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유럽 연수를 마치고 온 황선홍 전남 코치.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지난 8일 경기도 분당의 집에서 만난 황선홍은 3일 전 독일 연수를 마치고 곧장 광양으로 내려갔다가 소속팀 경기를 지켜보고 올라온 터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2년 전 기자가 진행한 ‘취중토크’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당시의 얼굴보단 훨씬 건강하고 안정된 모습이었다. 인간미 가득 배어난 솔직함이 매력인 황선홍은 오랜만의 인터뷰에서 예의 그만이 갖고 있는 내공을 펼쳐 놓으며 유학 생활의 뒷얘기와 대표팀에 대한 걱정들, 그리고 이번에 은퇴한 홍명보에 대한 추억들을 풀어냈다.
마침 황선홍을 인터뷰한 날이 홍명보의 공식 은퇴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2년 먼저 은퇴한 황선홍으로선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다.
“생전 살 찔 것 같지 않던 친구가 최근에 4~5kg이나 체중이 늘었다고 하더라구요. 나잇살인가봐요. 독일에 있을 때 전화통화를 했는데 곧 은퇴 발표를 할 거라고 말하더군요. 이미 (명보의) 은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제가 은퇴할 때가 생각나 묘한 기분이 드네요.”
황선홍은 자신과 홍명보는 2002월드컵 직후 은퇴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자신은 그 시기를 맞춘 것이고 홍명보는 어학 공부를 목적으로 미국 프로팀에 진출, 선수 생활을 연장한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마치 조기축구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한다고 했어요. 부러웠어요. 영어를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왜 먼저 은퇴를 했냐고 물었다. 은퇴 직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욕심 부리지 말고 ‘여기까지’라고 선 긋고 싶어 은퇴를 결정했다”고 말한 당시의 그가 오버랩되었다.
“전 부상이 많았잖아요. 공격수이다보니 수비에 비해 체력과 스피드를 요구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좀 딸린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반면에 명보는 큰 부상이 없었어요. 영리한 선수죠. 체력 갖고 축구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
황선홍은 영국과 독일에서 10개월가량 코치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다. 영국에선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객원코치로 들어가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운영과 훈련 방법, 선수들의 생활 등을 가까이서 보고 느끼며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공부와 경험을 쌓았다. 독일에선 한때 이동국이 몸담았던 브레멘에서 연수를 받았다.
외국에서 생활하며 유독 히딩크 감독이 자주 떠올랐다고 한다. 히딩크 감독이 갖고 있는 수많은 장점 중에서 한국 축구의 특성을 재빨리 파악한 뒤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훈련 방법을 착안해낸 부분들이 지도자 연수중인 황선홍에게 ‘모델’로 제시됐기 때문.
“외국에서 아무리 좋은 것을 배워도 한국축구에 접목시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는 거잖아요. 히딩크 감독은 그런 부분을 잘 이끌어내신 것 같아요. 반면 쿠엘류 감독은 갖고 있는 능력은 엄청 많은데 한국축구에 대한 문화적인 차이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너무 유럽식을 고집했다고 생각해요. 공부를 해보니까 훌륭한 지도자는 공부만 해서 되는 게 아닌가봐요. 무엇보다 중요한 게 경험이더라구요. 히딩크 감독은 경험 면에서 탁월한 센스를 갖고 있는 분이었어요.”
“한국이 월드컵 때 90분 동안 쉴 새 없이 그라운드를 뛴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가장 많이 궁금해했어요. 솔직히 얘기해줬죠. 월드컵 직전 제주도에서 치른 강화훈련에서 한 달간 레이몬드라는 피지컬 트레이너에게 받은 인터벌 훈련이 전부라고. 사실이거든요. 그 훈련을 통해 한국팀은 90분을 풀로 뛰어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키울 수 있었어요.”
이른 아침부터 이론과 실기 수업이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매일 같은 얼굴을 마주하다보니 연수 과정이 끝날 무렵엔 절로 정이 들어 헤어지는 걸 섭섭해 할 정도였단다.
“언어가 가장 큰 문제였지만 같이 연수받는 친구들이 잘 도와줬어요. 영어 잘하는 사람들과는 일부러 친해지려고 노력했고 결국 그들의 가이드를 많이 받았죠. 30명 연수생 중 저 혼자서만 차를 가지고 다녔어요. 그 차 덕분에 사람들과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었어요. 외출할 때마다 선심 쓰듯 차를 이용할 수 있게 해줬으니까요.”
영국 유학 시절 초기엔 엉덩이 붙이고 앉아 공부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어린시절부터 운동장에서 공만 차다가 나이 먹어 책상 앞에 앉아 있으려니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고. 오죽했으면 “5시간 공부하느니 차라리 5시간을 공차는 게 더 낫다”고 하소연했을까.
순풍에 돛을 달지 못하고 있는 ‘본프레레호’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옮겼다. 유럽에서 생활하는 동안 대표팀 경기를 거의 보질 못해 정확히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토를 달았다. 그러나 보진 못했어도 들은 내용이 많다는 황선홍은 지금의 대표팀 후배들에 대해 이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젠 좀 가슴을 폈으면 좋겠어요. 자꾸 쪼그라들지 말고 우리가 ‘아시아의 왕’이라는 큰 생각을 가졌으면 싶어요. 너무 작아지는 것 같아 그게 서글퍼요. 오만, 몰디브, 베트남…. 월드컵 4강의 성적을 이룬 팀이라고 해도 물론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변은 한번만 있어야죠. 너무 자꾸 일어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마지막으로 유니폼이 그리운 적이 없었는지를 물었다. 은퇴를 후회하거나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 등이 남아 있진 않은지 궁금했다.
“은퇴 후 몇 달 동안은 좀 힘들었어요. 25년 동안 밥 먹듯이 하던 축구를 갑자기 안하니까 당연히 허무했겠죠. 잠시 잠깐, 유니폼을 다시 입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뿐이었어요. 끝난 건데요, 번복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요 뭘.”
황선홍은 11월 초 브라질로 마지막 연수를 떠날 예정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아내 정지원씨가 맡아서 운영중인 일식집 얘기가 나왔다. “개업 초에는 몇 번 나가봤는데, 어휴 정말 힘들었어요.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항의하는 손님들을 보면 제가 낯이 뜨거워지는 거예요. 장사,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