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바람 피바람…명박 동영 ‘휘청’
▲ 정동영, 김근태, 이명박, 박근혜.(왼쪽부터) | ||
그렇게 될 경우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김근태 최고위원은 대권 시장에 ‘상장’도 한번 해보지 못하고 퇴출될 위기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반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선거 막판의 피습 사건에 대한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 지사는 선거와 한 발짝 거리를 두면서도 향후의 정계개편 과정에서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반면 고건 전 총리는 대외적 선거 운동을 자제하면서 ‘소 걸음’을 걷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대권주자들의 ‘예비고사’ 성격까지 띠고 있다. 그래서 선거 결과에 따라 그들의 한계와 비전이 동시에 드러나면서 향후 대권 판도도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지방선거 뒤 대권 주자 6인의 엇갈린 운명과 그에 따른 ‘신 대권지도’를 그려봤다.
#정동영 지고 김근태 뜬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해 말 통일부 장관직에서 물러날 결심을 했다. 당으로 복귀한 뒤 지방선거 승리를 이끌어 확실한 대권 주자의 위상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도박이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정 의장의 당 복귀 결정이 너무 성급했던 것 같다. 당시 주변 참모들 대부분이 당 복귀와 함께 대권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안다. 결국 정 의장은 그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권은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에게 그 기회가 돌아간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정정당당히 지방선거에 맞섰지만 한번 되돌려진 민심을 극복할 순 없었다. 이제 그는 지방선거 뒤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다. 문제는 그가 당 의장직에서 물러날지의 여부다.
정 의장은 지난 4월 20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10년간 정치하면서 국회의원, 최고위원, 당의장, 통일부 장관 모두 스스로 그만뒀다. 5·31 이후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당당하게 책임질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 말은 구차하게 당 의장직에 연연할 생각은 없으며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지면 의장직을 사퇴한 뒤 백의종군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정 의장은 7월 재·보궐 선거 때 서울 성북 을에서 출마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선거 패배 책임을 정동영 의장 개인에게만 물을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선거 몇 달 전부터 선거 패배가 예상됐기 때문에 누가 나섰더라도 어려운 승부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 의장이 물러나더라도 현재의 지도부를 대체할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개헌 정국으로 들어갈 경우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하는데 비상 지도체제로 그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정 의장은 ‘대연합론’과 ‘개헌론’이라는 두 방패로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이라는 창에 맞설 생각이다. 하지만 자리에 연연하는 것보다 아직 1년이나 남은 대권 후보 경선을 밑바닥에서부터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는 게 주변의 충고다.
김근태 최고위원과 정동영 의장의 정치적 운명은 ‘따로 또 같이’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최고위원 역시 지방선거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 2인자로서 정 의장과 함께 선거를 진두지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도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지면 정 의장과 같이 동반 사퇴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어떤 면에서는 정 의장의 가시밭길보다 편한 길을 갈 수도 있다. 김 최고위원은 정 의장이 선거 막바지에 ‘민주개혁세력 대연합론’을 펼치자 “지금은 그것(대연합론)보다는 국민들의 질책을 받아들여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게 중요하다”며 즉각 대립각을 세웠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은 정 의장이 ‘대연합론’을 통해 선거 대패에 대한 ‘지도부 책임론’을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슬쩍 넘기려는 것을 그냥 봐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철저한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며 정 의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김 위원에게는 정 의장의 탈출로보다 나은 ‘대안’이 있다. 그는 선거 전 과감하게 고건 전 총리를 만났다. 그리고 선거 뒤 ‘제휴’를 내락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정 의장이 뒤늦게 고 전 총리를 통한 대연합론을 부르짖고 있지만 김 위원이 선취권을 쥐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리고 김 위원이 민주당과의 통합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비치고 있는 것도 정 의장의 대연합론과 차별화를 시도해 향후 정국을 주도해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김근태 계보는 정 의장 계보에 이어 당내 2위의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정 의장이 구상하는 정국운영 기조를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것이란 게 일반적 해석이다. 