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 광고전쟁으로 재점화…상생은 머나먼 길
지난 3월 23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 근처 길가에 주황색 조끼를 맞춰 입은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의 정체는 골프존 매장 점주들이다. 전국골프존사업자협동조합(전골협)이란 이름으로 전국에서 모인 사람은 한눈에 봐도 수백 명에 달했다. 이들은 골프존이 점주들을 상대로 갑질과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규탄 집회를 열었다. 국내 스크린골프 업계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골프존. 과연 성난 점주들을 달래고 ‘상생’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까.
지난 3월 23일 전국골프존사업자협동조합은 기계 업그레이드 비용 부담, 시장 과포화 등의 문제로 골프존 규탄 집회를 열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 3월 22일 전골협은 일부 일간신문 1면에 ‘박근혜 대통령님께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게재했다. 요지는 골프존이 골프존 점주들에게 여러 부당한 대우를 일삼는다는 것이다. 이튿날인 23일 같은 신문 1면에는 골프존과 몇몇 협회들이 ‘골프존과 사업주들은 함께 나아가고자 합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내보냈다. 부당함을 외치는 점주들에게 회사 측이 즉각 대응한 것이다.
지난 2000년 설립 이후로 골프존은 스크린골프 업계에서 왕좌를 지켜오고 있다. 신규 경쟁업체들이 속속 생겨나며 독점적 지위에서 점유율 70%대까지 비중이 줄기는 했지만,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자신이 주창한 ‘창조경제’의 훌륭한 예로 골프존을 꼽기도 했다. 그만큼 스크린골프는 혁신적이며 매력적인 사업 아이템인 셈이다.
이를 입증하듯 현재 전국에는 4800여 매장이 영업 중이다. 매장 숫자가 최고치를 기록할 때는 5400여 곳에 달했다. 전골협에 따르면 2500곳(회사 측 추산 500곳)이 뭉쳐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에 모여 집회를 벌였다. 송경화 전골협 이사장은 “전국 4800여 골프존 점주들은 골프존의 기계값 폭리와 부당한 코스사용료 징수, 무차별적인 시스템 판매로 인한 시장 과포화로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성토했다.
여의도에서 집회를 시작한 이들은 골프존 서울사무소가 있는 서울 청담동까지 이동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집회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끝이났다.
골프존은 전골협의 주장에 대해 즉각 반박 자료를 냈다. 각 항목마다 조목조목 해명하는 방식을 취했다. 양측의 상반된 주장이 팽팽히 맞서며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무색해졌다.
한 집회 참가자는 “그동안 쌓이고 쌓인 불만이 마침내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불만 중 핵심은 기계 업그레이드 문제다. 여기서 말하는 업그레이드는 기계 자체의 교체를 의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골프존을 있게 한 바로 이 ‘기계’가 갈등의 원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계 제조사인 골프존은 매장 과밀화 문제를 인식하고 프랜차이즈 전환 대책을 내놨지만 점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일요신문DB
골프존은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단순히 스크린골프 기계 즉 ‘시뮬레이터’를 만들어 파는 제조사일 뿐이다. 스크린골프 매장을 열고 싶은 개인이 골프존에서 시뮬레이터를 구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네트워크가 연결되지 않으면 시뮬레이터는 무용지물이다. 시뮬레이터를 매개로 사실상 회사에 종속되는 구조다.
스크린골프 매장의 방 하나를 꾸미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시뮬레이터 값을 포함해 대략 1억 원가량이라고 한다. 매장은 보통 5~10개의 방을 갖추고 있다. 장비에 들어가는 초기 비용만 최소 5억~10억 원에 이르는 셈이다.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매장을 열었어도, 새로운 기계가 나오면 또 다시 교체할 수밖에 없다. 최신형 시뮬레이터를 장착한 매장이 더욱 경쟁력을 갖기 때문이다. 골프존은 초창기 N형 모델부터 리얼, 비전이란 모델까지 출시했다. 현재 비전2가 출시 예정으로 몇몇 매장에서 테스트 중이다.
전골협에 따르면 골프존은 점주들에게 N형에서 리얼로, 또 리얼에서 비전으로 시뮬레이터를 교체할 때마다 대당 2000만~3000만 원의 비용을 받았다고 한다. 반면 골프존 관계자는 “10년여 동안 유상 업그레이드는 단 2차례였으며, 1500만 원 정도의 업그레이드 비용(기본형 기준)은 단 한차례였다. 나머지의 업그레이드는 실비용만 청구되었다”고 설명했다.
한 골프존 점주는 “비전 출시 이후에 리얼을 구입해 개업한 사람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며 “전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비전이란 신형 모델이 있는 줄 모르고 리얼을 들여 놓은 점주들이 꽤 되는 걸로 안다. 영업사원이 점주를 교묘히 설득해 리얼을 팔기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실제로 골프존은 2002년경부터 시뮬레이터를 판매하기 위해 지역에 존재하던 유통법인과 계약했다. 때문에 골프존은 전골협 측이 주장한 ‘마구잡이식 판매로 인한 시장 과포화’에 대해서 “판매는 유통계약을 맺은 법인이 진행한 것으로 그들은 골프존 영업직원이 아니다”고 일축하고 있다.
앞서의 점주는 “(별도 판매법인의) 영업사원들의 무리한 영업이 문제를 야기했다고 해도, 점주들이 골프존이란 회사 이름을 믿고 기계를 구입한 만큼 판매법인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골프존 측도 일부 지역에서 매장이 과밀화되었다는 문제를 인지하고 프랜차이즈로 전환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전골협은 ‘프랜차이즈 전환 반대’와 ‘무료 업그레이드’를 주장하고 있어 양측의 갈등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