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50%밖에 못썼다 넘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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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1 데뷔 후 첫 패배가 최홍만에게는 상상 이상으로 큰 아쉬움이었다고 한다. ‘값진 수업료’를 낸 최홍만의 눈빛이 점점 파이터의 그것으로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3월 K-1 데뷔전 이후 6전 전승을 달리다 처음으로 패배의 쓴맛을 본 탓에 최홍만이 갖는 결과에 대한 아쉬움은 상상 외로 크고 깊었다. 그러나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했다며 위안을 삼는 그한테서 또 다른 내일의 희망을 읽게 된다.
―괴로워도 그날 경기를 복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많은 지적 중에서 레미 본야스키한테 좀 더 과감하고 저돌적으로 밀어붙였다면 경기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란 부분이다.
▲인정한다. 솔직히 그런 지적들처럼 나도 과감히 맞붙고 싶었다. 그러나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사실 때문에 초반부터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3라운드 이후 연장까지 가는 걸 머리 속에 그려놓고 게임을 풀어갔다. 그러나 판정패 당했다. 경기가 끝났을 때 난 오히려 힘이 남아돌았다. 게임에 다 쏟아붓지 못한 것이다. 아마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의 50% 정도만 소비된 것 같다.
―패인을 놓고 갖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직접 입으로 얘기하는 패인을 듣고 싶다.
▲경험 부족이 가장 크다. 경기 운영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좋은 시합을 펼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 뜨고 당했다’. 그날 경기를 비디오로 몇 차례 되돌려 봤는데 내가 봐도 내 플레이가 이해 안 되더라. 하물며 팬들은 오죽하겠나.
―경기 당일 많이 긴장한 것 같은데.
▲솔직히 두려웠다. 링 밖에선 잘 몰랐는데 정작 링 위에 올라서서 본야스키를 보니까 덜컥 겁이 났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한국팬들의 응원이 엄청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응원이 힘이 되기보단 부담이 됐다.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고, 경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단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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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신인이고 본야스키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챔피언이다. 그렇다면 난 지더라도 크게 손해볼 게 없었다. 신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밀고 들어갔어야 했다. 한마디로 판단 착오다. 다시 시합하고 싶다. 다시 그날 경기하기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말이다.
―본야스키의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 표정이 깔끔하지 못했다. 씁쓰레한 표정, 어이없다는 표정인 걸로 보였는데 맞나.
▲내 안티 팬들은 그날 표정을 가지고 매너가 ‘꽝’이라는 등 안 좋은 소리를 많이 하더라. 난 솔직히 그 순간 너무 아쉬웠다. 경기 후 4라운드까진 갈 거라고 믿고 있었던 상황이라 판정패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표정을 너무 솔직히 드러낸 것도 경험 부족 탓이다. 좀 더 노련한 선수였다면 그런 표정은 짓지 않았을 것이다.
(최홍만은 세미 쉴트와 레미 본야스키의 4강전을 지켜봤다고 한다. 자신을 판정패로 내몬 본야스키가 세미 쉴트한테 힘 한번 못 쓰고 KO패 당하는 걸 보면서 더욱 큰 아쉬움이 느껴졌단다. 세미 쉴트처럼 본야스키와의 경기에서 초반부터 강공 작전을 펼쳤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본야스키를 ‘검은 콩’으로 내몰며 신경전을 벌였던 최홍만의 머리 속은 자신이 파이터답지 않았다는 자괴감이 크게 자리했었다.)
―경기를 앞두고 왼쪽 장딴지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당했다고 들었다. 경기 전에 왜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나.
▲시합 전에 그런 얘기가 나오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3주 전에 스파링을 하면서 로킥에 대비하려고 많이 맞았다. 그때 조금 통증이 왔는데 걷는 데 지장이 없어 큰 부상이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고 나니까 다리를 올리려고 해도 다리가 올라가지 않더라. 기자들이 로킥이나 니킥 등을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는데 사실 그때의 부상으로 하반신 쪽의 기술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경기 후 연습량 부족을 시인했다. 설명을 좀 해 달라.
▲지난 3월 K-1 데뷔 이후 지금까지 6게임을 치렀다. 보통 1년에 3게임 정도 하는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6게임을 치르고 나니까 연습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지금까지 연습한 시간을 모두 합해 보면 5개월도 채 안 된다. 연습량이 많았다면 8강전에서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대회를 치르고 나서 사람들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를 알았다. 난 이제 데뷔한 신인이다. 복싱 기술만 배우기에도 벅찬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로킥을 해라, 니킥을 배워라 등등 주문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누군 안 배우고 싶어서 안 배우겠나. 배울 시간도,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다. 조금 연습하고 경기 나가고, 이런 시간들의 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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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선수라면 파이터로서의 모습과 쇼맨십이 어느 정도의 비율로 섞이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하나.
▲흠, 한 7:3 정도. 밥 샙이 쇼맨십으로 유명한데 자기만의 스타일을 잘 만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밥 샙의 인기는 최고다. CF에도 많이 출연하고. 그런데 난 방송에서 ‘오버’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싫다. 그동안 이미지 변신을 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많이 했다. 파이터답게 강하고 사나운 이미지를 연출하려고 거울 보면서 연습도 많이 하고 카메라 앞에서 폼도 잡아봤는데 잘 안 되더라. 웃는 건 자신있는데 강한 눈빛을 만드는 게 너무 어렵다. 가끔 K-1 데뷔전 치를 때 등장했던 모습을 지금 보면 자다가도 웃음이 나올 정도다. 한마디로 너무 어설프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나아진 듯하다. 강한 눈빛 말이다.
―최근에 연예인과의 친분이 자주 노출됐다. 연예인들과 사적인 만남을 자주 갖는지 궁금하다.
▲특별히 자주 만나는 사람은 없다. 가끔 식사 한번 할 정도. 연예인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만나고 싶다. 서로 겉모습만 보고 다가올 수 있는 거 아닌가. 서로 깊이 알면 알수록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우연한 자리에서 (황)신혜 누나를 만난 적이 있었다. 누나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해서 응했는데 그 사진이 인터넷에 나돌아 큰 화제를 모았다.
(최홍만은 황신혜와 찍은 사진에서 자신의 얼굴이 너무 크게 나왔다며 억울해 했는데 그 모습이 순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천하장사였을 때, 민속씨름 선수였을 때는 자신이 먼저 연예인들에게 다가가려 했다면 K-1 데뷔 이후에는 연예인들이 먼저 악수를 청하고 다가온다며 신기한 듯 얘기를 풀어나간다.)
―한때 영화배우 성룡과의 만남이 알려지면서 영화배우로 데뷔할 것이란 추측도 나돌았다.
▲추측이었을 뿐이다. 지금은 그런 거 신경 쓸 만한 여유가 없다. 벌써부터 다른 데 눈 돌아가면 안 된다. 영화는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기회가 되면 생각해 볼 문제다.
―씨름할 때보다 더 많은 부와 인기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름할 때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 분명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날 너무 ‘월드컵’의 이미지로만 본다. 즉 내가 외국 선수들과 싸울 때 ‘한국 대표 선수’라고 인식하면서 응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다. 난 아직까지 격투기를 배워가는 초보 선수다. 즐기면서 살고 싶다. 나보다 강한 파이터를 이길 자신이 생겼을 때 ‘대표선수’라는 보이지 않는 마크를 감사히 여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좀 부담스럽다.
(최홍만은 매년 12월31일 종합이벤트 성격으로 열리는 K-1다이너마이트대회 출전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올해 너무 많은 시합을 벌였기 때문에 무리해 가면서까지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한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