또한 김 위원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의 연대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강 전 장관은 올해 초 “정치를 하게 되면 (2월) 전당대회 이후가 될 것이며 김근태 의원과 같이할 것 같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 위원 측은 앞으로 김-강 두 사람의 연대가 상당한 폭발력을 가지게 될 것이며 이는 곧 정동영 의장의 자연스런 ‘퇴장’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 손학규(왼쪽), 고건 |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비록 피습에 따른 ‘피’의 결과이긴 하지만 박 대표의 최근 당내 위상은 다른 대권주자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박 대표가 입원해 있던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이명박 서울시장이 두 번이나 찾아왔다. 현장에서 그 장면을 봤는데 오너(박 대표)를 걱정스럽게 문병 가는 회사 임원(이 시장)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친 이명박 계열로 분류되는 홍준표 의원마저도 “이번 사건을 통해 박 대표가 정말 대통령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박 대표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또한 평소 박 대표에 대해 마뜩찮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영남권 중진 의원들마저도 피습 사건에서 박 대표가 보여준 의연함을 모두들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박 대표는 수년이 걸릴지도 모를 ‘신뢰도 제고’를 단 며칠 만에 이루어냈다. 어떤 중진의원은 “야당 지도자의 피습사건은 그의 정치적인 대표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인식된다. 박 대표는 천운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박 대표에 대한 국민들의 동정심과 함께 야당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대선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상당히 깊은 인상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의 인기 상승은 이명박 시장의 추락으로 이어진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 시장은 정동영 의장과 함께 최대의 피해자로 간주된다. 정 의장이야 더 이상 잃을 지지율도 없었기 때문에 이번 선거의 실패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장은 다르다. 그는 지난해 10월 청계천 개통식을 계기로 여야 통틀어 가장 강력한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박 대표와도 10% 정도의 지지율 차이를 보이면서 훌쩍 앞서나간 게 사실이다. 그는 올해 초 ‘황제테니스 파문’을 겪으면서도 지지율에 큰 변화가 없었을 만큼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 대표 피습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박 대표가 단숨에 고 전 총리와 이명박 시장을 앞지르며 선두를 달렸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5월 23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박 대표 지지율은 27.2%로 이명박 시장의 지지율(21.9%)보다 5.3%포인트나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장은 또한 지방선거 정국에서도 박 대표에 밀리는 모습이다. 박 대표는 비록 공천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대표로 있을 때 공천을 준 전국 광역단체장 대부분이 박 대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는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이 시장은 서울시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친 이명박계’로 분류되던 홍준표 의원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홍 의원은 그에 대해 크게 실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시장이 홍 의원을 비롯한 수도권 일부 의원들의 ‘민심’을 잃은 것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무엇보다 이 시장은 청계천 약발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까지 청계천 효과를 이어나가지 못할 경우 그것을 대체할 큰 이벤트를 만들어야 하는데 시장 퇴임 뒤 그런 것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심하고 있는 것 같다. 반면 박 대표의 경우 피습 효과에 이어 지방선거 압승이라는 공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비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경기도 지사는 지방선거 과정에서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지난 4월 기자에게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엄정 중립을 지킬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들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누가 되더라도 자치단체를 잘 이끌 것으로 본다. 하지만 대권과 연계해 그들을 지지하지는 않을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손 지사는 최근 <일요신문>과 <미디어오늘>이 잇따라 실시한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 대상 여론조사에서 대통령감 선호도 부분에서 각각 2위, 1위를 차지해 크게 고무돼 있다. 이 같은 결과 때문인지 손 지사 진영의 행보가 부쩍 빨라진 모습이다. 실제로 손 지사는 지사직을 퇴임한 뒤부터 한나라당 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의원들을 자주 접촉하며 세를 규합해 나갈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손 지사는 7월 전당대회를 위해 조용히 물밑 작업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당대회에서 대권주자인 자신은 당권에 도전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대리인으로 누군가는 당권 주자로 내세워야 할 입장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손 지사와 소장파의 관계가 매우 좋기 때문에 그 ‘링크’ 부분에서 뭔가 ‘해답’이 나올 것 같다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그 과정에서 박 대표와 손 지사의 연대설도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박 대표의 조직력과 손 지사와 소장파의 개혁성이 결합하면 당을 혁신하면서도 조직을 장악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비록 박 대표와 소장파의 관계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손 지사가 그 사이에서 ‘다리’가 돼 줄 경우 그 시너지 효과는 클 것으로 전망된다.
