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면 더 받았겠지만 기분 좋게 사인”
▲ 로이터/뉴시스 | ||
에이전트 변경 문제로 속앓이를 했던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는 FIFA 에이전트 자격이 있는 JS 리미티드 관계자들과 재계약 협상 첫날 구단에 들어갔다. 한국에서 에이전트사 변경 문제로 시끄러운 상황이 연출된 걸 잘 알고 있는 구단 측에 대리인을 소개해주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데 데이비드 길 사장은 박 씨를 환대하면서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고 또한 “우린 이미 이전 에이전트사였던 FS코퍼레이션으로부터 재계약과 관련된 그들의 입장을 전달 받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선수의 생각이고 사인도 선수가 하면 되는 것이니 마음 편히 협상하면 된다”고 친절히 설명해주었다는 것.
특히 길 사장은 박지성이 지난 시즌 좋은 활약을 펼쳤고 구단 입장에선 그에 걸맞은 연봉 인상을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 부분은 퍼거슨 감독과 이미 상의한 상태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맨유 측에선 처음에 5년 재계약을 원했다. 그러나 박지성 측에서 계약 기간이 너무 길 경우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1년을 줄인 4년을 제시했다가 계약 직전에 5년 계약을 맺었다.
인상폭을 조절하는 부분에서도 큰 무리 없이 진행됐다. 맨유 측에선 20% 인상폭부터 시작했다. 박지성 측도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라 크게 당황해 하지 않으면서 50% 정도는 올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주일 동안 세 차례 협상을 가지면서 40% 선까지 내려왔고 결국 40% 상승된 280만 파운드에 연봉이 결정됐다.
박 씨는 “재계약 협상에 들어가기 전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웠다”면서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리하게 요구하지 말자였다”고 말했다. 즉 액수가 많이 차이 나지 않는다면 순조로운 협상을 통해 재계약을 빨리 마무리짓자는 게 박지성 측의 입장이었던 것. 박 씨는 또한 “우리가 2~3일만 더 버티면 50% 정도는 됐을 것이다. 그러나 돈에 얽매이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게 싫었고 지성이도 구단의 배려가 느껴지는 수준이라면 사인을 하자고 말했다”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협상 마지막 날 데이비드 길 사장이 박지성 측에 전달한 메시지다. 만약 올 시즌 박지성이 맹활약을 펼쳐 이번에 계약한 내용이 마음에 안 들거나 조금이라도 억울해진다면 구단 측에서도 충분히 검토하고 배려를 해줄 수 있으니까 그땐 주저 없이 자신의 방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박 씨는 “맨유에서 지성이를 선수로서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걸 느꼈다”며 흡족해 했다.
맨유와 만족할 만한 재계약을 마친 박지성은 어떤 심정일까. 몸값이 올라간 만큼 부담도 크고 책임이 막중해지는 건 당연지사. 특히 프리미어리그 2년 차를 맞는 박지성으로선 올시즌 겪어야 하는 주전 경쟁, 생존 경쟁이 더욱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협상을 마친 날 저녁에 박 씨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난 시즌 네가 뛴 경기들을 보면 맨유에서 3년 동안 뛸 경기를 다 뛰었다고 생각할 만큼 경기 수가 많았다. 올시즌 60경기 있다면 20게임만 뛰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마음 편히 가져라”는 부탁이었다.
한편 박 씨는 FS 코퍼레이션과는 더 이상 합의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말은 에이전트와의 계약 해지 문제가 법정으로 확대된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설명이다.
“지성이나 내가 마치 돈 때문에 에이전트를 배신한 것처럼 비춰진 부분에선 정말 할 말이 많다. 인간적인 관계까지 깨고 싶지 않았는데 여기까지 왔다. 지성이가 이번 일로 이미지가 실추돼서 광고를 못 찍게 돼도 전혀 상관없다. 어차피 지성이는 축구를 통해 인정받길 원했고 또 그렇게 할 것이다. 돈 많이 받는 유명 선수라고 해서 세상살이가 모두 유리한 건 아니다. 이번에 그걸 절실히 깨달았다.”
또한 박 씨는 박지성의 연봉 280만 파운드가 세금이 포함된 액수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면서 웃으며 이런 내용을 덧붙였다. “세금이 포함되지 않은 액수라면 우리 아들이 너무 많이 받는 거죠.”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