자비용을 내지 않아 회사에 손실이 되지 않을까 우려해 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한다.
론스타 먹튀 매각 관련 시위.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에 앞서 지난 연말엔 고객 돈을 횡령하고, 고객 명의로 증권계좌를 개설한 혐의로 B 증권사 직원 G 씨가 검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G 씨는 시스템 상품에 투자하면 위험이 적고 수익성은 높다며 고객을 꾀어 자신의 계좌로 돈을 입금시켰다. 이런 식으로 2013년부터 고객 11명을 대상으로 총 24억 3236만 원을 착복했다. G 씨는 또 보관 중인 증권카드를 고객 허락 없이 꺼내 현금입출금기에서 돈을 마음껏 빼 쓰기도 했다. G 씨는 또 2014년부터 총 7차례에 걸쳐 고객 명의를 도용해 증권계좌를 무단 개설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터지자 10억여 원의 피해를 입은 직장인 H 씨는 직원 관리를 못한 B 증권사에도 책임이 있다며 손실을 보상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돌아온 답변은 “우리도 피해자다, 문제가 있다면 소송을 하라”였다. 일부 피해자는 횡령한 돈을 돌려달라며 금융감독원에 진정을 넣었으나, 뾰족한 합의가 성사되지는 않았다. 검찰은 G 씨가 회사 측에도 피해를 입혔다고 공소장을 작성, B 증권사도 ‘공식적’인 피해자가 됐다. 피해자 H 씨는 앉아서 20년 회사 생활을 하며 힘들게 모은 10억여 원을 날릴 처지에 놓였다.
재계 관계자는 “금융회사는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다만 금융회사가 사회적·도덕적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며 “금융회사가 제도적으로 독립성을 보장받고, 이를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고, 강력한 처벌로 사고의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금융회사의 사고 방지와 신뢰 회복, 사건·사고에 대한 책임감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서광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