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부활전 열리나…한쪽은 ‘한숨’ 한쪽은 ‘함성’
면세점제도개선안에는 서울시내 면세점을 신규로 추가 허용하고 특허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추가 허용과 특허기간 연장은 이미 결정됐다”며 “관건은 신규 추가 업체 수인데 기획재정부 내에서 이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업계가 혼탁해지고 있는 까닭은 특허기간 연장에 있지 않다. 특허기간 10년 연장안에 대해서는 그동안 5년이 너무 짧다는 비판이 거셌던 데다 대부분 업체가 특허기간 연장에 동의하고 있던 터라 큰 말썽 없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서울시내 면세점 신규 추가 허용이다. 업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시장이 과열돼 공멸할 것이라는 주장과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경제발전과 고용촉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해 7월 10일과 11월 14일 서울시내 면세점 선정 결과, 새로 사업권을 따낸 한화·신세계·두산 등은 강력 반발하고 있는 반면 월드타워점을 잃은 롯데와 워커힐점을 뺏긴 SK네트웍스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업체들도 신규 허가 움직임을 재촉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아예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을 4곳 이상 추가 허용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랜드, 유진기업 등 지난해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에 도전했다 실패한 업체들도 언제든 움직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지방조달청에서 열린 ‘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면세점 제도개선 공청회’는 업체 간 이해관계가 얼마나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최낙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외국인 관광객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데다 수출 확대, 고용 창출 차원에서 서울시내 면세점을 추가 허용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KIEP가 국책연구기관이라는 점에서 이날 최낙균 연구위원이 제시한 방안이 곧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선안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졌다. 앞서 김낙회 관세청장은 여러 차례 “면세점 제도를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정부가 서울시내 면세점으로 허가한 곳은 모두 9개. 기존 7개에서 지난해 한화와 HDC신라에 면세사업권을 신규로 허가함으로써 9개로 늘어났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SK의 워커힐점은 각각 신세계와 두산으로 교체됐다. 그런데 정부가 여기서 또 신규 허가해주려는 움직임이 일자 업계에 소용돌이가 몰아친 것이다.
만일 정부가 신규 면세점을 추가 허용한다면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을 새로 시작하는 업체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사업에 진출한 한화·두산·신세계·HDC신라는 신규 업체가 또 생기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경쟁이 치열해져 쓰러지는 업체도 있을 것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따낸 신세계는 오늘 6월 면세점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실제로 이들 신규 업체들은 지난해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입찰 과정을 거쳐 사업권을 따냈지만 명품 브랜드 유치 등에 고전하며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입찰 과정에서는 황금알을 기대했지만 자칫 계륵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면세점에) 파리만 날리고 있다”는 푸념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화갤러리아 면세점은 지난해 말 오픈했으며 두산과 신세계는 오는 6월 면세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이들 업체는 사장단까지 나서 정부에 호소하고 있다. 지난 17일 양창훈 HDC신라면세점 사장, 황용득 한화갤러리아 사장, 성영목 신세계DF 사장, 이천우 두산 부사장, 권희석 SM면세점 회장은 세종시 기획재정부를 방문해 정부의 서울시내 면세점 추가 허용에 대한 신규 업체들의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반면 지난해 11월 월드타워점을 잃은 롯데와 워커힐점을 뺏긴 SK네트웍스는 정부의 추가 허용 움직임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 두 곳은 그동안 사업권을 잃음으로써 투자비를 몽땅 날린 데다 폐점으로 인해 손실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가 추가 허용한다면 되살아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특히 롯데의 경우 잠실 롯데월드타워와 함께 월드타워 면세점을 외국인 관광객 명소로 만들 수 있는 계획을 다시 짤 수 있다. 롯데는 정부 움직임을 반대하는 경쟁업체들을 향해 “지난해 신규 사업권 때는 면세점 사업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업체들이 지금은 사업 진입 장벽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며 비난했다.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현대백화점 역시 신규 허가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나아가 면세점 사업과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각종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현행 허가제를 신고제로 전면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면세점 간 경쟁을 촉진시켜 우수 업체들의 노하우를 활용하고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면세시장의 진입장벽 자체를 완전히 철폐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가 신규 면세점 특허를 2개 이하로 허용할 경우 (지난해 탈락한 롯데 월드타워점과 SK 워커힐점을 살려주기 위한) 도루묵 특혜, 돌려막기식 특혜가 될 수 있다”며 “최소 4개 이상 허용해야 논란이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