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지스(왼쪽), 로페즈 | ||
시즌이 끝나면 외국인 선수들은 아내와 가족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린다. 한국시리즈에 출전한 현대와 삼성의 외국인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상상하지 못했던 무승부가 3경기나 나오면서 미리 비행기편을 예매했던 이들의 출국 일정도 덩달아 춤을 출 수밖에 없었다.
브룸바, 호지스, 로페즈는 9차전 마지막 경기가 끝난 다음날인 지난 2일 각자의 고향인 미국 오클라호마, 휴스톤, 도미니카 산토도밍고로 떠났고 피어리만 하루 늦은 3일 오후 미국 LA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피어리는 가장 늦게 한국을 떠나는 여유(?)를 보였지만 사실 이번 무승부로 가장 마음고생(?)이 심했던 선수가 바로 그였다. 피어리는 9차전이 열리던 1일 LA에 있는 아내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국시리즈 7차전이 끝나고 3일이나 지났는데 왜 돌아오지 않느냐며,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다는 등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이에 대해 피어리는 “3경기 무승부라는 상상도 못한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면서 “아내에게 한국의 야구 제도를 설명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를 설득하느라 전화비가 상당히 나왔을 것 같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팀 우승과 함께 MVP 후보에도 오른 브룸바도 싱글벙글 여유를 감추지 않았다. 올해 한국생활 2년째를 경험한 브룸바는 “팀 우승의 견인차가 되어서 무척 기뻤다”면서 “지금까지 한국 프로야구에서 2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안아본 외국인 선수가 있으면 나와 보라”며 강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비록 우승컵을 놓친 호지스와 로페즈는 아쉽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면서도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은 편하다고 고백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한 모습으로 김응용 감독에게 ‘찍힌’ 호지스는 “형편없이 무너져 스스로에게 실망 많이 했다”면서 “김 감독의 스타일은 조금 유별난 것 같은데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외국인 선수들과는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며 김 감독에 대해 ‘감히’ 평을 내렸다.
▲ 피어리(왼쪽), 브룸바 | ||
한편, 외국인 선수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시리즈 무승부 경기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브룸바는 “보도 못하고 듣도 못한 이런 제도는 앞으로도 경험하기 힘들 것”이라면서 “정규리그 우승팀이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기다렸다가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기간도 너무 길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피어리도 “10개월 동안 정규리그를 치러왔는데 한국시리즈에서 무승부로 일정이 더 늘어난 것은 난센스”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 시즌 이상 국내 프로야구를 접한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과연 어떤 선수들이 인상적인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올 시즌 타격 1위 브룸바가 꼽은 제일 무서운 투수는 박명환(두산)과 임창용(삼성)이었다. 볼도 빠르지만 볼끝의 변화도 심해서 가장 승부하기 까다로웠다는 이유에서다. 로페즈는 동료였던 김종훈(삼성)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김의 스윙이 너무 좋아서 어느 팀에 가더라도 자기 몫을 해낼 수 있는 선수”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현대 원투 펀치의 핵심이었던 피어리는 한국 타자들에 대해 “일본처럼 정교한 것도 아니고 미국처럼 파워가 넘치는 것도 아닌데 그 두 부분을 절묘하게 혼합한 것 같다”는 말로 승부가 쉽지 않았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호지스는 “배영수의 피칭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면서 “타향살이하는 나에게 가족 이상의 애정을 보여준 권오준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