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경영체제 와중에…‘형제경영‘ 전통 깬 ‘부자경영’ 신호탄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은 입사 이후 14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올랐다.
기 전 사장뿐만 아니라 그룹의 상근고문이었던 서구 고문과 박찬법 고문도 이번에 회사를 떠났다. 서 전 고문은 지난 1962년 금호고속의 전신 광주고속부터 그룹과 함께한, 올해로 근무연속 54년에 달하는 최장수 임원으로 꼽힌다. 고문으로 물러난 뒤에는 그룹 오너 일가의 재산관리까지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고문 역시 47년을 그룹에 몸을 담근 원로로, 특히 ‘형제의 난’ 당시 박삼구 회장이 2선으로 물러났을 때 1년간 공식적인 그룹 총수 자리를 맡기도 했다.
이들은 박삼구 회장 등과 함께 오랫동안 그룹을 지켜온 원로 임원들이다. 원로 임원들이 줄퇴진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박 회장의 장남 박세창 사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박 사장은 지난 2월 정기 임원인사에서 그룹 전략경영실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동안 대표이사를 맡아온 아시아나세이버에서도 사장을 맡게 됐다. 박 사장의 사장 승진은 2002년 그룹에 입사한 이후 14년 만이다.
특히 금호산업은 오는 28일로 예정된 주총에서 박 사장 등기이사 신규선임 안건을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0.08%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사실상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 박 사장이 금호산업 이사진에 합류하면서 그룹 경영 최전선에 나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박 사장의 경영 일선 등판을 두고 우려의 시선도 있다.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상황이 녹록지 않은 변화의 시점에 와있기 때문이다. 박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 확실한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과 금호타이어 모두 실적이 좋지 않다.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금호산업을 다시 품에 안은 박삼구 회장은 그룹 재건을 마무리하고 창립 70주년을 맞은 2016년을 ‘비상경영의 해‘로 선포했다. 그룹 체질개선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룹의 주력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나항공은 2014년 12월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을 종결했지만, 여전히 부채비율이 1000%에 육박해 수천억 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950억 원으로 2014년 대비 3.1% 감소했고, 당기순손실은 815억 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올해 금호타이어 인수도 난제로 떠오르고 있다. 채권단은 올해 안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마지막 매물인 금호타이어 지분 매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매각 대상 지분은 산업은행과 채권단이 보유한 금호타이어 지분 42.1%(6636만 9000주)다. 업계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최소 1조 원 이상의 매각가가 형성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까지 인수해 완전한 그룹 재건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매수청구권도 보유하고 있어 인수에 유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금이다. 7228억 원이 투입된 금호산업 인수도 ‘백기사’ 도움으로 겨우 성공한 상황에서 조 단위 자금을 또다시 마련하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그룹 안팎에서는 금호타이어 인수를 두고 그룹의 위기를 다시 초래하는 결정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호산업 인수의 경우 그룹 경영권과 아시아나항공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금호타이어는 ‘완벽한 그룹 재건’이라는 명분만 내세운 무리한 인수라는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금호타이어 인수전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고 현재 매각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따라서 인수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과 금호아시아나 건물 전경.
또한 박 회장에서 박 사장으로의 경영승계가 이뤄진다면 금호그룹으로서는 특별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금호그룹은 박인천 금호 창업주 이후 그의 아들들인 박성용-박정구-박삼구로 이어지는 ‘형제경영 전통’을 이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은 박삼구 회장에 이르러 끊기고 말았다. 박 회장과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경영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고,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회사가 갈라지게 된 것도 형제경영 전통이 깨졌기 때문이다.
박 회장이 박 사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면 ‘형제경영’에서 ‘부자경영’으로 바뀌는 기점이 된다. 그룹 전통이 이어졌다면 차기 그룹 회장에 올라야 할 2대 고 박성용 회장의 장남 박재영 씨는 2009년 ‘금호가 형제의 난’ 이후 그룹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있다. 그룹 지분 역시 상당부문 매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3대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 박철완 씨는 현재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화에서 상무직을 맡고 있다. 금호산업 보유 주식도 겨우 501주에 불과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박철완 상무의 경우 친인척 관계이기 때문에 금호산업 최대주주 특수관계인에 묶여있을 뿐 지분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박철완 상무가 박세창 사장의 경영승계에 제동을 걸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귀띔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박 사장의 후계승계 작업 진행에 대해 “이번 인사를 두고 박 사장의 경영승계 작업을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며 “금호산업 등기이사 선임은 책임경영에 나서겠다는 박 사장의 의지”라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변화의 시기가 박세창 사장에게 경영권 승계를 위한 밑바탕을 다지기 좋은 때일 수도 있다. 박 사장이 그룹에서 10년 넘게 일하며 경영을 배웠고, 실력도 인정받았다. 특히 금호타이어에서 5년 넘게 부사장 등 임원직을 수행한 만큼, 인수전이 시작되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서도 “한편으론 나이와 경험 면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남은 어려운 과제들을 해결해 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