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미 선수. | ||
이영미(이): 정말 소식 궁금했어요. 얼마전 퀄리파잉스쿨에 다시 도전해서 내년 시즌 풀시드를 땄다는 뉴스는 들었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정일미(정): 귀국해서 기자는 만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걸렸네요(웃음).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구요? 그걸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고생으로 시작해서 고생으로 끝난 한 해였죠.
이: 그러고 보니 도통 근황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대회에 출전은 하셨던 거죠?
정: 당연하죠. 신문에 나려면 아주 성적이 좋거나 아주 성적이 나쁘거나, 뭐 둘 중 하나에 해당돼야 하는 거잖아요. 2003년 8월에 미국가서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했다가 풀시드를 따긴 했는데 올시즌 23번 대회에 출전해서 컷을 통과한 게 다섯 번밖에 안돼요. 시드 자격도 유지 못해 다시 ‘예비고사’를 치러야 했죠. 그래서 뉴스거리를 제공 못했어요. 정일미의 골프 인생에 가장 참담하게 보냈던 지난 1년이 아니었나 싶어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1년이이기도 하구요.
이: 외국 생활이었으니가 당연히 힘들었을 거라고 짐작은 돼요. 그런 거 말고, 또 어떤 게 견디기 어려웠나요.
정: 물론 미국에 처음 갈 때는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성적이 안 나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길 작정이었죠. 그런데 그런 거 혹시 아세요? 80점은 되는 선수가 빵점 되는 것 같은 기분, 골프의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 것 같은 위기감, 뭐 그런 복잡한 감정들이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컨트롤이 잘 안됐어요. 심할 때는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내 골프가 왜 이것밖에 안 되지? 해도 해도 안되는 게 골프다 라는 한탄 등 잡다한 생각들의 연속이었죠.
정: 처음이었어요. 한국에선 잘나갔잖아요. 그걸 극복하는 게 더 힘들었어요. 한국에서의 화려함을 잊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내 자신이 점점 초라해지더라구요. 별 볼일 없는 골퍼라는 생각에 잠도 안 왔으니까요. 그런데 그 시기가 나한테는 쓴 약이 됐던 것 같아요. 인생 공부를 톡톡히 했거든요. 미국 가서 6개월은 충격의 나날이었고 그 다음 6개월은 적응해 가는 시간들이었다면 설명이 되겠어요?
이: 미국 LPGA에서 활동하는 다른 한국 선수들과의 관계는 어땠어요?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궁금해요.
정: 그들한테 방해될까봐 내가 먼저 피했어요. (박)지은이처럼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친구는 사심 없이 도와주려고 해요. 그런데 다른 선수들과는 좀 힘들더라구요. 기대하다간 상처받을 것 같아 내가 먼저 마음을 접었어요. 쉽게 돌아가지 말고 직접 부딪히다보면 더 빨리 배울 수 있을 거라 믿고 하나 둘씩 걸음마 연습을 했죠.
이: 한국에선 ‘주류’에 속했던 선수가 미국에서 갑자기 ‘비주류’로 떨어진 듯한 느낌이었겠어요.
정: 금세 적응 안됐어요. 그동안 부모님 울타리 안에서 대우받고 살다가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내몰린 기분이었으니까요. 사람, 성격, 인간성, 이런 부분에 대해 다양한 경험과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2년 연속 Q스쿨을 통과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만약 이번에 실패했다면 한국으로 돌아올계획이었나요?
정: 네. 실패했더라면 미련 없이 귀국했을 거예요. 잠시 한국에서 숨고르기 한 후 재도전했을 겁니다. 돈도 많이 썼어요. 스폰서도 없고 상금도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미국 생활이 부담스럽기도 했죠. 잠시 갈등도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투자로 생각하려구요. 모아 둔 돈 까먹는 거 아까워했다간 아무 것도 못할 거예요. 설령 내가 컷오프로 내몰린다고 해도 골프 못 친다고 손가락질 받는 건 아니잖아요.
이: 맞아요. 굉장히 씩씩해진 것 같아요.
정: 힘든 표정 지으면 불쌍하게 보실까봐 ㅋㅋ. 난 LPGA 우승이 목표가 아니에요. 우승보다도 내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런데 내년엔 그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미국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 왜냐구요? 어휴 어서 동계훈련 시작해야 되잖아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