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에 50억 날렸잖아
▲ 지난 2003년 피스컵대회에서 박지성과 함께 기자회견 하는 히딩크 감독. | ||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절대 은인으로 알았던 히딩크 감독이 얼마전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벤치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PSV를 떠나도 여전히 히딩크 감독과의 관계가 핫이슈가 되는 두 스승과 제자 사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왜 자꾸 이상하게 몰고가나
박지성의 맨유행이 결정된 이후 히딩크 감독은 영국의 스카이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박지성은 맨체스터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이라며 ‘박지성은 에인트호벤에서 좀 더 머물렀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내용을 입수한 국내 언론에선 히딩크 감독이 에인트호벤을 떠난 박지성에게 서운한 감정을 토로했다며 대서특필했지만 정작 박지성은 덤덤한 반응을 나타냈다는 후문이다.
마침 지난 6월27일 오후 수원시에서 ‘박지성로’ 개통식이 열리기 전 기사를 보게된 박지성은 언론의 속성상 히딩크 감독의 발언이 모두 소개된 것이 아니라 일부분만 인용됐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박지성은 ‘박지성로’ 개통식 이후 어느 한 방송사에서 “히딩크 감독의 발언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늘 박지성 선수의 얼굴은 하루 종일 불편했습니다”라고 보도한 데 대해 진짜 ‘불편한’ 심기를 노출시켰다고. 매스컴에서 감독과 선수 사이를 자꾸 이상하게 몰고 간다며 힘들어 했던 것이다.
히딩크의 서운함 컸던 까닭
박지성의 이적을 놓고 맨체스터와 PSV 간의 협상이 길어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적료 액수 차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의 에이전트에게 굉장히 서운한 감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박지성측에서 맨체스터측과 만나 연봉과 부대조건을 협상하던 도중 박지성이 PSV와 입단할 당시 계약서에 명시한 바이아웃(일정 수준 이상의 이적료를 제시하는 이적제의가 있으면 이에 응해야 한다는 조건) 조항을 알려줬고, 그 조항에 따르면 5백만 유로 이상의 이적료로 영입 제의가 있고 선수 본인이 원할 경우 PSV구단에선 이적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정보를 줬던 것. PSV구단측에선 박지성의 이적료로 최고 1천만유로까지 생각했지만 ‘5백만유로 이상’이라는 바이아웃 조항을 내세우며 이적료를 낮추려는 맨체스터측의 태도에 당연히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측에 ‘만약 맨유쪽에다 바이아웃 조항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이적료를 더 높여 받을 수 있었는데 괜한 정보를 주는 바람에 우리만 손해봤다’며 서운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는 후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히딩크 감독이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 도중에 당시의 섭섭함을 ‘벤치 신세’ 운운하며 박지성을 공격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박지성은 <일요신문> 지난호(685호)에 단독 보도된 ‘박지성 몰래한 보은, 히딩크에 7억3천만 배려’의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지막까지 히딩크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 해서든 표현하려 했고, 더욱이 매끄럽지 못한 이적료 협상 과정 등에 대한 부담 등을 고려해 히딩크 재단에 이적료의 10% 중 일부를 헌납하기로 한 것이다.
“세상에 맘대로 되는 건 없다”
PSV 에인트호벤은 피스컵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오는 7월12일 한국을 방문한다. 이때 선수단 통역을 담당하는 사람이 이전 박지성의 네덜란드 영어 교사이자, 현재 히딩크 재단의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세실리아 박이다.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는 세실리아 박에게 한국에서 히딩크 감독과의 면담을 부탁했고 히딩크 감독도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박씨는 히딩크 감독을 만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히딩크 감독의 서운함을 풀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상 일이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는 것 같다. 우리도 PSV에 남고 싶었지만 결국 맨체스터로 떠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당신(히딩크 감독)은 선수를 키워서 떠나보내는 일에 익숙하고, 또 떠나보낸 선수들을 잊을 수 있겠지만 우린 당신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준비했다고.
한편 모든 행사와 광고 촬영을 마친 박지성은 영국으로 출국하기 전까지 하루 2시간씩 수원의 한 헬스클럽에서 러닝과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체력을 보강했다. 또한 박지성은 메디컬테스트를 위해 맨체스터를 방문했을 때 한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식당 주인이 박지성이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메뉴에 없는 것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 바람에 당분간 음식 걱정은 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