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신대륙…아시아보다 한발 앞서간다
▲ 2006 네이션스컵 대회에서 토고와 카메룬의 대결 모습. 토고는 비록 2 대 0으로 패했지만, 공격수 아데바요르(오른쪽)의 플레이는 꽤 위협적이었다는 평이다. 로이터/뉴시스 | ||
아프리카 흑인들의 이상적인 신체조건과 야성적인 플레이가 유럽의 시선을 끌기 시작하면서 오늘 이야기할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줄여서 ACN이라고 하자)은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는 유력한 신흥시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ACN의 내력에 대해서 다소 지루하지만 짚고 넘어가 보도록 하자. 그래야 ACN이 유럽 또는 세계축구와 어느 정도의 함수관계를 갖는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격년제로 치러지는 ACN이 1957년 수단에서 제1회 대회가 개최되었을 당시 참가국은 불과 4개국이었다. 63, 65년에는 블랙아프리카에서 가장 빨리 독립을 선포한 가나가 2연패를, 68, 70년에는 연속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한동안 아프리카 축구의 대명사로 통한 바 있었다. 1965년부터 82년까지 당시 출전한 팀들은 오직 두 명의 해외파 선수만을 참여시킬 수 있었으나, 수많은 인재들이 유럽으로 수출되는 빈도가 높아짐에 따라 드디어 유럽 클럽축구 시즌과 충돌하지 않기 위해 1월에 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더불어 본선 참가국도 대거 늘어나 4개국에서 8개국으로, 92년에는 12개국으로, 96년에는 유럽컵과 마찬가지 규모의 16개국으로 증가되었다.
90년대 들어 ACN으로 대표되는 아프리카 축구의 위상은 날로 향상되어 왔다.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은 더 이상 싼 값에 들여와 본전을 뽑겠다는 유럽의 싸구려 수입품으로만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일찍이 가나는 아베디 펠레와 토니 예보아 라는 걸출한 스타들을 유럽 무대에 등장시켰고, 96년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나이지리아 대표선수들의 거의 대부분이 유럽으로 진출하였으며, 라이베리아라고 하는 소국의 월드 스타 ‘죠지 웨아’가 유럽 및 FIFA 세계최우수선수상을 획득하는 등 21세기를 통과하는 시점을 전후해 아프리카 축구는 유럽과 남미에 이은 축구 제3의 대륙으로 도약한다.
과거에는 유럽에서조차 ACN에 대한 언론매체의 언급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지금은 전 경기가 라이브로 중계되면서 어떤 스타급들이 다음 시즌 유럽으로 수출될 것인가를 심사하는 경연장으로 활용된다. 또한 월드컵, 유럽컵, 남미컵(코파 아메리카)의 시즌 분할(서로 중복되지 않도록 개최 시기를 조정하여 중계 카버리지를 높이는 것)에 동참하여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대회가 치러지도록 배려함으로써 아프리카 축구가 글로벌 축구 시대의 중요한 구성인자로 정착되는 데 기여했다.
안타깝게도 이 아프리카 축구에 비하면 아시아 축구는 아직 그러한 세계적 메커니즘의 핵심적 요소가 되지는 못한다. 아시안컵 대회 참가국의 전력이 천차만별이라 전체적으로 수준 미달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어차피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ANC에도 소위 리딩 그룹들이 있기는 있다. 가나, 카메룬, 나이지리아, 이집트, 튀니지 등. 그러나 지금 진행 중인 이번 대회의 중간 기록을 보면 아프리카 축구는 상당한 수준의 평준화 작업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데 아시안컵은 거의 중동의 전통 강호들과 한국 및 일본이 나누어 갖는 양극화 현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아시안컵이 극소수 국가들의 연례적 잔치로만 계속된다면 세계축구와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없게 된다. 이 점이 아시안컵, 아시아 축구가 안고 있는 절대적인 딜레마다.
어떤 대회이든 전통의 강호들이 향상된 경기력을 통해 대회 자체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축구의 쇼 비즈니스 차원에서 당연히 요구되는 지상 명제다. 하지만 축구의 신흥국가들이 강호들을 뒤엎는 ‘반역의 시간들’이 나타나야 축구는 더욱 재미있어지는 법이다. 올해 튀니지를 제외한 4개국이 월드컵에 처녀 출전한다. 이 국가들이 어떠한 성적을 낼 것인가가 아프리카 축구의 장래를 좌우할 것으로 보이며, 그 전초전이 바로 ACN이다. 우리는 아시아보다 한 발 앞서간 아프리카축구를 지지하고 성원해야 한다. 그래야 축구라는 세계적 화원(花園)을 보다 다채롭게 장식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전 축구대표팀 미디어 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