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공간 폐허로…철거 vs 보존 극한 대립
지난 3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무악동의 재개발지역 일대에 소방차가 출동했다. 가스가 새서 폭발 위험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온 것. 인근 주민들은 가스로 화재 위험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일곱 시간 동안 추위에 떨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은 “옥바라지골목 전체에 가스냄새가 나 불이 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당시 용역업체에 고용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관리자가 나타나 담뱃불을 끄라고 소리를 치기도 했다”며 “사람들이 있는데도 철거를 강행하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일부러 나가라고 더 협박을 하는 것 같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주민들은 불꽃을 봤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화재가 발생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서 관계자는 “발화물질이 있었다면 충분히 화재나 폭발사고의 가능성이 있었다”고 전했다. 해당 사건은 용역업체 직원들이 철거를 하는 과정에서 가스관을 건드려서 가스가 유출된 것이었다.
종로구 관계자는 “철거 작업 중이던 인부들이 수도관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가 그 아래에 묻혀있던 가스관까지 건드려 가스누수가 일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용역업체는 시공사인 롯데건설에서 고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종로구에서는 가스 누출에 대한 과실 여부에 대해 조사 중이다”고 말했다. 현재 해당 구역은 천막으로 차단돼 있다.
옥바라지골목의 여러 여관들 중 한 곳은 아직도 영업 중으로 30여 명이 묵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철거를 위해서는 관할 구청에 철거 신고를 해야 한다. 종로구 관계자는 “철거신고를 했기 때문에 철거 자체는 합법”이라고 밝혔다. 용역업체는 지난 3월 14일에야 신고 절차를 진행했지만 옥바라지 마을 주민들은 이미 두 달 전부터 신고 없이 철거가 진행됐었다고 주장한다.
주민 이길자 씨(여·62)는 “신고를 미루다가 가스관이 터지니까 그제야 무슨 일이 날까봐 신고를 한 것이다. 얼마 전에도 파이프가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근처에 사람이 있었으면 다쳤을 것이다”며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철거를 하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주거권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옥바라지골목에 남아있는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서울시에 철거 중지를 요청했고 그 결과 서울시는 3월 18일 철거 유예를 결정했다. 서울시는 주민들과 재개발조합이 5회 이상의 사전협의체를 운영해 합의점을 찾을 것을 권고했다. 아직 이주하지 못한 주민들과 재개발조합과 구청이 사전협상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철거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또 옥바라지골목의 보존방안에 대해서도 현장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때 옥바라지골목에서 이웃으로 지냈던 주민들과 재개발조합의 갈등은 극에 다다른 상태다. 주민 최은아 씨는 “지난 월요일에 서울시의 철거 유예에 따라 재개발조합원들과 협의를 위해 만났지만 조합원이 ‘너네들 때문에 우리가 재개발을 못한다. 책임질 거냐’며 어깨를 잡고 몸을 흔들어 바닥에 쓰러졌고 응급실에 갔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들도 “언론사 인터뷰를 하지말라고 협박해 불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개발조합 측에서는 취재를 거부했다.
서울시의 건물철거 유예요청에 따라 현재 잔여 주민과 재개발조합간의 협상이 결렬될 경우 도시분쟁조정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을 계기로 옥바라지골목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조사 중이다”면서 “대다수 건물들이 근대 건축물로 보여 보존 가치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옥바라지골목이었다는 역사적 근거가 확인될 경우 일부분이 보존될 수 있겠지만 아직 역사적 근거는 찾지 못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옥바라지골목 발자취 따라가보니 김구 등 독립운동가 가족들 애환 오롯이 국권을 상실하기 전인 1907년 당시 일제 조선통감부는 서대문에 형무소를 지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들이, 독재정권 시절에는 민주열사들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옥바라지골목은 애국 인사들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을 때 가족들이 해당 골목에 있는 여관에 머물면서 옥바라지를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씨 등 독립운동가의 어머니들이 이 골목의 여관에서 자식들을 옥바라지했다고 전해진다. 1987년에 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으로 옮겨가며 옥바라지 손님들이 자취를 감췄고 옥바라지골목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옥바라지골목에도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2015년에는 주민 70% 이상의 동의를 받아 재개발 정비사업 관리처분을 인가받았다. 상가 입점 업체의 90%가 이주를 한 상태고 철거를 진행해 오는 8월에는 195가구의 아파트가 분양될 계획이다. 골목을 떠나지 못한 이들은 옥바라지골목의 보존을 바라고 있다. 이들은 골목의 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며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옥바라지골목에서 38년째 거주하고 있는 최은아 씨는 “30년 전 조일장, 무악장, 우성장 등이 즐비해 있었고, 그때의 충북여관은 지금 원룸텔로 바뀌었다. 어릴 적에 이 골목에 여관이 많아서 싫었던 기억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추억이었다”며 “골목에 100년 넘게 자리하고 있는 한옥과 초가집들은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예전 옥바라지골목을 회상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