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공식사과 재발방지” 요구 vs 회사 “왕따나 업무 압박 없어”
패션 대기업에 인턴으로 입사했다가 왕따를 당했다며 자살한 고 원소연 씨 영정.
A 사에 따르면 고 원소연 씨는 지난 2월 1일부터 2개월 기한 ‘체험형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B 팀에 배속돼 25일까지 출근했다. 원 씨를 제외한 팀원 7명은 모두 정규직. 입사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2월 26일 오전 8시 30분쯤 원 씨는 서울 개포동 아파트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맨 상태로 함께 살던 남동생에 의해 발견됐다.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이 없어 자살로 결론지었다.
유서는 없지만 지인 송 아무개 씨와 나눈 카카오톡 내용에서 원 씨는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를 흉금 없이 털어 놓고 있다. 지난 25일 밤 원 씨와 송 씨 간 카톡 내용을 보면 원 씨가 겪은 일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요.(원 씨)”
“응? 너 무슨 일 있었어?(송 씨)”
“응. 나 왕따 당해요. 여자들 왕따. 쓰레기 줍고 있는데 바닥에 핀 던지기, 똥개 훈련시키기요. 자기(선임)가 옷 가져간다 그래놓고 옷 어디 있어 내가 가져오라고 그랬잖아. 그냥 회사 다니지 말라는 소린가 봐요.”
“또 그 사수야?”
“이번에는 (팀)전체가 그래요. 그냥 죽을래요. 지쳤어요.”
“회사를 그만두는 걸로 하자. 참고 거기 있지 말고 나와 버려.”
“나 너무 약해져서. 그냥 힘들어요. 죽으라는 소리인가 봐요. 그냥 내가 없어지면 그만이에요.”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야. 참고 있지 말라고 하는 거자나.”
“힘들어서요.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지치면 다 그래요.”
또 다른 카톡에서 원 씨는 “(선임이) 컬러별로 판까지 구해서 정리해 놓으라더니 컬러별로 분류하니까 또 어두운 색 밝은 색으로만 말했어요. 그러고 실도 두 종류 다 나누어놓으라 그래놓고 자기가 다 섞어 버렸어요”라고 했다.
원 씨 어머니 박건림 씨(55)는 “소연이는 밝고 효심 지극한 딸이었다. 그 나이에 자신 명의의 통장을 스무 개 정도 관리했고 동생 명의로 5개 보험을 들어줄 만큼 동생을 끔찍하게 아꼈다”며 “그러던 딸이 그런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며 “내 딸은 꾸준히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왔다. 그 어렵다는 2014년 강남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할 만큼 재능도 있었다. 이종격투기를 수년간 꾸준히 해올 만큼 적극적인 사고방식도 가졌다”고 울부짖었다.
원 씨의 발인은 원래 28일이었지만 유족은 4일 오전으로 연기했다. 그 이유에 대해 박 씨는 “A 사 사장의 공식사과, 소연이가 소속됐던 B 팀원 7명의 진정어린 사과, 제2의 소연이가 나오지 않도록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장례식장에서 철수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요구 사항은 이뤄지지 않았고 장례식장 운영 측 사정도 있어 발인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월급 130만 원의 소연이는 죽음으로 인턴사원의 현실을 얘기했다. 딸의 사후 인턴 부모들의 제보를 많이 받고 있다. 기업윤리, 관리, 관행들로 인해 인턴들의 탄식 소리가 들린다. 내 딸은 죽기 직전 출근할까 말까 고민 끝에 결국 그런 선택을 했다. A 사 측은 진상규명이 우선돼야 한다지만 공식사과가 먼저다. 모든 대응을 해나가겠다. 증인들도 있고 증거들도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 씨 사후 유족과 A 사의 대립은 지속되고 있다. 27일 홍보실 관계자가 장례식장을 찾아 박 씨에게 “사태 파악 중이니 그때까지 언론 제보를 자제해 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28일 A 사 인사담당 상무와 디자인실장 등이 찾아와 박 씨에게 “진상규명 후 사과하겠다”고 하자 박 씨는 “사람이 죽었다. 사과가 먼저다”는 뜻을 전달했다.
29일 오전 원 씨가 속했던 B 팀 7명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하지만 당시 영상을 보면 팀원 중 누군가가 영어로 “쏘리(Sorry)”라고 하자 흥분한 박 씨는 “누가 (소연이) 사수냐”고 소리쳤고 이에 팀원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박 씨는 “7명 중에서 아무도 눈물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3월 1일 A 사 사장이 장례식장을 찾아 박 씨에게 유감 표명을 했다. 이후 A 사 측은 자체조사 결과 그런 일이 없으니 공식사과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A 사 측은 “안타깝게 생각하며 유족에 조의를 표한다”고 밝혀왔다. A 사 측은 지금까지 직원들의 개별적인 면담 및 직원들이 원 씨와 주고받은 문자 등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직장 따돌림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한 A 사는 사장 조문 시 명확한 원인에 대한 공동 규명에 대해 제안하는 등 지속적인 대화를 진행했고 유족과 함께하는 경찰조사 등을 통한 원인규명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A 사 관계자는 “왕따의 의미는 장기간 지속적으로 조직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다. 원 씨는 지난 2월 출근부터 설연휴를 제외하면 회사에 14일을 나왔다. 기간상으로도 그럴 만한 일이 벌어지긴 어렵다”며 “원 씨는 패션기관 추천에 의해 입사했고 원 씨 직군인 참여형 인턴제는 정규직 전환 등을 전제로 한 입사가 아닌 업무지원, 학습과 참관이 주 업무다. 따라서 과도한 업무로 압박을 받는다든지, 질책을 받는 직책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원 씨가 근무한 2월은 매해 가을과 겨울 상품에 대한 품평을 하는 기간이다. 따라서 팀원 전체가 옷, 부자재를 나르는 등 매우 분주한 시기다. 디자인실장과 원 씨가 주고받은 문자 내용을 보면 원 씨가 병가를 낼 일이 있었는데 실장은 ‘잘 쉬다오라’고 답했다. 조사결과 원 씨는 팀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하고 생일파티에도 참석하는 등 활기 있게 생활했다는 증언들이 다수 확보됐다. 하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른다”고 덧붙였다.
장익창 비즈한국 기자 sanbada@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