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언니와 미셸 위에게 감명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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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나연 선수. 사진=이종현 기자jhee@ilyo.co.kr | ||
박세리 박지은 한희원 안시현 등 쟁쟁한 LPGA 골프 스타들이 즐비한 가운데 이제 막 프로 신인으로 걸음마를 내딛은 그는 데뷔 5개월 만에 우승이라는 쾌거를 잡았지만 골프계에선 선배들 못지 않은 스타성을 갖고 있다며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프로 데뷔 후 너무 빠른 시간에, 얼떨결에 우승을 한 것 같아요. 사실 우승할 만큼 그렇게 잘한 건 아니었거든요. 빈말이 아니라 운이 좋았죠.”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리얼토크’라는 타이틀대로 뭐든지 솔직하게 답했으면 좋겠다는 주문은 걸어놓았지만 최나연의 솔직함은 기대 이상이었다. 지난해 11월6일 ADT CAPS 인비테이셔널대회에서 아마추어 초청선수로 출전해 박세리를 꺾고 깜짝 우승을 차지한 후 프로대회 우승 자격으로 11월9일 프로로 전향했다.
“똑같은 대회라도 프로라는 타이틀이 붙으니까 괜히 부담이 되더라구요. 지난 2월에 하와이에서 열린 SBS오픈에 미셸 위랑 같은 조였는데 컷오프당하는 바람에 엄청 속상했었어요. 미셸 위처럼 아마추어 자격이었다면 큰 부담이 없었을 텐데 말이죠.”
최나연은 지난 2월25일 2005시즌 미LPGA 개막전인 SBS오픈에 미셸 위와 함께 특별 초청을 받았다. 프로에 발을 내딛자마자 외국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대회에 초청 선수로 참가하게 돼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린도 어렵고 바람도 불고 집중이 안됐어요. 미셸 위, 폴라 크리머 등 모두 장신들이라 거리가 무지 많이 나가더라구요. 그러다보니 그 두 사람 쫓아서 걷기도 벅찼어요. 제가 친 볼이 제일 뒤처지는 바람에 항상 마지막에 샷을 했거든요. 미국에선 플레이를 빨리 빨리 해야 한다는 충고도 받은 터라 무슨 생각으로 18홀을 다 돌았는지 모르겠어요.”
첫날은 3오버파였고, 둘째 날은 2오버파로 결국 최나연은 2라운드 합계 5오버파로 예선 탈락했다.
“그래도 정말 많이 배웠어요. 특히 나보다 나이가 어린 미셸 위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었죠. 미셸 위는 18홀을 도는 5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더라구요. 눈빛이 살아 있다고나 할까? 웃지도 않고 오로지 골프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남자같이 너무 멋있게 골프를 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어요.”
미국 갤러리들의 반응이 천지차이였다고 한다. 무명이나 다름 없는 최나연과 그들 세계의 스타 미셸 위가 플레이하는 순간의 반응이 너무 달라 최나연으로선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저한테 LPGA는 여전히 먼 ‘나라’ 얘기라는 걸 실감했어요. 거기까지 가기엔 아직도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구요. 다른 선수들은 첫날 5오버파를 쳐도 다음날 4언더를 칠 만한 쟁쟁한 실력을 갖췄어요. 세계에서 날고 기는 선수들만 모인 무대잖아요. 서두르지 않으려구요. 제대로 할 수 있을 때, 오버파를 쳐도 창피하지 않을 만한 자신감이 섰을 때 LPGA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어 보고 싶어요.”
LPGA 경험이 큰 충격인 모양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대회를 치르는 동안 보고 느낀 게 너무 많은 탓이다.
“박지은 프로랑 퍼팅연습장에서 똑같이 시작을 했는데 전 1시간 치고 그냥 나왔거든요. 그런데 박 프로는 3시간 넘게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어요. 3시간 넘게 퍼팅 연습만 한 거죠. 최고의 선수는 그냥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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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나연 선수. | ||
“98년 박세리 프로가 US오픈에서 우승한 뒤 갑자기 골프부원들이 기존의 10명에서 30~40명으로 늘어나더라구요. 골프를 배우는 선수들이 증가하면서 경쟁도 이전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치열해졌어요. 그래도 그 경쟁 자체가 즐거울 때가 많아요. 사실 골프 시작하고나선 취미 생활이 사라졌을 만큼 골프에만 매달렸던 것 같아요. 가끔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내가 만약 골프를 안 한다면 뭘 할 수 있을까?’ 없어요. 수학여행도 한 번 못 가본 재미없는 생활이지만 이 길이 제 인생이라고 믿고 그냥 가는 거죠.”
