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으로 구형보다 중형 때린 까닭은
박원순 서울시장(작은 사진)의 아들 주신 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혐의로 기소된 양승오 박사(왼쪽)와 변호인 차기환 변호사가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 공판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판결을 두고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재판부가 검찰의 구형보다 몇 배 많은 벌금을 선고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재판부가 검찰 구형보다 더 중한 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검찰과 달리 재판부는 허위사실 유포를 합리적인 의혹 제기로 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약 15개월 전. 검찰이 양승오 박사 등 7인의 피고인들을 기소하며 적용한 죄명은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였다. 주로 문제된 것은 박원순 시장의 아들이 대리신체검사를 받았다는 취지로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것이다.
허위사실공표죄는 후보자를 지지하는 측에서 당선시킬 목적으로, 혹은 후보자를 반대하는 측에서 낙선시킬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로 나뉘는데, 이번 사안은 후자다. 후자의 범행은 허위사실을 유포하였으되, 허위사실인 줄 알면서도 고의로, 낙선시킬 목적이 있을 때 성립한다. 당연히 이 죄는 허위사실이 아니면 적용될 수 없다. 따라서 재판부는 박주신 씨가 대리신검을 받았다는 등의 주장이 허위사실인지 아닌지를 살펴볼 수밖에 없다.
재판의 핵심인 이 쟁점을 두고 1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증거조사 등 공판의 주된 다툼도 집중됐다. 재판부는 “양승오 씨 등이 제기한 의혹은 구체성과 신빙성이 없다”며 “자생병원과 병무청, 세브란스병원에서 촬영된 MRI 영상의 피사체는 모두 주신 씨의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대리신검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당시 녹화자료와 목격자 진술 등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주신 씨가 직접 촬영한 사실이 확인된다고 했다. 즉, 허위사실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쟁점은 고의다. 허위사실인지 몰랐고 그 모른 것에 나름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무죄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재판부는 “주신 씨의 병역비리 의혹은 앞서 검찰 등 공적기관을 통해 무혐의 결론이 났는데도 양 씨 등이 합리적 근거 없이 단순히 추상적 수준의 의심만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며 합리적인 의심이 아닌 고의가 있다고 봤다.
낙선시킬 목적에 대해서는 양 박사가 의혹 제기한 시점이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둔 때였고 피고인들끼리도 서로 박원순 시장을 낙선시키자는 내용을 주고받아 쉽게 인정됐다. △허위사실 여부 △고의성 △낙선시킬 목적을 모두 인정한 재판부의 결론에 따라 허위사실공표죄를 구성하는 요건이 충족됐다.
재판부는 이와 같은 결론을 통해 피고인별로 검찰 구형보다 높은 1500만 원에서 700만 원까지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박원순 시장 측 황희석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명박 씨의 BBK 의혹을 제기했던 정봉주 전 의원의 재판과 타블로의 학력 문제에 관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던 타진요 재판을 보면 이번 판결이 ‘센’ 처벌은 아니다. 타진요 사건에서는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양승오 박사 측 차기환 변호사는 “몇몇 증거를 검토조차 하지 않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문을 보면서 항소할 계획이 있다”며 “판결 내용에 비춰봤을 때 대한민국의 상황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생각도 들지만,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라도 계속 싸워 나가겠다”고 밝혔다. 1라운드가 끝났지만 항소심을 통해 2라운드로 넘어가는 셈이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차라리 의혹 제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나왔으면 좋겠다. 이미 한 쪽에서 의혹을 제기해 공개 신검까지 했는데 이쪽에서 하라고 하면, 저쪽에서 하란다고 또 공개신검을 해야겠냐. 만에 하나라도 공개 신검을 또 다시 할 상황이 있다면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일 것이다”라며 “하지만 타깃을 잘못 정했다. 사회정의를 위한다는 저들이 제대로 대상을 잡아 박 시장 의혹을 추적하는 노력을 들였다면 사회가 훨씬 공정해질 것이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형사 27부 법정에서 생긴 일 투석받는 방청객 피 역류 ‘유혈사태’ 지난 1월 20일 검찰의 구형이 있던 날, 지난 2월 17일 판결이 있던 날은 재판을 보기 위해 보수단체들이 몰린 날이다. 검찰 구형 날은 초반부터 말 그대로 ‘피가 튀었다’. ‘역사적인 날’인 만큼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투석을 받는 환자 A 씨가 재판을 보겠다고 최소한의 안정도 취하지 않고 왔기 때문이다. A 씨는 방청석에 앉아 있다 피가 역류해 재판정 안과 바깥에 엄청난 양의 피를 뿌렸다. 갑작스런 ‘유혈 사태’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자해한 줄 알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수단체 소속 B 씨는 “나도 대한민국이 얼마나 썩었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왔다”며 “피를 보고 놀라긴 했지만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이날은 검찰의 발표 직후에는 야유와 욕설이 쏟아졌고, 법정 내에서는 특정인 몇몇을 지목해 ‘한 번만 더 소란하게 굴면 퇴정시킬 것’이라는 엄포로 겨우 조용히 시켜 재판을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사실 300여 개의 증거목록을 읽는 데만 1시간, 낮에 시작해 밤늦게 끝나는 지루한 공방전에서 이날 모든 사람들을 잠시나마 주목하게 만든 발언은 양승오 박사 측 변호인의 최후진술이었다. 그는 “저는 ‘대한민국 3대 명예훼손 사건’을 모두 담당했다. 강용석 전 의원 명예훼손 사건, 타블로 명예훼손 사건, 그리고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비리 혐의 사건이다”며 “하지만 지난 두 번의 사건과 이 사건은 다르다. 현명한 판단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판결이 있던 날도 마찬가지다. 박원순 시장 아들 주신 씨의 공개검증을 진행했던 엄상익 변호사가 등장할 때는 야유가 나왔고, 양 박사 등에게는 격려의 말이 쏟아졌다. C 씨는 “양 박사는 우리 모두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 너무 힘든 일을 하고 계신다”고 격려했다. 이날 재판부에 큰 소리로 반감을 드러내거나 야유, 욕설을 한 방청객들은 퇴정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결국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하자 방청석에서는 한탄이 쏟아졌다.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죽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삼삼오오 앉은 방청석에서는 자신들끼리 ‘말이 안 된다’ ‘항소심이 남아 있다’ 등의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