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날고 호랑이 추락
5월 초 마산구장에서 롯데와 삼성이 3연전을 치를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마산구장에 관중이 가득했는데 한 관중이 경기 중 기자실에 들어와 “어이, 아제요, 사인볼 좀 주소”라며 조르는 일이 있었고, 또 한 팬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그래! 알았어! 내가 10시까지 글로 가꾸마”라며 큰소리로 전화 통화하는 장면도 있었다. 척 보니 관중석이 응원열기로 시끄럽기 때문에 기자실에 침투한 것이었다. 이때 야구기자들 사이에선 “올해 롯데가 야구를 조금 하긴 하는 모양”이라는 얘기가 오갔다. 마산구장의 기자실 관중 침투는 최근 몇 년간은 구경하려야 할 수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올 시즌 프로야구의 최고 이변은 뭐니뭐니해도 만년 꼴찌팀 롯데의 폭풍 같은 질주라 해야겠다. 개막 직후만 해도 5할 승률에 한참 못 미쳐 ‘역시나’라는 측은지심을 불러일으켰던 롯데가 어느새 1위팀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한화 김인식 감독은 4월 말까지만 해도 롯데의 상승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특유의 느릿느릿한 어투로 “나는 말~야, 롯데가 하나도 무섭지가 않~아.” 4월 말이면 롯데와 한화가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던 시점. 본래 조크를 잘 하는 김인식 감독이 부쩍 힘을 내고 있던 롯데의 약진에 대해 다소 농담을 섞어 ‘진정한 강팀이라 인정하기엔 아직 불안한 요소가 있다’는 뜻을 표현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도 김인식 감독이 그처럼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야구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현대 김재박 감독 역시 4월에는 롯데 돌풍을 저평가하곤 했다. 다른 팀들의 전력이 약화됐기 때문에, 롯데가 상대적으로 세 보이는 것일 뿐 페넌트레이스가 장기화되면 곧 처질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러나 5월의 롯데는 김재박 감독의 저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삼성 선동열 감독은 롯데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를 꺼리는 편이었다. “롯데가 잘해야 프로야구 흥행이 되지 않겠나”, “3만 관중이 가득 찬 사직구장에서 롯데와 경기하면 정말 야구할 맛 날 것 같다” 등 프로야구 흥행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멘트가 대부분이었다. 그랬던 선 감독 역시 이달 중순 롯데와의 부산 3연전에선 승패를 떠나 경기 내용에서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롯데 돌풍은 관중 대박으로 이어졌고, 롯데 외에 지치지 않는 두산의 저력과 중위권의 혼전이 팬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반면 롯데의 부흥과 달리 기아 타이거즈의 몰락은 많은 야구 전문가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시즌 직전까지만 해도 기아는 삼성의 올시즌 독주를 막을 거의 유일한 팀으로 거론됐다. 탄탄한 선발진과 짜임새 있는 라인업은 대부분의 스포츠전문지들로 하여금 기아가 이변이 없는 한 정규시즌 3강에 들 것이라 예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변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현장에선 기아의 전력에 대해 ‘거품이다’라는 의견이 이미 있긴 했다. 지난 3월 시범경기가 한창일 때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몇몇 구단 선수, 관계자들과 만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기아에 대해 몇몇 선수는 “일반 팬이 보기엔 강타선으로 느껴질지 몰라도 일선에서 뛰는 입장에선 무섭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찬스 때 위압감을 보여줄 타자가 없는 편”이라고 평가했다. 그 말이 현실로 들어맞은 셈이다. 올 시즌 타점 부문 상위권에서 타이거즈 선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다. 팀타점 역시 꼴찌 수준이다.
믿었던 선발투수 존슨은 퇴출됐고, 지난해 공동다승왕 리오스는 구위가 예전만 못하다. 김진우 강철민 등 영건의 활약도 미미한 상황이다. 유남호 감독의 한숨이 늘고 있는 까닭이다.
삼성은 예측대로 선두권에서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프로야구 기자단 사이에선 “슬슬 다른 팀들이 삼성과의 맞대결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삼성과 만나면 어떻게든 1승2패로 치고 빠지는 게 현명하다는 게 개막 후 50여 일 동안에 내려진 결론인 듯하다. 이 같은 현상은 개막 전부터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이변이 많은 2005시즌 프로야구지만 강팀 삼성은 이변 속의 예외를 형성하고 있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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