고건 전 총리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철저히 ‘국외자’로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그의 지지세력임을 자임하는 ‘한미준’ 등으로부터 “역사의 죄인”이라는 비난을 받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고 전 총리는 한미준의 관계자들이 그와 접촉을 시도할 때 측근인 K 씨를 그들에게 보내 묵시적으로 ‘지원’을 약속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미준 한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겠지만 대선까지의 장기적 관점에서 지지세력을 ‘관리’하려고 했던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에게 희망적인 얘기도 많이 했고 어떤 사안에 대해 교감도 나누었다. 지금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충격적인 내용이 많다. 고 전 총리가 정치를 하려면 확실하게 우리와의 관계도 정리를 해줘야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 전 총리는 한미준과의 관계에 대해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또한 고 전 총리는 공개적으로 “아직 움직일 때가 아니다”라며 예의 ‘강태공론’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그런데 박 대표 피습 사건 뒤 고 전 총리의 지지율에 변화가 일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23일 CBS의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 결과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이 전주 대비 7%포인트 하락한 17.7%로 나타났다고 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고 전 총리의 지지율 하락이 박 대표 피습 효과에 영향을 받은 점도 있다고 해석한다. 일각에선 이를 지금까지 ‘말’로 일관해온 고 전 총리가 이제 ‘몸’으로 뭔가 보여줄 때가 되었다는 여론의 메시지로 해석한다.
고 전 총리는 현재 몇 가지 카드를 손에 넣고 꼼지락거리고 있다. 우선 최대한 욕심을 불려 다양한 정파들과 연대를 하는 방식이다. 민주당·국민중심당과 열린우리당의 이탈세력이 같이하는 ‘서부벨트 연대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구상은 여당의 분당을 전제로 한다. 만약 여당이 비실거리면서도 계속 당을 유지해나갈 경우 고 전 총리의 그랜드 플랜도 한낱 미몽에 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가 한나라당 또는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대권 후보를 차지하는 것은 고 전 총리의 성향상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열린우리당은 지지율이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입당한다면 고 전 총리도 ‘한통속’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 입당도 쉽지 않다. 보수 성향의 지지 의원들이 많긴 하지만 박근혜·이명박이라는 유력 대권주자들을 단기필마로 물리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그런 까닭에 고 전 총리 측근들 사이에서는 ‘고건 신당’ 창당을 두고 갑론을박이 자주 벌어진다고 한다. 고건만의 색깔을 가장 잘 나타내줄 수 있기 때문에 생명력이 있을 것이란 계산에서다. 하지만 ‘청렴한’ 고 전 총리가 어떤 돈으로 창당 자금을 마련할지 부정적 의견이 많다. 또한 위험을 자초하지 않는 고 전 총리 성향상 창당은 ‘꿈’에 가깝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고 전 총리의 한 측근은 “개인적 생각으로는 올바른 국민들이 정치세력을 이루기 위해 국민 참여 방식의 창당 방법을 추진할 경우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 전 총리의 ‘결단’ 시기와 관련해 “국민들의 지지가 계속돼 본인이 소명의식을 느낄 정도가 됐을 때 결단을 내리지 않겠는가. 자신의 마지막 임무가 국민을 위하여 남아 있다고 판단될 때 과감하게 결단할 것으로 본다”면서 “그 시기는 올 연말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을 뿐 (고 전 총리가 결단할) 특정 시점을 지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뒤 전개될 정계개편은 필연적으로 대권주자들까지도 ‘구조조정’ 바람에 휘말리게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6룡 가운데 몇 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반면 여야의 새로운 잠룡이 나타나 그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