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살은 삼손의 머리칼”
굳이 겉모습으로만 따진다면 조기 축구회 아저씨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이운재. 운동선수로서는 치명적인 ‘핸디캡(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이란다)’을 갖고 있지만 타고난 센스와 성실함을 바탕으로 국내 최고 골키퍼의 자리를 10년이 넘도록 지켜온 ‘거미손’이다.
이운재는 충북 대성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골키퍼 장갑을 끼었다. 그러나 사실 몇 경기에서 ‘대타’로 나선 것이지 정식으로 골키퍼 훈련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운재가 본격적으로 골키퍼 수업을 받은 것은 최순호, 최상국, 남기영 등 80년대 국가대표 선수를 다수 배출한 청주상고에 진학하면서부터다. 특히 정기동(현 대표팀 골키퍼 코치), 박철우(전 포항 골키퍼 코치) 등 명 골키퍼를 조련해낸 유인권 감독(현 안동과학대 감독)의 특훈을 받으면서부터 최고의 골키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유 감독은 이운재를 매일 아침 특별 훈련을 시켰는데 10분만 훈련을 받아도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고 한다. 우선 키가 작은 이운재의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허들 장애물을 넘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켜 서전트 점프력을 높였다. 이운재는 과거 도로공사에서 배구 선수로 활약했던 누나로부터 수직 점프에 대한 조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또한 유 감독은 자전거 튜브를 발목에 매고 볼을 차는 연습을 하루 수백회 이상 시켰다. 이운재의 킥이 정확하면서도 비거리가 긴 것은 바로 유 감독으로부터 받은 훈련 때문이다.
유 감독의 조련을 받은 이운재는 고3 때부터 급성장한 기량을 뽐냈다. 그 해에 팀을 전국 3관왕으로 이끌며 차경복 전 성남 감독에 의해 경희대로 스카우트됐고 이후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이어 94년 미국월드컵까지 연속으로 태극마크를 달게 된다.
지난해부터 이운재의 살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이운재는 지난 2002년 월드컵에 비해 몸무게가 제법 늘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과 언론은 “월드컵을 위해서 살을 빼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이운재를 지도한 스승들은 다른 시각이다. 이들의 공통된 반응은 “이운재는 살이 있어야 제 실력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유 감독도 같은 입장. 유 감독은 “운재는 살이 없으면 이상하게도 탄력이 없어지고 점프력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살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운재에 대한 아드보카트 감독의 믿음은 여전하지만 한편으로는 위기다. 특히 지난 4월23일 부산과의 경기에서 무려 4골을 허용하면서 경기력까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답답해진 유 감독이 이운재에게 전화를 해 “너 이러다가 김병지(서울 FC)한테 밀린다”며 호통을 쳤다고. 그러나 이운재는 “그 경기는 나뿐만 아니라 선수들 전체가 컨디션이 최악이었다”며 유 감독을 안심시켰다는 후문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