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마다 불쑥…맛있는 양념도 과하면 ‘독’
그렇다면 실제로 예능 프로그램에 쓰이는 자막의 개수는 몇 개나 될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소속 방송언어특별위원회는 지난 1월 15일부터 17일까지 각 지상파와 케이블채널을 대표하는 예능인 MBC <무한도전>과 KBS 2TV ‘1박2일’, tvN <꽃보다 청춘-아이슬란드>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평균적으로 3초에 한 번씩 자막이 쓰인다는 것이 확인됐다. 예능 프로그램이 한 편당 통상 80분 정도 방송되는 것을 감안하면 예능 1편을 보는 동안 시청자들은 1500개 안팎의 자막을 읽고 있는 셈이다.
이 조사에서 가장 많은 자막이 쓰인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이었다. 총 1616개가 삽입돼 평균 2.91초당 1개가 등장했다. 글 자막뿐만 아니라 해골 마크와 같은 그림 자막도 많았다.
MBC <무한도전>
그렇다면 자막은 주로 어떤 내용일까? 출연자들이 쏟아내는 대사를 그대로 받아 적거나 예능 프로그램 속 상황을 부연 설명하는 정도다. 이는 곧 자막이 없어도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예능 PD들의 생각은 다르다. “자막이 없으면 재미가 반감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평범한 상황도 자막이 더해지면 웃음이 배가된다는 것. 한 지상파 예능국 PD는 “자막은 단순히 대사를 옮기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넣거나 패러디를 통해 다양한 상황을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사실, 예능 PD들에게 자막 쓰기는 ‘중노동’이다. 통상 1분 분량의 자막을 다는 데 필요한 시간은 1시간 정도. 조연출 2명이 80분물에 자막을 붙이려면 각각 40시간은 꼬박 투자해야 한다. 야외물이 대다수인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경우 출연자 1명당 VJ를 따로 배당한다. 하루 종일 촬영을 한다면 편집해야 할 녹화 테이프는 산더미다.
이 예능 PD는 “이렇게 막대한 분량을 소화하면서도 자막을 일일이 붙이는 것은 그만큼 효과가 분명하기 때문”이라며 “‘자막 공해’라는 말도 있지만 제작진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시청자들도 이를 원하고 즐기기 때문에 자막을 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막은 예능의 전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그램의 장르와 성격에 따라 활용 빈도의 차이가 크다. 방송언어특별위원회가 1월 17일~18일 토크쇼를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는 총 1408개(3.40초당 1개)의 자막이 사용됐다. 실내에서 촬영되는 스튜디오물이지만 <무한도전>, ‘1박2일’과 별반 차이가 없다.
반면 이 시기 방송된 KBS 1TV 교양 토크쇼 <역사저널 그날>과 TV조선 시사토크쇼 <이슈 해결사 박대장>에는 각각 8.19초당 1개(총 366개), 24초당 1개(총 125개)의 자막이 달렸다. 세 프로그램 모두 끊임없이 대화하는 형태로 진행되지만 자막 사용법은 달랐다. 예능이 교양과 시사 프로그램에 비해 진행 속도가 빠르고 출연진이 많은 것도 자막이 자주 쓰이는 이유 중 하나다.
빈번한 자막 사용이 지적 대상이 되는 이유는 또 있다. 맞춤법에 맞지 않거나 표준어라 볼 수 없는 외계어나 신조어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통신용어들이 범람하며 언어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KBS <해피선데이> ‘1박2일’
요즘 또 많이 쓰이는 신조어는 “열일한다”와 “1도 없다”다. 각각 “열심히 일한다”와 “하나도 없다”는 표현을 달리 쓴 것인데 예능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10대들의 경우 여과 없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비표준어가 아예 프로그램의 제목으로 쓰이기도 한다. 지금은 종방됐지만 KBS 2TV <개그콘서트> ‘핵존심’이나 tvN <코미디 빅리그> ‘썸&쌈’ 등은 어법에 맞지 않는 신조어다. 요즘은 SNS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대중이 짧게 표현한 글과 말들이 여과 없이 유입되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됐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방송이 메이저의 범주로 들어온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각 출연진이 실제로 개인 인터넷 방송 모습을 편집 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각 장면을 지켜보며 네티즌이 실시간으로 다는 댓글을 챙겨보는 것이다. 촌철살인 댓글이 많지만 이 중 적잖은 표현이 맞춤법에 어긋난다. 이를 그대로 내보내면 언어 환경을 파괴하는 역기능이 생기지만, 이런 표현을 맞춤법에 맞게 바로잡으면 재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해 9월 한글날을 앞두고 방송제작자 등이 준수해야 할 방송언어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방송언어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공표하기도 했다. 또한 여성가족부와 국내 주요 방송사들이 함께 ‘방송언어 개선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반발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있다. “욕설이나 비속어는 당연히 쓰지 말아야 하지만 대중에게 통용되는 신조어의 경우 예능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재미를 추구하는 차원에서 어느 정도 용인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