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학자금 집행현황’ 자료 분석…’금수저‘ 정무직 등 고위급 자녀까지 지원
공무원연금공단은 공무원 자녀가 해외 유학을 갈 경우 연간 최대 1만 달러까지 등록금을 빌려주고 있다. 정무직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 자녀까지 유학비를 대주는 건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소위 ‘흙수저’ 학생들은 늘어나는 등록금 부담에 울상이다. 대출 금리는 연 2.7%지만 원금이 쌓이면서 갚아야 할 이자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취업 후 학자금을 상환하는 ‘든든학자금’ 누적 대출액은 2010년 8000억 원에서 2014년 5조 6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정부가 학자금 대출 규모 및 금리를 결정하는 건 계층 간 차별 없이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일반 학자금 대출과 별도로 정부는 또 하나의 학자금 제도를 운영 중이다. 공무원연금공단이 공무원 본인 및 자녀를 대상으로 등록금을 빌려주는 ‘대여학자금’ 제도다. 대여학자금 제도는 ‘무이자 대출’이란 장점이 있으며, 국내·외 4년제 기준 8회, 6년제 기준 12회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최근 대여학자금 제도를 이용한 국가직 공무원(9급) 김 아무개 씨는 “공무원이 박봉인데 나름 좋은 제도”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실제 대여학자금은 일반 학자금 대출과 달리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복지 혜택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때문에 대여학자금은 좋은 사업 취지와 달리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그 운영 실태가 도마에 오른다. 대여학자금 제도를 비판하는 논거는 두 가지다. 첫째, 그 재원이 국민 세금이라는 것. 둘째, 대출이 무이자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첫 번째 논거에 대해 공무원연금공단 측은 지난 11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각각 재원 마련에 필요한 분담금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나머지 논란에 대해선 조심스런 입장이다. 두 번째 논거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공무원은 “대기업, 금융권 직원들은 억대 연봉에 학자금 지원까지 받는데 공무원 월급은 빤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대출 현황은 어떨까. <일요신문>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2005~2014년 ‘대여학자금 집행현황’ 자료를 입수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공무원연금공단은 지난 10년간 대여학자금 명목으로 모두 6조 3504억 원을 대출했다. 평균치로 나누면 연간 6350억여 원을 대여한 셈이다.
전체 예산 대비 집행률은 노무현 정부 임기인 2005~2007년이 연간 99.5%~99.8%로 가장 높았다. 이명박 정부 임기인 2008~2012년에는 88.5%~99.7%로 편차가 심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2013년 95.3%, 2014년 96.0%의 집행률을 기록했다.
대여학자금 책정 예산은 2005년 5148억 원이던 것이 2008년 6910억 원으로 뛰었고, 2010년에는 다시 7747억 원으로 상승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감소세를 보였는데 2013년 6610억 원, 2014년 6231억 원을 각각 편성했다.
전체 대출 건수는 2008년부터 감소세를 보였다. 2008년 21만 5659건이 신청됐던 대여학자금은 2014년 18만 7437건으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전체 공무원 수는 96만 8684명에서 101만 310명으로 늘었다.
공무원 정원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대여학자금 신청 건수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대학가에서 서민들의 학자금 대출이 늘고 있는 것과도 대비된다. 이는 40세 이상 공무원 근속이 짧아지고, 자녀의 수가 감소한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또는 공무원 평균의 경제적 여건이 나아진 것일 수도 있다.
<일요신문>은 통계 가운데 일부 공무원의 경제력을 추론할 수 있는 ‘해외유학생’과 관련한 데이터를 뽑았다. 실제 공무원 중 자녀가 해외 정규대학에 진학해 대여학자금을 신청한 건수는 10년 사이 2배 이상 늘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신청인 자녀가 해외유학을 간 경우 연간 최대 1만 달러(약 1192만 원, 환율에 따라 원화로 지급)까지 등록금을 빌려주고 있다.
2005년 기준 1537건이 이뤄졌던 해외 대학 대여학자금은 2007년 2000건을 돌파했고, 2009년부터 2013년 사이에는 연간 3396~3574건이 신청됐다. 금액은 2005년 76억 원이던 것이 2009년에는 260억 원으로 급증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해외 대학 대여학자금은 2013년 240억 원, 2014년에 214억 원이 각각 집행됐다. 지난 10년간 해외 대학 대여학자금 집행 건수는 2만 9104건, 총액은 1949억 원으로 집계됐다.
능력 있는 학생이 해외유학을 가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서민의 경우 유학을 가고 싶어도 학자금 대출을 받기는 어렵다. 정부 학자금 대출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한국장학재단 측은 지난 14일 “해외 유학생(정규 대학생 포함)은 학자금 대출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해외 대학 대여학자금은 국내 대학 학자금 대출과 달리 직전 학기 학점 등이 심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특히 정무직 등 고위 공무원 자녀까지 해외유학비를 대주는 건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흙수저들의 세금을 ‘금수저 대물림’에 쓰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요신문>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2007~2015년 대여학자금 해외 대학 급수별 대부현황’을 보면 정무직 공무원이 유학 자금을 빌린 건수는 지난 9년간 29건으로 조사됐다.
정무직 공무원 총원은 2014년 말 기준 120명이며, 이 가운데 정원이 가장 많은 부처는 대통령비서실(11명)로 확인된다. 공무원연금공단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유학 자금을 받은 청와대 소속 공무원들의 명단 공개를 거부했다. 장·차관급 공무원도 마찬가지 이유로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3~2015년 판·검사가 해외 대학 대여학자금을 신청한 건수는 35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이명박 정부 5년간 이뤄진 판·검사 대출(32건)보다 많은 수치다. 단 같은 기간 고위 공무원인 1~3급의 해외유학 대출은 17건에 그쳐, 이명박 정부 때(416건)보다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2학기 일반 학자금 대출 이자는 7.8%였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