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서 금메달 한 풀고 싶다”
▲ 은퇴설이 돌았던 이봉주는 소리없이 강원도 평창에서 훈련 중이었다. 그가 목표로 하고 있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의 한을 풀 수 있을까.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봉주의 은퇴설은 지난 2월부터 ‘심각하게’ 나돌았다. 삼성전자 육상단이 지난 2월 중국 쿤밍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하는데 이봉주가 불참하면서 그 소문은 신빙성을 더했다. 이봉주가 몸이 아프다고 해서 오인환 감독이 한국에 남아 따로 훈련하라고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의혹을 증폭시켰다.
육상계의 한 관계자는 이봉주가 더 이상 힘든 훈련을 하기 싫어한다고 말했다. 편하고 안락한 맛을 안 상황에서 무조건 참고 달려야 하는 마라톤은 더 이상 절대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삼성전자 육상단이 ‘포스트 이봉주’로 불리는 국내 대학 장거리 1인자 엄효석을 스카우트하는 데 성공하면서 이봉주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져만 갔다.
삼성전자의 백승도 코치가 새로 창단된 대우자판기 초대 감독으로 옮겨간 7월 중순경에는 공석이 된 코치 자리를 이봉주가 대신할 것이란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렇듯 은퇴를 ‘할 수밖에’ 없는 소문과 시나리오까지 나온 마당에 이봉주는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까. 이봉주는 강원도 평창에서 이전과 다름 없이 새벽 훈련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여전히 기록 단축을 위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뛰어 다녔다.
오후 훈련을 마친 이봉주와 ‘솔직함’을 전제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봉주는 오랜만에 하는 인터뷰라면서 특유의 소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먼저 항간에 나도는 은퇴설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내가 은퇴하기를 기다리는지 모르겠다. 은퇴는 타의에 의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다. 마라톤이 워낙 힘든 운동이니까 그만두길 바라는 것 같은데 난 도저히 여기서 그만둘 수 없다. 억울해서도 못 끝낸다. 뭔가를 이뤄놓고 내 자신이 은퇴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때 물러나겠다.”
이봉주는 단호했다. 은퇴는 할 생각이 없고 올 가을에 국내 대회에 출전한 다음 내년에 국제 대회에 도전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워둔 상태였다.
물론 힘들다. ‘과연 될까’하는 주위의 시선도 견디기 괴롭고 체력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한다.
“한 3개월가량 운동을 등한시했다. 골프도 치고 사람도 만나면서 노는 재미도 알았다. 그러다 보니 전성기 때처럼 운동을 못한 게 사실이다. 그냥 이렇게 은퇴해서 지도자 수업 좀 받고 코치를 맡아도 괜찮을 거라는 유혹도 있었다. 그런데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숨을 쉬기가 힘들다. 마라톤을 통해 이룬 것도 많고 이름도 날렸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이봉주는 중도 포기한 일본 비와코마라톤대회 이후 슬럼프를 겪었다고 한다. 그냥 그렇게 마라톤 인생에 마침표를 찍고도 싶었다. 나태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곤 미칠 것만 같은 괴로움이 느껴졌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하는 모습 또한 중요한 부분인데 나이 들어 기록이 떨어지며 힘이 달려 그만두는 듯한 모양새는 수용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다시 뛸 결심을 했고 지난 7월 5일부터 평창 전지훈련지에서 가족과 떨어져 여름을 잊고 살았단다.
훈련이 힘들어 포기했다는 지난 2월의 중국 쿤밍 전지훈련은 알고 보니 사정이 있었다. 족저 근막염(발뒷꿈치 염증)으로 훈련을 지속할 수 없었던 것. 치료를 받자마자 뛴 대회가 3월의 비와코마라톤이었으니 좋은 성적이 나올 리 만무했다.
이봉주는 가능하다면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 뛰고 싶다고 밝혔다. 올림픽 금메달에 한이 맺힌 까닭에 그 대회를 뛰고 나야 가슴에 응어리진 게 풀릴 것만 같단다.
“어느 기자 분은 귀한 지면을 할애하면서까지 나더러 박수 칠 때 떠나라고 충고했다. 고맙지만 난 박수를 받지 못해도 뛸 것이다. 오기도 치기도 아니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마라톤이었다. 그만두는 것도 내 자유다. 단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할 것이다. 이봉주가 아직 안 죽었다는 걸 보여주겠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