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사 뒤 떠내려왔을 가능성 무게…느린 유속·낙차공 등 의문 투성이
백골 사체가 발견된 화봉1교 인근
지난 3월 24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천둔마을엔 봄을 맞을 채비가 한창이었다. 살얼음이 깨지고 제법 따뜻한 햇살이 내리기 시작하자, 주민 15명이 마을 앞을 지나는 하천을 청소하기 위해 나섰다. 매년 해오던 일이라 익숙했다. 마을 주민들은 늘 그랬듯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며 부유물을 건져내고 쓰레기를 주웠다.
그런데 9시 4분께, 마을주민 A 씨의 발끝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닿았다. 진흙과 잡초 사이에 묻혀 있던 그것은 돌이라고 하기엔 매끈했다. 무심코 아래를 보고 발로 흙을 치우던 A 씨. 잠시 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A 씨는 “처음엔 짐승뼈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속에 사람의 두개골이 있었다”고 말했다.
A 씨가 발견한 것은 백골이 된 변사체였다. 마을 이장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두개골과 팔, 가슴뼈 등을 추가로 발견했다. 백골은 진흙과 잡초 등 하천 퇴적물에 묻혀 있었다. 95사이즈의 봄가을철용 등산복과 와이셔츠, 티셔츠를 차례로 입은 채 발견됐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백골의 ‘하반신’을 찾을 수 없었던 것. 경찰은 이날 기동대 1개 소대와 형사 등 30여 명을 투입해 인근 지역에 대한 수색에 나섰지만, 결국 하반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상반신의 분리된 단면을 관찰한 결과 흉기에 의해 절단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두개골과 가슴뼈 등에도 어떠한 타점 흔적이 없는 등 별다른 타살 혐의점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등산복을 보면 20~40대 남성으로 추정된다. 옷을 온전히 입고 있었던 점을 볼 때 지난해 봄, 또는 가을께 하천 상류에서 실족 등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범죄 연루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경찰의 분석에 의아하다는 눈치다. 이들은 “하천과 마을 주민들의 주택이 불과 5~10m 떨어져있다. 백골이 되지 않은 채로 물살에 떠밀려 왔다면 육안으로도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다른 마을 주민 B 씨는 “어떤 사고를 당해야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결국 백골 상태로 떠내려 왔다는 건데, 그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발견 당시 백골 사체. 형태가 그대로 유지돼 있다. 사진제공=마을 주민
실제로 백골의 형태와 발견 지점 등만 봐도 단순히 “사고를 당해 물살에 떠밀려왔다” 고 설명하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해당 지역 곳곳에서 포착된다. 백골이 발견된 하천은 화봉천으로, 청미천과 인근 3~4개의 저수지 등의 하류 지점이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장마철을 제외하면 해당 하천은 늘 유속이 느리고, 수위도 성인남자의 발목에 이를 만큼 낮다. 지난 30일 기자가 찾은 하천의 모습도 봄철이라 평소보다 흐르는 물이 적기는 하겠지만 백골이 발견 장소까지 떠내려 올 수 있는 정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발견 당시 백골의 상반신은 두개골과 가슴뼈, 팔 등의 관절이 분리돼 있긴 했지만 신체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유속과 수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물살에 떠내려 온 백골’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상류 지점인 저수지에서 실족을 했다면, 수로가 개방돼 백골이 하천으로 흘러나오는 과정에서부터 강한 수압과 유속으로 인해 형태 유지 가능성은 낮아진다.
또한 백골이 발견된 지점에서 하천 상류 방향으로 불과 450m 떨어진 곳에 1.5m 높이의 낙차공이 설치돼 있다. 확인 결과 실제로 이곳에서 부피가 큰 부유물은 모두 걸러지고 있었으며, 백골이 낙차공을 넘었다 하더라도 아래에 놓인 바위와 돌의 크기를 볼 때, 형태를 유지한 채 해당 지점을 통과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주민들이 경찰의 ‘사고사’ 추정에 의문을 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백골 발견 지점에서 상류 방향으로 약 450m 거리에 위치한 낙차공과 바위가 부유물을 걸러내고 있다.
백골화된 사체의 사망 시점은 최소 수개월에서 수년까지로 추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백골이 발견 지점에 수개월에서 수년간 묻혀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런데 안성시청에 따르면 화봉천은 지난 2011년부터 크고 작은 공사가 이어졌다. 안성시청 관계자는 “지난 2011년 여름, 해당 지역에 수해가 나서 수해 복구 사업으로 하천 정비 공사를 했다. 같은 해 12월 26일 공사가 마무리됐고, 이후에도 보수‧보완 작업을 몇 번 더 했다. 지난 2013년엔 시청 하수사업소에서 하천 아래 오‧폐수 정화관을 묻는 공사를 했다”고 말했다. 3년 전까지는 백골이 해당 지점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또한 면사무소, 또는 마을 주민들이 마을 환경미화 작업을 통해 매년 약 2회씩 하천을 샅샅이 청소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일죽면사무소 관계자와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앞서의 봄맞이 하천 대청소와 함께 장마철 전후로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서 하천 제초 작업을 하고 있다. 한 마을 주민은 “지난해 8월에 제초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결국 백골이 발견 장소에 위치한 시점은 제초 작업이 끝난 지난해 8월 이후부터 지난 3월 24일 사이로 압축된다.
백골사체가 발견된 지점에 경찰이 막대를 꽂아 표시했다.
범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해당 마을과 백골이 발견된 화봉1교 주변은 마을 주민들을 제외하면 외지인이 지나치는 경우가 적다. 또한 가로등도 약 250m 간격으로 하나씩 설치돼 있어, 주민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해가 진 이후 밖을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앞서의 마을 주민은 “인근에 일죽IC, 일죽터미널 등으로 이어지는 4차선 도로가 위치해 있어 주의깊게 봤으면 외지인도 충분히 마을에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일단 신원 확인 등을 위해 백골을 국과수에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이와 함께 지난 2014년 8월 8일 오후 3시께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청미천에서 잘린 채로 발견 된 왼쪽 다리도 함께 국과수로 보냈다. 청미천은 안성 상반신 백골 시신이 발견된 화봉천에서 이어지는 하류 하천이다. 백골 발견 장소에서 10㎞가량 떨어진 곳이다.
당시 왼쪽 다리는 약간 부패한 상태로 백골화한 정도는 아니었다. 경찰은 2개월여 주변을 수색했지만 시신 신원 등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고, 장마로 인해 상류에서 떠내려온 시신 일부인 것으로 추정했다. 백골과 왼쪽 다리의 연관성에 대한 DNA 조사 결과는 1개월가량 후에 나온다.
경찰은 또 다시 기동대를 투입해 하천을 샅샅이 조사하고 있다. 지난 3월 30일에도 안성경찰서 수사과장과 기동대원들이 삽 등을 동원해 유실된 부위를 찾았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인근 시·군 가출, 실종 신고자에 대해 신원을 파악하는 한편, 하천 수색을 계획하고 있다. 사고와 범죄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