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백화점’ 전전임·전임과 친분…불신 고개
재개발‧재건축 갈등의 중심에는 막강한 권한이 부여된 ‘조합’이 있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보면 각 지자체장 등이 재개발 재건축 관련 도시기본계획을 세우면 주민들로 구성된 재개발 재건축조합추진위원회가 설립, 정비구역 지정과 함께 조합이 정식 설립된다.
이 과정에서 조합은 사업 시행업체를 선정할 수 있고, 감정가 고시부터 공사현장 식당 선정까지 사업 전반을 운영할 수 있다. 특히 사업시행 인가를 받으면 구역 내 토지와 건물에 대해 강제 수용권을 가질 수 있는 등 행정기관과 다름없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조합은 운영비를 시공사로부터 지원받아 사용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수 조합장 등 임원들이 “시공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으며 불투명한 운영비 집행 등으로 주민들의 반발도 사고 있다. 한 시공사 관계자는 “절대적 권한을 쥐고 있는 조합 간부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사업승인은 물론 시공권도 확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최근 서울의 한 재개발 현장에는 이러한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논란이 된 곳은 서울 강북구 미아4구역 재개발 현장으로, 이곳은 현재 조합장 자격에 대한 정관 해석을 두고 소송전이 벌어지는 등 첨예한 줄다리기가 진행 중이다.
미아 4구역 꿈의 숲 롯데캐슬 조감도.
지난 1월 8일 김 아무개 씨와 최 아무개 씨 등 후보들은 해당 재개발 구역 조합장 선거에 출마했고, 김 씨가 최종 당선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최 씨 등은 조합 정관을 근거로 “이 조건과 부합하지 않아 김 씨는 조합장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합 정관 제15조 제2항을 보면 ‘피 선출일 현재 사업시행구역 안에서 5년 이상 건축물 및 그 부속 토지를 소유한 자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김 씨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합원 측 기록과 강북구청 등에 따르면 조합장으로 당선된 김 씨는 지난 1989년부터 2003년까지 사업시행구역 내의 106㎡(32평) 주택을 소유하다 지인에게 팔았다. 그렇게 김 씨의 소유권이 타인에게 이전된 것. 그리고 10년 뒤, 재개발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2013년 김 씨는 아들 명의로 다시 해당 부동산을 사들였다. 이후 지난 2015년 10월 아들 명의의 토지 0.99㎡(0.3평)를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고 조합장 선거에 출마, 당선됐다.
문제를 제기한 미아 4구역 조합의 한 관계자는 “조합장이 되려면 5년을 역산해 적어도 2011년 1월 8일 이전부터 현재까지 계속해 사업시행구역내에 건물 혹은 토지를 소유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김 씨가 약 14년간 미아 4구역 재개발지역에 거주했지만 정관에 따르면 조합장 자격은 갖추지 못한다는 얘기다.
반면 조합장 김 씨 측은 “과거 14년간 소유를 했기 때문에 시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업 문제로 소유하던 주택을 지인에게 넘겼지만, 소유자가 아닌 세입자로 그 집이 철거하는 시점까지 그대로 거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얼핏 모호한 정관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생긴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조합 관계자들이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첨예한 갈등을 빚는 이유는, 시공사 선정 단계서부터 조합장 비리로 인해 생긴 끝을 알 수 없는 불신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미아 4구역 사업은 2003년부터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조합의 사업 추진위원장이 시공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조합원 동의 없이 계약해 ‘추진위원장 직위 도용 혐의’로 벌금 100만 원을 선고 받고 계약 자체가 무효화됐다.
재입찰이 시작된 것은 3년 후인 지난 2006년이다. 이 과정에서 앞서의 시공사 대신 현재 시공사인 롯데건설이 입찰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추진위원장 최 아무개 씨에게 입찰 보증금 명목으로 3억 원을 건넸다. 이 추진위원장은 조합에 집행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고, 일부 자금을 경호비, 조합원 치료비 등 개인적인 명목으로 사용했다. 결국 그 내용이 한 조합원에게 포착돼 배임, 횡령, 도시정비법위반 혐의로 벌금 70만 원을 선고 받았다.
또한 추진위원장 최 씨가 조사를 받는 중 시공사가 선정됐는데, 입찰에 참여한 롯데건설은 조합에 지급해야 할 입찰 보증금 10억 원을 입금하는 대신 “낙찰된 회사가 선정된 후 입금하는 것으로 합의하자”는 모호한 의견을 내놨다. 미아 4구역의 한 조합 관계자는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사업 추진위원장이 시공사와 함께 임의로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입찰 보증금 없는 이상한 총회가 열렸고, 2개의 시공사를 제치고 롯데건설이 선정됐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평당 공사비가 309만여 원에서 375만여 원으로 오르는 등 시공사에 다소 유리한 계약이 체결됐고, 2009년 조합이 정식 설립되면서 추진위원장이던 최 씨가 조합장이 됐다. 현재 시공사가 제시하는 공사 단가는 이후 2014년까지 꾸준히 올라 400여 만 원이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또 다른 조합원들은 최 씨에게 입찰 보증금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고 추궁했고, 또 다시 소송과 경찰 조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시공사 측이 조합에 입금한 10억 원의 사용처를 아는 조합원이 한 명도 없었다. 경찰 조사 결과 조합장 최 씨는 입찰 보증금에서 추진위원회 시절 급여가 집행되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9900여 만 원을 가져갔고, 앞서 제기된 소송에서 자신의 변호사 비용을 조합 통장에서 활용한 정황이 포착됐다. 결국 최 씨는 횡령‧배임‧도시정비법위반 등의 혐의로 항소심까지 거쳐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앞서의 미아 4구역의 한 조합 관계자는 “이후 전 조합장 최 씨의 측근이었던 후임 조합장 역시 부재자 투표 서면 결의서를 훼손하면서 총 1510만 원 받은 혐의 등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며 “두 명의 조합장이 재개발 현장에서 저지를 수 있는 비리를 거의 모두 저지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앞서의 조합장 자격 논란이 불거진 이유도 여기서 비롯됐다. 이번에 당선된 조합장은 앞서 처벌받은 조합장들과 친분이 있기 때문”이라며 “정관 해석에서 이견이 있을 경우 정관 68조를 보면 대의원회가 해석하는 것에 따르기로 돼 있다. 그런데 앞서 처벌받은 조합장이 대의원이다. 어떻게 이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성토했다. 그렇지만 현재 조합장인 김 씨는 “전 조합장들과는 이웃사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제기한 의혹과 관련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북구청 관계자도 주민들의 분쟁에 난처한 입장이다. 강북구청 관계자는 “송사를 거치면서 주민들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객관적으로 분쟁을 중재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재개발‧재건축 전문 변호사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조합 임원은 막대한 사업자금을 운영하는 등 각종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종 비리에 노출될 소지가 크고, 이는 공사비 증액, 불평등한 계약체결 등과 같이 조합 및 조합원의 피해로 직결된다”며 “만일 주민들이 조합 비리를 포착했다 하더라도 소송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의 소모가 크기 때문에 상호간 힘들기만 할 뿐”이라며 “제도적 장치와 함께 각 지자체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