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든 ‘강풍’ 다시 불 날 온다
▲ 지난 5월 23일 축구 세네갈전에서 응원하는 강금실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 ||
강 후보는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번 도전을 ‘창조적인 실험’이라고 규정했다. 실험은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다. 뚜껑을 열어 확인하는 일이 남았지만 실험의 표면적인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여론은 여전히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당초의 계획대로라면 선거에서 질 경우 변호사라는 본업으로 돌아가면 되지만 강 후보 자신도 ‘정치인’이라는 새로운 명함에 ‘미련’이 생겼다. 여론의 관심은 지방선거 이후 강 후보의 선택에 모아지고 있다.
강 후보는 서울시장 선거에 나오기 전에 수차례에 걸쳐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었다.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의 평가도 “정치할 사람은 아니다”는 것이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 1월 중순 언론 간담회에서 강 후보를 두고 “정치보다는 춤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라”는 촌평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강 후보는 확실히 변했다. 그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과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또 “선거운동 과정에서 각종 문제점들을 목격했는데 선거에서 당선되지 않았다고 문제점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심경이 변화한 배경까지 설명했다.
이를 놓고 해석이 분분했지만 강 후보 측은 공식적인 ‘정치 입문 선언’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선거캠프에서 대변인을 맡은 오영식 의원은 “강 후보가 지방선거 이후에 정치의 전면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당원으로서 선거 이후에도 당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열린우리당은 강 후보의 손을 강하게 잡아끌고 있다. 선거 캠프에서 기획을 맡고 있는 민병두 의원은 당 홈페이지에 ‘강금실은 우리 모두의 공동자산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강 후보는 검찰개혁을 주도했고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했으며 대통령의 오른팔과 왼팔이 잘려 나가는 순간에도 흔들림이 없었다”며 “어떤 이유로도 강 후보를 버릴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민 의원은 또 다른 글에서는 “진정성과 진취성을 자신의 무기로 말할 수 있는 이런 완벽함은 정말 흔하지 않다”며 강 후보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또 다른 캠프 관계자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강 후보를 열린우리당에 붙들어 두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며 “강 후보도 직접 민생현장을 찾아 서민들을 만나면서 정치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 같더라”고 전했다.
서울시장 선거 판세가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 쪽으로 완전히 기울자 강 후보 캠프에서는 남은 기간의 선거전략을 당선보다는 ‘강금실 보호’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무리하게 반전을 시도하다가 이미지에 상처를 내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강 후보의 가치를 높이자는 의미다.
캠프 관계자는 “강 후보는 젊은층과 여성들을 중심으로 탄탄한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다”며 “능력이나 경력 면에서도 정치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열린우리당으로서는 강 후보와 같은 훌륭한 자원을 지속적으로 충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당선 가능성이 사실상 희박한 상황에서도 개혁 성향 인사들을 중심으로 지지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것도 지방선거 이후 강 후보의 행보를 주목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학계와 법조·출판계 지식인 101명은 지난 5월 25일 ‘강금실 지지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최근 적지 않은 서울 시민과 국민들은 개혁세력의 무기력에 희망을 상실하고 좌절에 빠져 있다”면서 “우리는 강 후보가 새로운 정치, 질 높은 민주주의를 펼칠 수 있는 새로운 21세기적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고 밝혔다.
강 후보와 동년배인 긴급조치 9호 세대 인사 100명도 지지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루는 선순환의 경제를 구현하고 환경을 지키고 삶의 질을 높일 굳은 의지와 역량을 가진 후보는 강금실”이라고 치켜세웠다. 여성계 인사들은 일찌감치 강 후보를 ‘여성계의 대표 주자’로 받아들였고 체육계 인사 30여 명은 “서울시 체육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적임자”라고 밝혔다.
이처럼 줄을 잇고 있는 일련의 지지 선언이 단순한 ‘선거용’은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개혁 진영을 중심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최근 재결집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개혁 세력이 강 후보를 새로운 구심점으로 삼을 것이란 해석도 내놓는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하면 강 후보의 정치무대 공식 데뷔는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시기는 다소 유동적이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강 후보가) 지방선거 직후에 일단은 무대 뒤로 빠질 것”이라며 “다시 전면에 나서는 시기와 방법은 이후의 정치 상황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이후에 본격적인 정계개편이 진행되면 이 과정에서 강 후보가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1월 당권경쟁에 나섰던 김근태 최고위원도 ‘범민주세력의 통합론’을 주장하면서 강 후보를 통합의 주요 대상으로 꼽았다. 김 최고위원 측은 당내 다른 어느 계파보다도 강 후보의 ‘정치 입문’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열린우리당 안팎에서는 전면적인 당 쇄신을 위해 강 후보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당 전략기획실 관계자는 “이번 지방선거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며 “당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당을 전면적으로 쇄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강 후보를 영입하면서 당의 간판으로 세우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가 가진 진정성과 문제의식은 열린우리당의 개혁과 변화를 위한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과연 강 후보의 선택은 어떤 것일까. 그의 다음 행보가 사뭇 궁금해진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