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향기’로 식상한 표심 파고들기
▲ 강금실 전 장관이 지난 6일 열린우리당 입당식 후 선물받은 부채로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최고위원에게 부채질을 해주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지만 강 전 장관에게는 아직도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다. 그의 모습에는 여전히 기존 정치인과 구별되는 뭔가 독특함이 가득하다. 혹자는 이를 ‘신비함’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이 그의 인기를 유지시키는 비결이라는 분석도 많다.
실제로 시작부터 달랐다. 강 전 장관은 지난 5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면서 서울의 미래를 그린 ‘그림’ 대신 ‘색깔’만 들고 나왔다. ‘보라색’이었다. 보라색 정장을 차려 입고 보라색 구두를 신고 보라색 목걸이 귀고리 반지를 했다. 보라색 아이리스가 꽂힌 탁자 앞에서 읽어내려간 출마 선언문도 보라색이 도는 감성적인 단어들로 가득했다.
강 전 장관은 선언문에서 자신을 ‘소외된 이웃을 향한 빛의 전사’로 규정했다. 또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서는 ‘더 좋은 사회를 향한 창조적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보라색을 상징적인 색깔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파란색과 빨강색이 섞인 보라색은 화합을 의미한다”며 ‘경계 허물기’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로서 첫 일정으로 7일 오후 청계천을 찾았다. 청계천은 이명박 서울시장의 대표적인 치적으로 꼽힌다는 점에서 이날 방문은 의미가 남달랐다. 선거캠프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오영식 의원은 “청계천 방문 일정은 강 전 장관이 정했다”며 “경계 허물기를 통한 아름다운 실험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강 전 장관은 그동안 한나라당 예비후보들에게 “이미지만 있고 콘텐츠는 없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이러한 비판은 일정 부분 맞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그는 이번에 논리가 아닌 이미지로 유권자에게 다가섰다. 머리보다는 가슴을 파고드는 이른바 ‘감성정치’의 전형을 선보였다. 논리에 능한 변호사 출신이지만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한 도구로 ‘설득’이 아닌 ‘감동’을 선택한 것이다.
▲ 5일 서울시장 출마 선언 직후 꽃을 들고 인사하는 모습. | ||
한국 정치사에서 본격적인 감성정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2002년 대선에서 감성정치로 톡톡한 재미를 봤다. 당시 한 줄기 굵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는 노무현 후보의 모습을 담은 광고는 유권자의 가슴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또 ‘바보 노무현’이라는 구호도 지역감정에 우직하게 맞서온 노 후보의 정치 역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감성정치를 통해 지난 2004년 4·15 총선의 판세를 흔든 바 있다.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박 대표는 TV연설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이를 계기로 영남을 중심으로 동정론이 일기 시작했고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기사회생했다.
강 전 장관의 감성정치도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특히 강 전 장관이 보라색을 통해 구축하려는 ‘경계 허물기’에 대해서는 ‘순수한 정치 실험’이라는 시각보다는 고도의 선거 전술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에 대한 한나라당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다.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강 전 장관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예비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다. 한나라당 지지자의 상당 부분이 지금 강 전 장관을 지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선거 구도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싸움으로 전개되면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강 전 장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이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붙잡기 위해 강 전 장관은 처음부터 편을 가르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싸이 미니홈피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아래는 미니홈피에 올린 학생시절 모습. | ||
한 정치분석가는 이와 관련해 “개인적 인기와 감성에 의존한 화해 전략으로 낮은 당지지도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거부 정서를 비켜가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서울시장으로의 자질 검증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큰 변수”라며 “한나라당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될 경우에도 ‘평화’가 유지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 전 장관 측은 ‘경계 허물기’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향한 진정성을 담고 있다고 강조한다. 캠프에서 기획을 맡고 있는 민병두 의원은 “강금실의 정치 화두는 ‘패러다임 시프트’이고 이는 생각 문화 행동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라며 “블럭, 계층, 이념, 정파의 벽을 넘어서는 정치를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장관 측 다른 관계자는 “강 전 장관이 본래 각 세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마를 고려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정치적 싸움에 휘말리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한 철학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연 ‘험하디 험한’ 선거전에서 강 전 장관의 정치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