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는 친형제간 승계, ‘4세’는 사촌형제간 승계 가능성
물러나는 박용만 회장은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을 제외하면 사실상 용자 항렬의 막내다. 따라서 용자 항렬 맏이인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 박정원 회장의 회장직 승계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1955년생으로 이제 막 진갑이 된 박용만 회장의 나이를 생각하면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박정원 회장은 올해 54세.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이전 회장의 취임 당시 나이를 보면 박용곤 회장 49세, 고 박용오 회장 60세, 박용성 회장 66세, 박용현 회장 67세, 박용만 회장 58세 등으로 박두병 초대회장의 장남 박용곤 명예회장을 제외하면 비교적 빠른 편이다.
박정원 신임 두산그룹 회장.
두산건설은 오랜 기간 박정원 회장이 맡아왔던 곳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박용만 회장이 키우다시피 한 회사다. 특히 두산이 미국 밥캣을 인수하는 데 있어서 두산인프라코어와 박용만 회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산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고가 인수 논란 속에 밥캣을 인수했고, 이후 인수금융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용만 회장으로서는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박용만 회장이 이번 공작기계사업부 매각을 성사시킴으로써 약 1조 원의 유동성을 확보, 두산인프라코어 재무부담을 결자해지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당분간 박용만 회장이 두산인프라코어는 직접 챙길 것으로 알려졌다. 자회사인 밥캣 상장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을 완결한 후에야 경영 2선으로 물러나 대한상공회의소에 주력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두산그룹 지주사인 ㈜두산이 두산중공업을 통해 두산건설과 두산인프라코어 등 핵심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두산건설과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영상태가 개선되면 그룹 중추인 두산중공업의 부담도 줄어든다. 결국 두산건설과 두산인프라코어의 구조조정은 박용만 체제에서 박정원 체제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는 셈이다.
박정원 회장의 4세 체제가 본격화되면 두산의 형제경영에도 변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장 친형제 간 경영이 ‘사촌형제’ 간 경영으로 바뀔 전망이다. 지난 2005년 ‘형제의 난’을 겪으면서 가문에서 퇴출당한 고 박용오 회장 직계를 제외하면 원자 항렬 형제들은 모두 9명이다. 두산 내부적으로 정한 회장의 임기는 3년으로 알려졌다.
그룹회장직에서 물러나는 박용만 회장.
박용성 전 회장의 장자인 박진원 전 두산산업 사장은 1968년생, 박용현 전 회장의 장남인 박태원 두산건설 사장이 1969년생이다. 박용만 전 회장의 큰 아들인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은 1979년생으로 나이차가 좀 더 난다.
두산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박진원 전 사장은 두산 4세 가운데 가장 경영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지만 현재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따라서 용자 직계 간 회장직 승계가 이뤄진다하더라도 상당한 기간 동안 박정원 체제가 유지된 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부친인 박용곤 명예회장도 1981년부터 무려 15년간이나 그룹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지분구조를 봐도 박정원 회장 장기집권 체제가 유력하다. ‘박용곤-용성-용현-용만’ 4형제 집안이 보유한 ㈜두산 지분은 약 40%다. 박용곤 집안이 13.93%로 가장 많고 박용성-용현 집안은 각각 9.5%, 박용만 집안은 7.6%다. 어느 한 집안만으로는 안정적인 경영권 행사가 불가능하다.
각 집안별로 주력 사업부문도 조금 다르다. 박용곤 명예회장은 주로 건설, 박용성 전 회장은 주로 중공업에 주력했다. 의사 출신인 박용현 전 회장은 뚜렷한 주력분야가 없는 반면 박용만 회장은 인프라코어에 공을 들였다. 원자 항렬들은 용자 항렬의 주력 분야와는 다른 곳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박정원 회장 취임 후 이들의 이동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재계의 다른 관계자는 “그룹 회장 직전 단계인 ㈜두산 회장을 누가 맡을 지가 향후 두산그룹의 지배구조를 읽을 단초가 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