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영국 터키에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해외파로 분류되는 안정환, 설기현, 이을용의 아내, 이혜원, 윤미, 이숙 씨도 기자들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어렵게 소재 파악이 된 3인방의 아내들은 이번 월드컵 이후 팀을 옮겨야 한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해외파 3인방의 아내들과 릴레이 인터뷰를 가졌다.
안정환 아내 이혜원 씨
워낙 신혼 초부터 크고 작은 사건에 시달린 탓에 웬만해선 눈도 꿈쩍하지 않았던 이혜원 씨가 독일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를 앞두곤 마음 고생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전 남편이 엔트리에 포함될 것을 100% 확신했어요. 그런데 언론에선 굉장히 다른 시각을 갖고 있더라구요. 유럽에서 적응을 못해 월드컵 합류가 불투명하다느니 리그만 돌아다녔을 뿐 건진 게 없다는 등 정말 남 얘기라고 말을 막 하더라구요. 남편 앞에선 내색하지 않았지만 너무 힘들었어요. 두고 보자는 생각도 들었구요.”
이혜원 씨는 안정환이 대표팀에 합류할 때도 귀국하지 않고 딸 리원이와 함께 독일에 남았다. 어차피 남편이 독일에 입성하기 때문에 독일의 집에서 조용히 기다리며 남편을 응원하고 싶었던 것.
“아이가 생긴 이후 남편이 확 달라졌어요. 훨씬 자신감에 차 있고 축구 자체를 즐기더라구요. 옛날엔 사진에서 웃는 모습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엔 웃는 얼굴이 많아요. 저보다도 리원이의 존재가 큰 것 같아요.”
이 씨는 생활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내다보니 다른 선수의 아내와 유대 관계를 맺을 만한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운재의 아내 김현주 씨에게 남다른 고마움을 나타냈다. 가끔 남편이 ‘이운재 선수가 선물한 것’이라며 리원이 옷을 들고 왔기 때문이다. 서로 딸을 둔 모성이 상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모양이다.
월드컵 이후 안정환은 새로운 팀과 또 다시 계약을 맺어야 한다.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정작 선수의 아내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투다. 전적으로 남편이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으론 월드컵 16강 진출 여부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더라구요.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후회와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갖고 있는 모든 걸 운동장에서 쏟아냈으면 좋겠어요. 골에 대한 부담을 덜고 자연스럽게 경기를 풀어간다면 행운도 함께 따를 것이라고 믿어요. 리원이랑 경기장에서 열심히 응원할 게요.”
“남편이 요즘엔 경지에 올랐나 봐요. 농담 삼아 ‘부처’가 된 것 같다고 말하거든요. 화내고 짜증내고 힘들어할 줄 몰라요. 그저 마음 편히 갖자고 무척 노력해요.”
설기현의 아내 윤미 씨는 얼마 전 잊지 못할 일을 겪었다. 지난달 23일 세네갈전에서 벌어진 설기현의 ‘역주행’이 인터넷에 회자된 이후 쏟아지는 악성 댓글과 전문가들의 비평에 엄청난 아픔을 느꼈던 것이다. 그 이후 윤미 씨는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냈는데 이 글이 또 다시 인터넷을 떠돌며 남모를 가슴앓이를 겪어야 했다.
“4년 전에도 남편의 플레이에 대해 말들이 많았거든요. 그때 참 힘든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는데 이번엔 또 다른 차원이더라구요. 인터넷에 대해선 어느 정도 무뎌지고 여유가 생겼다고 믿었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제가 마구 흥분하니까 기현 씨가 그냥 참고 넘기라고 충고하더라구요. 이전엔 그 멘트를 제가 했었는데 말이죠.”
아내가 보는 남편의 요즘 모습은 한 마디로 ‘무념무상’이다. ‘설 도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며 웃는다.
“남편이 저더러 욕심을 버리래요. 관심이 있으니까 비난도 하고 욕도 하고 그러는 거라구요. 조용한 것보다는 관심 받을 때가 좋다고 생각하래요. 이 정도면 도 닦은 사람 아닌가요?”
