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조정’ 근거로 든 통계가 참 묘하네
지난 2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16 경영계 임금조정 권고’를 발표하며 함께 내놓은 ‘우리나라 대졸 초임 분석 결과’다. 경총도 한·일 간 통계 기준의 차이로 엄밀한 비교는 어렵다는 전제를 달기는 했으나, 논란은 피할 수 없었다. 경총은 지난해 10월에도 ‘2015년 임금조정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서 4년제 대졸 신입사원 초임이 월 290만 원이라고 밝혀 한바탕 파문이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대졸 초임’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경총이 논란을 무릅쓰고 대졸 초임에 집착하는 까닭을 짚어봤다.
지난 2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내놓은 ‘2016 경영계 임금조정 권고’가 부적절한 통계를 근거로 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위치한 경총회관. 이종현 기자
경총은 매년 ‘경영계 임금조정 권고’와 ‘임금조정 실태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임금조정 권고는 현재 경제 상황에 맞춰 각사 직원들 임금수준을 결정할 때 참고자료로 삼으라는 의미다. 실태조사는 앞서의 권고를 얼마나 잘 반영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공식 통계자료를 가지고 대졸 신입 초임 비교 자료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총이 이번 권고를 통해 어떤 의도를 내비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최근 5년 동안 경총에서 내놓은 4년제 대졸 초임을 살펴보면 2011~2015년 각각 월 242만 원, 255만 원, 265만 원, 278만 원, 290만 원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전년대비 대략 4~5%포인트씩 꾸준히 임금이 상승한 셈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은 2011년 3.7%를 시작으로 2012~2014년 각각 2.3%, 2.9%, 3.3%를 기록했다. 지난해 성장률은 2% 후반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경총 조사에 대입해보면 2~3%대의 저성장 추세 속에서도 대졸 초임은 과도하게 상승을 거듭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때문에 경총은 올해 임금조정 권고 발표에서 “2016년 임금은 전년 수준에서 동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못 박았다. 다만 “이는 인건비 절감이 목적이 아니라 임금 인상 여력이 있는 기업은 그 재원으로 신규채용을 확대하고 취약 계층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데 활용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더불어 2015년 300인 이상 기업 대졸 정규직 초임(고정급 기준) 평균이 3646만 원임을 근거로 “대졸 정규직 초임이 3600만 원 이상인 기업은 과도한 초임을 조정하여 그 재원만큼 신규채용을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그런데 경총이 발표한 임금 통계에서 한·일 양국의 비교기준이 논란이 되고 있다. 표본을 살펴보면, 한국은 근로자 300인 이상 대기업의 34세 이하 대졸 이상 정규직을 기준으로 삼았다. 일본의 경우에는 1000인 이상 대기업의 24세 이하 대졸 이상 상용직을 기준으로 했다.
먼저 근로자 수로 본 기업의 규모에서부터 큰 차이가 난다. 또 일반적으로 한국이 일본보다 취업연령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도 표본에서의 10세 차이는 지나치다는 분석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바로 ‘상용직’이다. 일본의 상용직은 한국의 정규직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상용직 근로자란 ‘고용계약기간이 1개월 이상, 매일 일정시간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 즉 상용직에는 비정규직과 계약직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한국 정규직과 일본 상용직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 실무를 담당한 경총의 임영태 경제조사1팀장은 “실제 임금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기업 규모 등 상이한 부분은 양국의 통계상 제약으로 불가피한 부분”이라며 “원 자료로 활용한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는 정액급여와 특별급여가 모두 포함된 것인데, 일본 후생노동성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에는 정액급여(초임급)와 특별급여(상여금 등)가 나뉘어 조사됐기 때문에, 일본의 경우에 초임급과 연간 상여금 등을 합쳐 대졸 초임을 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특별급여액 통계자료가 20~24세의 대학·대학원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24세 미만 근로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오해가 나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임 팀장은 “한국의 경우 조사대상 연령이 34세 이하 근로자 중에서 경력연수 및 근속연수 1년 미만인 근로자만 대상으로 했다”면서 “사실상 이들은 모두 신입근로자에 해당된다”며 “국내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의 91%가 정규직이다. 결국 일본과 같은 상용직을 서로 비교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경총의 권고를 대졸 초임을 삭감하자는 쪽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자는 목소리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일종의 ‘잡셰어링’을 하자는 말이다. 그러나 잡셰어링은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시도했다가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2011년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초임 삭감 정책은 실패했다. 임금 삭감으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6개월짜리 단기 인턴이 대부분이었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경영 컨설팅업계 관계자는 통계조사 자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통계조사를 한 후 결과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과를 정해 놓고 그에 맞춰 통계조사를 만드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실제로 정부 기관이나 기업들에서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 정해진 결론에 들어맞도록 필요한 통계자료만 활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대졸 초임’은 경총의 이번 임금조정 권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논거로 만들어진 셈이다. 단순히 대졸 초임이 과도하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일본과 같은 선진국과의 직접 비교가 훨씬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경총이 발표한 ‘4075만 원’이라는 대기업 정규직 대졸 초임이 얼마나 많은 공감대를 이끌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