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통하면 야구도 ‘쑥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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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호(왼쪽), 최희섭 | ||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있는 한국 선수들에게 현지에 적응하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는 언어 문제다. 생활과 문화 차이도 적응하기 쉽지 않은데,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으니 처음에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구단에서는 편의를 위해 통역을 고용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신들이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돼야만 생존할 수 있으니 영어는 야구 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장벽이다.
가장 먼저 빅리그에 진출한 박찬호와 두 번째로 진출한 김병현은 영어에 관한한 대처법이 천양지차다.
박찬호가 적극적으로 영어를 배웠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도미 후 불과 몇 년 만에 인터뷰까지 혼자 해내는 모습이 TV를 통해 소개되기도 하는 등 영어 실력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당시 박찬호가 알고 있는 단어라곤 ‘헬로’와 ‘땡큐’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어에 관한 한 백지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박찬호가 가장 먼저 깨달은 것 중의 하나가 영어를 익혀야 야구를 제대로 빨리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94년 마이너리그에서 첫 해에는 통역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 후 통역을 두지 않고 직접 부딪히며 영어를 몸으로 익혔다.
그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오프 시즌이면 개인 교사를 구해 매일 영어 회화를 공부했으며, 스프링 캠프 기간에도 영어 과외는 계속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즌 내내 통역 없이 외국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영어를 빠르게 익혀나갔다
그러나 박찬호가 영어를 빠르게 습득한 가장 큰 비결은 본인이 철저하게 부딪히며 익혔다는 사실이다. 지난 94년 첫 스프링 캠프에서 동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헤이 두드’라는 단어를 익혀서 지나가던 토미 라소다 감독에게 ‘헤이 두드’하며 불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친구들 사이에 ‘야, 이 녀석아’ 정도의 호칭으로 부를 때 쓰는 속어인데, 이를 남을 부를 때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감독에게 처음 사용해 봤다가 두고두고 동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이렇게 적극적인 자세가 영어를 빠르게 익히는 지름길이 됐다.
반면에 김병현은 도통 영어에 관심이 없었다. 처음 애리조나에 도착하고도 통역과 지인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영어를 쓸 이유도 없었을 뿐더러, 본인이 영어를 열심히 배우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클럽하우스에서는 늘 한국 노래가 나오는 CD플레이어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듣고 있거나 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렇게 영어에 관심이 없고 의사소통을 잘 하지 않은 것이 결국은 김병현의 발목을 잡고 말아 아쉽다. 2002년 김병현이 애리조나를 떠나기 전 현지 언론에서는 김병현을 돈만 아는 이기적인 선수로 몰아붙였다. 나중에 드러난 이유는 김병현이 워낙 말이 짧은 데다 동료들과 전혀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매번 하는 질문이 ‘저 선수는 연봉이 얼마야?’였다고 한다. 그런데 현지 기자가 그 말을 듣고는 오로지 돈만 밝히는 이기적인 선수로 단정 지어 몰아붙였던 것이다. 결국 그때 붙은 꼬리표가 아직도 김병현에게 따라다니는 셈인데, 지금도 영어 습득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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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응(왼쪽), 김병현 | ||
그 예로 현지 언론과 이야기를 할 때 한국 특파원이 질문을 통역해주면 최희섭은 영어로 받아친다. 참으로 특이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최희섭의 영어에는 사투리가 섞여서 나온다. 그러나 영어를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아마도 최희섭이 박찬호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현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 중 가장 영어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봉중근이다. 어려서 미국에 간 데다 고등학교도 잠깐 그곳에서 다닌 봉중근은 언어 구사력이나 발음, 제스처 등이 가장 현지인들과 가깝다. 성격도 좋아 동료들과 곧잘 어울리는 봉중근은 농담까지 잘 알아듣기 때문에 짓궂은 노장들이 종종 장난까지 칠 정도다. 지금은 부상으로 재활중이지만 봉중근이 빠르게 메이저리그에 정착할 수 있었던 데는 유창한 영어 실력도 한몫했다.
김선우의 경우도 영어 실력이 수준급이다. 봉중근처럼 현지인에 가까운 구사 능력은 안 되지만, 인터뷰를 혼자서 해낸 지 오래다. 보스턴 마이너리그 시절에는 조진호나 이상훈 등 선배들과 생활하면서 영어 배우기가 약간 더뎠지만, 몬트리올로 이적 후에는 늘 외국 선수들 사이에 홀로 생활하면서 빠르게 영어를 습득한 편이다.
반면에 서재응은 김병현과에 조금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본인이 영어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의지도 없다. 우리말이 있는데 열심히 영어를 배울 필요가 있겠느냐는 식이다. 살다보면 의사소통을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천하태평형이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동양 선수들이지만 한국 선수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망정 대부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반면, 일본 선수들은 철저히 통역을 두고 영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선수들은 전부 일본 프로 생활을 오래 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나이가 많기 때문에 영어 습득이 더딘 탓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프로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본인들이 자비로 통역을 둘 수 있는 데다, 대부분 언론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 아예 통역을 고용하는 것도 원인이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