결혼 5년차 주부지만 운동 선수를 남편으로 둔 특별함 때문에 인터뷰 때마다 내조에 대한 질문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기자도 빠지지 않았다.
“내조란 게 삼계탕 끓여주고 맛있는 반찬 해주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남편을 이해하고 편하게 해주는 게 최고의 내조라고 봐요. 음식이야 밖에서도 잘 먹고 다니기 때문에 제가 잘 해줘도 별로 티가 안 나요.”
윤미 씨는 한국의 월드컵 예상 성적에 대해 “4년 전에 너무 좋은 성적을 내서 이번 대회는 어떨지 정말 걱정”이라면서 “지난 대회 때는 ‘감’이라는 게 있었는데 이번엔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늘 6월 24일 열리는 스위스전에는 아들 인웅이와 함께 독일 현지에서 응원을 펼칠 계획이라는 윤미 씨는 인터넷에 안정환의 아내 이혜원 씨와 많은 사진들이 비교되는 부분에 대해서 웃음으로만 대답했다. 이 역시 남편의 유명세로 인해 받는 관심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인터넷에는 ‘남편의 활약만큼 부인들의 미모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출중하다’는 제목으로 두 사람의 비교 사진이 풀버전으로 떠돌고 있다.
▲ 연합뉴스 | ||
이을용의 아내 이숙 씨는 요즘 몸이 좋지 않다. 남편도 모르는 일이다. 자주 전화 통화를 하지만 몸이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대사’를 앞둔 사람에게 괜한 걱정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을용 씨가 허벅지 부상으로 재활 훈련 중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저 아픈 것까지 말할 수 있겠어요. 다행히 허벅지 부상이 곧 나을 것 같아 마음은 놓이는데 항상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요.”
4년 전에 첫 출전한 월드컵은 기대와 흥분과 들뜬 마음들로 정신없이 보냈다고 한다. 첫 아들 태석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경기장마다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을 외친 덕분에 태석이가 태어나서 엄마, 아빠란 호칭보다 ‘대~한민국’이란 말을 먼저 터트렸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한다.
“4년 전과 참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요. 특히 선수들 사이에서도 그런 차이를 절감하나 봐요. 2002년에는 선후배 할 것 없이 모두가 월드컵에 대한 책임감과 중압감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번엔 책임 의식보다는 축제처럼 즐기려는 선수들도 눈에 띄어요. 어떤 방법이 좋은지는 결과가 말해주겠죠.”
이숙 씨는 어느 누구보다도 터키에서 힘든 생활을 보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터키로 진출했다가 국내로 유턴 후 2004년 또 다시 터키로 향하는 고달픈 여정을 남편과 함께 했던 것.
“처음 터키에 갔을 때 너무 너무 힘들었어요. 산후 우울증까지 겹쳐 생활이 말이 아니었죠. ‘터’자의 ‘ㅌ’만 봐도 경기가 일어날 정도였으니까요. 결국 국내로 복귀했는데 이번엔 네티즌들이 가만있질 않더라구요. 실패해서 돌아왔다는 거예요. 절대 그게 아닌데. 결국 다시 터키로 재진출한 후에는 이전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적응이 쉽게 되더라구요. 그 후론 술술 풀렸어요. 터키가 좋아졌고 고향같이 느껴졌죠.”
이을용의 플레이도 눈에 띄게 향상됐다. 솔직히 표현한다면 스타일이 확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축구 형태에 완전 몰입되면서 적극적인 공격과 과격한 수비 패턴이 나타났다고. 그래서 하루는 남편에게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한 진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단다. 이을용 왈,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잖아.”
이숙 씨는 한국팀 성적에 대해 이런 바람을 전한다.
“토고전에서만 승리한다면 프랑스랑 스위스는 저절로 풀릴 것 같아요. 첫 경기가 너무 중요한데 ‘허리’ 쪽 선수들이 모두 다친 상태라 걱정이에요. 우리 남편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제발 더 이상은 다치지 마세요.”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