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인터뷰다운 인터뷰는 현대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훈련을 재개하기 직전 잠시 가졌던 휴가 때 이뤄졌다. 두 번째 만남에선 이전 야구장의 ‘심하게’ 군기 든 오재영이 아니었다. 인생에 한번 뿐인 신인왕 경쟁을 놓고 나름대로 즐길 줄도 아는 배짱 두둑한 예비 스타였다. 삼성의 중고 신인 권오준과 치열한 신인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오재영을 만나본다.
배칠수(배): 정말 나이가 어리십니다. 도대체 나랑 몇 살 차이가 나는 거야? 한 살, 두 살, 건너 뛰어 열 살…더 이상 셀 수가 없네. 하여튼 대단하세요. 고졸 신인이 프로 데뷔 해에 10승 올린다는 거 장난 아닌데.
오재영(오): ‘감히’ 10승을 목적으로 출발한 건 아니었어요. 입단 초반엔 1군에서만 생활해도 감사할 따름이었죠. 운 좋게 1군 선수로 활동했고 주위 분들의 배려에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어요. 실력과 노력 외에 운이 좋았어요.
배: 지금 삼성 권오준 선수랑 신인왕 타이틀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중이라고 들었어요. 현대가 정규리그 1위를 달성한 덕분에 안정권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죠?
오: 전혀요. (권)오준이 형이 저보다 성적이 더 앞선 상태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요. 아마도 한국시리즈에서의 성적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배: 솔직히 말해 보세요. 신인왕, 탐나죠?
오: 받고는 싶죠. 받으면 좋은 거고, 못 받으면 할 수 없는 거고. 너무 집착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죠.
배: 프로 경험이 전혀 없어 데뷔 초에는 선발이라는 자리가 엄청 부담됐을 텐데요.
오: 시즌 초반이 제일 힘들었어요. 선발로 나갔다가 5회 끝나고 클리닝 타임을 갖잖아요. 그런데 전 그 짧은 시간에 경기 리듬을 잃어 버렸어요. 클리닝 타임 끝나고 다시 등판하면 쉽게 무너지곤 했거든요. 처음에 그 징크스가 무척 괴롭더라구요.
배: 어느 선수들보다 상대팀 고참들 입장에선 고졸 신인인 오재영 선수가 만만하게 보였을 것 같아요. 경험도 미숙하고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면 그들 입장에선 ‘요리’하기 쉽잖아요.
오: 경기장에선 서로 똑같은 선순데요 뭘. 물론 선배님들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전 고참이 나온다고 해서 크게 위축되거나 떨거나 하진 않았어요.
배: 그래도 이상하게 잘 안 되는 선수가 있잖아요. 특히 강타자일수록 그런 상황들이 자주 벌어질 것 같은데.
배: 양준혁 선수가 혹시 기선제압 하려고 액션을 크게 취하는 편 아닌가요?
오: 글쎄, 그러신 것 같기도 하고…. 양준혁 선배님뿐만 아니라 다른 선배님들도 저랑 맞붙으면 일부러 더 노려보시고 스윙도 크게 하시고 그래요. 절 기죽이려고 하시는 행동이겠죠? 아마.
배: 지금 말은 이렇게 하지만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는 쟁쟁한 타자들을 상대로 좋은 공을 뿌려대기가 힘들 거예요. 혹시 자신만의 마인드 컨트롤 비법이 있나요?
오: 전 경기장 밖에선 굉장히 소극적이고 나서기 싫어하는 스타일이에요. 무지 내성적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야구장, 그것도 마운드에만 오르면 사람이 완전 달라져요. 투지가 불타오르고 마치 내가 ‘왕’이라도 된 듯 선수들을 내려다봐요.
배: 등판날 경기 직전 애국가가 울려 퍼지잖아요. 그때 속으로 무슨 생각해요?
오: ‘난 할 수 있다’를 수십 번 외쳐요. 자기 최면을 거는 거죠.
배: 프로와서 가장 당황했던 일 한 가지를 꼽는다면?
오: 훈련 시간에 이틀 연속 지각했어요. ‘겁대가리’가 없었나봐요. 모닝콜을 듣고도 그냥 자버리는 바람에 그런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는데 첫째날보다 둘째날은 정말 훈련장에 가질 못하겠더라구요. 혼나는 게 무서워서. 그런데 잔뜩 떨고 있는 저한테 코치님이 벌금을 부과하시더라구요. 그리곤 끝이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프로는 모든 게 돈이라는 사실을.
배: 평소 누굴 가장 만나고 싶었어요? 프로 입단 후 만난 야구 선수 중 가장 반가운 사람이 있었다면?
오: 정민태 선배님이오. 어려서부터 존경하는 야구 선수였거든요. 처음 상견례를 하는데 어찌나 떨리던지. 민태형이 저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신 것 같은데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흥분했었죠.
배: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곧장 프로로 진출했어요.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
오: 돈 때문이죠.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어요. 프로 가서 돈을 벌고 싶었습니다. 첫 월급 탔을 때 정말 기분 좋더라구요.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는 것 같아 겁나게 행복했어요.
배: 자, 이제 대망의 한국시리즈가 다가오네요. 지금 한창 포스트 시즌이 진행중인데 글쎄, 신인이 한국시리즈까지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 남다를 것 같아요.
오: 엄청난 행운이죠. 시즌 초반엔 1백33게임이란 경기수를 보고 ‘언제 다 끝나나?’ 싶었거든요. 겪어 보니까 ‘언제 끝났나’ 싶어요. 한국시리즈를 기다리는 지금 심정에선 또 ‘언제 치르나?’ 싶은데 꿈을 이루고 나면 순식간에 지나간 듯하겠죠? 욕심 내지 않을 거예요. 생애 최초의 경험인 만큼 후회하지 않는 경기들을 만들어야겠죠. 칠수 형님도 응원 보내주세요. 꼭 그래주실 거죠?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