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승부’ 내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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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만리장성의 벽을 넘고 금메달을 따낸 농구대표팀 선수들. 스포츠서울 | ||
협회측에서는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을 누르고 우승했던 한국은 이후 세계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터라 이번 대회를 앞두고 역대 최강 멤버를 구성했다. 주위의 평가 또한 최강의 ‘드림팀’이라 부를 만큼 선수들 구성이 화려하다. 그러나 대표팀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 아시아 농구선수권에 참가하고 있는 대표팀을 분석해 보았다.
‘드림팀’으로 불리는 이번 대표팀 명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드에는 신기성(KTF)을 비롯해 김승현(오리온스), 이상민(KCC) 등 국내 최고의 포인트 가드들이 이름을 올렸고, 포워드에는 부산 KTF에서 창원 LG로 이적한 현주엽을 비롯해 문경은(전자랜드) 추승균(KCC) 양희승(SBS), 정훈(상무) 등이 선발됐다. 미국 NBDL에서 뛰면서 NBA 진출에 도전하고 있는 방성윤(로어노크 대즐)도 불러 들였다. 아울러 센터에는 NBA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하승진을 비롯해 서장훈(삼성) 김주성(TG삼보) 등이 대표팀에 자리했다.
첫 ‘해외파’인 하승진과 방성윤의 합류, 김승현 현주엽 김주성 서장훈 등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선수들이 모두 선발된 이번 대표팀은 가히 역대 최강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대표팀 소집기간이 짧았음에도 이규섭(삼성)의 부상으로 마지막으로 합류한 정훈을 제외하곤 이미 오랫 동안 손발을 맞춰온 선수들이기 때문에 조직력 면에서도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대표팀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대표팀에 새로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농구의 중흥을 이끌었던 90년대 초반 학번 선수들이 10년이 넘게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 모두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12명의 대표팀 선수 중 국가대표에 처음 선발된 선수는 아무도 없으며 대표 팀 경력만 해도 평균 9년이 넘는다.
한국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성장한 프로 5년차 김승현(27)이 하승진과 방성윤이 미국에서 합류하기 전까지 대표 팀 막내 역할을 하며 주전자 당번을 했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대표팀 평균 나이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대표팀 평균 나이는 한국 나이로 무려 29.5세로 30대에 육박하고 있다. 12명의 선수들 중 30대를 넘긴 선수는 최고참 문경은(34)과 이상민(33)을 포함해 모두 7명. 역대 최고령 대표팀이다.
이는 대표팀의 세대교체 실패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프로농구 출범 이후 선수들이 자기관리를 충실히 했고, 외국인 선수들과의 경기로 기량 향상이 충분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현 대표팀 주전들의 얼굴이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농구협회의 한 관계자는 ‘마지막 승부’ 세대들의 농구 실력이 워낙 출중했고 선수층 또한 두터웠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대표팀 주축을 맡고 있는 30대 중반의 선수들이 모두 은퇴한 뒤의 대안이 없다는 것. 대표팀이 기존 선수들에만 의지한 채 ‘젊은 피’ 수혈에 심혈을 기울이지 못한 결과는 곧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된 의견이다.
정광석 고려대 총감독은 “과거 대표팀의 경우 젊은 유망주 1~2명을 선발하여 국제대회에 데리고 나갔다. 하지만 요즘은 성적 부진이 계속되어 일단 최고의 선수들만 선발하는 추세다”며 유망주 육성이 힘든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아마농구의 시스템 자체의 변화 없이는 한국 농구의 세계 진출은 없다”며 보다 근원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결국 대학팀과 프로팀과의 격차가 너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유망주 육성의 실패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김동우(모비스), 송영진(LG), 정훈(상무) 등 아마농구를 호령하던 최고 유망주들이 프로에 적응하지 못하고 벤치 멤버로 전락하고 있는 사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대학팀에서 뽑을 만한 선수가 없다”는 협회 관계자의 푸념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번 대표 선발에서 현재 대학선수 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김태술(연세대)의 선발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결국은 기존 선수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협회 관계자의 전언이다.
현재 대학팀들의 경우 상위 몇 팀을 제외하곤 1년에 전국대회에서 10경기 이상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 이는 몇 안 되는 대회가 모두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인데 한 경기를 패하면 곧바로 짐을 싸야 하는 상황에서 경기력 향상을 바라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신체적 능력은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수준 높은 팀과 경기를 할 수 없다 보니 선수들의 기량은 예전만 못하다”며 “이 때문에 김민수(미국 유학) 하승진 등 좋은 신체 조건을 가진 유망주들이 국내 농구를 등지고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현 대학농구의 실정을 설명했다.
유망주 발굴 없이 한국 농구의 미래도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국제대회 성적이 급한 협회로서는 이번 아시아농구선수권을 유망주 발굴의 시험대로 삼을 수도 없다. 지난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국가대표 반납 의사를 밝혔던 문경은을 다시 불러들인 것만 봐도 협회가 얼마나 급한 상황인지 알 수 있다.
이번 대표팀으로 아시아선수권에서 얼마나 좋은 성적을 거둘 지는 미지수다. 물론 만리장성을 다시 한 번 무너뜨리고 아시아 정상으로 우뚝 서는 것이 팬들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 농구의 발전을 위해서 미래를 대비하는 장기적인 로드맵이 필요할 때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혁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