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꿈 되살린 ‘빅 가이’ 뉴욕대첩
▲ 서재응이 시련을 이겨내고 올시즌 첫승을 올렸다. | ||
2003년 메츠의 루키 투수로 9승을 거두며 방어율 3.82라는 화려한 성적표를 남겼던 서재응은 2004년 시즌 5승10패에 방어율 4.90으로 부진했다. 빅리그 데뷔 첫 해에 워낙 강인한 인상을 남겼기에 초라해 보이는 2년차 성적이지만, 내용면에서는 기록보다는 훨씬 알찬 시즌이었다.
그러나 팀의 실세로 등장한 피칭 코치 릭 페터슨과의 공개적인 불화와 겉으로 드러난 부진한 성적 등으로 구단내 위치가 흔들리는 가운데 서재응은 기아 타이거스의 영입 제의를 받았다. 기아측은 지난해 가을 스카우트를 뉴욕으로 보내 서재응과 면담을 나눴고, 광주에서는 구단 고위 관계자가 직접 서재응의 아버지를 만나 설득 작전을 펼쳤다. 올 시즌 주전 투수들이 부상, 병풍 등으로 빠지고, 유망주 영입도 내년이 돼야 가능한 상황이라 기아로서는 ‘최고 대우’를 조건으로 서재응 영입에 ‘올인’하는 입장이었다. 기아는 한편으로 뉴욕 메츠 구단과도 협상을 벌였다. 물밑 작업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서재응이 귀국하면서 공항에서 흘린 이야기가 엉뚱한 불씨가 됐다. 귀국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뛸 수도 있다’고 그저 무심히 흘린 말에 온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웠고, 이후 기아도 서재응도 ‘기아행’에 대해 ‘사실 무근’임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서재응은 아예 언론과의 접촉을 거의 끊어버렸고, 기아측은 서재응 영입은 전혀 고려치 않았던 일이라고 ‘오리발’을 내밀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기아는 서재응측과의 접촉을 계속 시도했지만,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서재응의 아버지는 기아행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기아 관계자는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사실 메츠에서 서재응의 올 시즌 전망은 극히 어두웠다. 메츠는 지난 겨울 크리스 벤슨과 재계약을 맺은데 이어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에이스로 영입했다. 마르티네스와 톰 글래빈, 스티브 트랙슬, 벤슨, 그리고 잼브라노까지 5인 선발은 이미 짜인 상태였다. 선발진에 부상 위험이 많은 선수들이 있기에 기회가 돌아올 수 있다는 가냘픈 희망은 있었지만, 기아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고 미국 잔류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 지난 2003년 ‘펄펄 날던’ 시절 경기 모습. | ||
언젠가는 국내에 복귀해 기아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싶다고 늘 이야기하던 서재응이다. 그러나 지난 1997년 도전장을 던진 이래 팔꿈치 수술까지 거치며 8년간 젊음을 쏟았던 빅리그 성공의 꿈을 쉽게 접을 수는 없었다. 특히 2003년 시즌에 성공의 단맛을, 그야말로 맛만 봤던 서재응은 충분히 자신감이 있었다. 겨울 동안 훈련도 충실히 했고, 트레이드 가능성도 어느 때보다 높았다. 트레이드만 되면 다른 팀에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이 컸다.
그리고 금전적으로도 유혹은 충분히 있었다. 서재응은 올 시즌이 끝나면 연봉 조정신청 자격을 얻는다. 2005년 시즌에서 괜찮은 성적을 거둔다는 전제하에 내년에는 연봉이 30만달러대에서 대폭 인상될 가능성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MLB 평균 연봉이 2백만달러를 돌파한지 오래다. 그리고 또 3년 정도만 자리를 잡으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프리에이전트가 된다. 빅리그에서 그대로 밀려날 수 없다는 자존심과 함께 실리적으로도 당장 기아행보다는 장기적으로 빅리그에 정착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그러나 2005년의 시작은 기대와는 달랐다. 스프링 캠프 시범 경기에서 서재응은 두 게임 선발을 비롯해 세 게임에 등판해 1승을 거뒀지만 방어율이 8.00으로 안 좋았다. 결국 트리플A 노포크 타이즈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다 옆구리 부상중인 일본인 선발투수 이시이 가즈히사가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서재응에게 값진 기회가 찾아 왔다. 지난 24일 셰이스타디움에서 열린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한 서재응은 6이닝 동안 탈삼진 4개 포함 6안타 1실점으로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선보였다. 서재응이 큰 경기에 강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보인 셈이다.
당분간은 메츠 로테이션의 한축을 담당할 수도 있겠지만 서재응의 앞날이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다. 현재 부상중인 벤슨과 이시이가 복귀할 경우 다시 마이너리그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기아행을 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을 수 있다. 올 시즌 재기하지 못할 경우 융숭한 대접을 받고 기아로 복귀할 기회를 얻기도 힘들다. 일단은 이를 악물고 다시 빅리그의 마운드에 서는 것이 급선무다. 능력은 분명히 있다. 궁극적으로 종착역이 어디가 되든, 올 시즌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서재응이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