다른 골퍼들과 마찬가지로 최나연도 아버지 최병호씨가 골프백을 멘다. 최병호씨는 66년생. 스무 살에 결혼해서 스물한 살에 최나연을 낳은 셈. 40세의 젊은 아빠와 함께 골프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는 열아홉 살(우리나라 나이) 딸의 단상이 이어진다.
“지난 5월 X-CANVAS 여자오픈에서 42위를 기록했어요. 최악의 성적이었죠. 프로 데뷔 후 어느 정도 성적을 내주길 바라는 아빠와 전 그 대회 이후 심한 갈등을 겪어야 했어요. 워낙 엄하고 무서운 스타일이라 아빠한테 함부로 말을 못하는 편이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아빠, 골프 평생할 건데 왜 이렇게 서두르시느냐. 좀 천천히 가자. 너무 기대를 크게 갖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었죠. 아빠도 별다른 말씀 없이 그대로 받아주시더라구요.”
아직까진(?) 아버지랑 같이 라운딩을 하는 게 편하다고 한다. 가끔 의견 충돌을 일으켜 애매한 상황이 연출될 때도 있지만 아버지가 뒤에 서 있을 때 잡념 없이 골프에 집중할 수 있다는 10대이기도 하다.
“박세리 프로가 그런 말을 하셨잖아요. 요즘 슬럼프에 빠지자, 자신은 우승한 것만 배웠지, 다른 건 하나도 배운 적이 없다고. 그래서인지 아빠가 많이 배려해 주세요. 벌써부터 질리게 하면 안 된다면서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고 살라고 조언해 주세요.”
초등학교 5학년 겨울에 자신이 직접 카트를 끌고 다니며 하루에 27홀을 도는 강행군을 펼쳤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잠시 회상에 잠기는 표정을 짓는다. ‘연습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동계훈련을 소화해낸 부분들이 최나연에게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단단함과 자신감을 심어준 건지도 모른다.
최나연은 지난 12월 SK텔레콤과 3년간 매년 1억5천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후원계약을 맺었다. 또 최나연이 미국LPGA투어에 진출할 경우 연간 1억원의 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키로 했다. 미LPGA에서 활약하고 있는 장정도 메인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프로 초보에게 선뜻 스폰서의 손길을 내민 것 자체만으로도 최나연의 가능성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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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셸 위(왼쪽), 박지은 | ||
골프를 하면서 일반학교가 아닌 대원외국어학교를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학교는 평생 제 이름 옆에 따라다니는 거잖아요. 좋은 학교를 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좋은 친구들도 사귀고 싶었고. 대원외고 골프부가 아주 유명하거든요. 들어가기도 힘들고. 물론 특기생으로 들어갔죠. 저 공부 안 했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하하.”
아무리 프로 골퍼지만 10대는 10대.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 얘기가 나오니까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한다.
“조인성 오빠를 아주 좋아해요. 작년에 ADT대회 우승한 이후에 방송국에서 우연히 만났거든요. 주위 사람들이 제가 인성이 오빠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바람에 엄청 부끄러웠어요. 같이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고 했는데 정말 멋진 남자더라구요.”
이성 친구에 대해 묻자,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고 있다고 해도 말하기가 그렇다’는 말로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전 결혼을 일찍 하고 싶어요. 골프 때문에 결혼을 늦추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으려구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최나연의 다부짐이 참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내용까지 덧붙이면 그의 성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LPGA에는 도전할 거예요. 도전은 하는데 Q스쿨에서 탈락할 경우 그냥 한국으로 돌아올 겁니다. 한국에서 더 실력을 쌓은 뒤 또 도전해 보는 거죠. 그래도 안되면요? 그냥 한국에 남으면 되죠 뭐. 미국 진출 자체에 욕심은 두지만 미련은 갖지 않으려구요.”
LPGA에 진출하게 되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한다. 바로 남자 프로들과의 성 대결이다. 이유를 물었다.
“그냥요. 이슈가 되잖아요. 관심을 끌 수도 있고.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아요. 프로필로 남는 거니까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