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살 돈은 아껴도 어려운 곳엔 선뜻
▲ 경기에서 홈런을 친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박재홍. 차가운 이미지와 달리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할 줄 안다. 사진제공=SK 와이번스 | ||
최근 박재홍은 또 한 번 화제가 되고 있다. 9월 5일 현재 18홈런, 18도루를 기록하며 ‘20(홈런)-20(도루) 클럽’ 가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박재홍은 입단 첫 해를 비롯해 ‘30-30 클럽’을 세 차례나 달성했다. 그의 경력을 봤을 때 ‘20-20’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서른넷의 나이에 호타-준족의 상징인 ‘20-20’에 다시 도전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박재홍은 화려한 경력과 달리 ‘자기만 안다’ ‘언론에 불친절하다’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등 부정적인 소문이 많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리틀 쿠바
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박재홍의 별명이다. 쿠바는 아마추어 야구의 최강국이다.
박재홍은 국가대표 시절 국제경기에 나서면 쿠바 타자들이 깜짝 놀랄 만큼 괴력을 선보였다. 실제 키가 175cm가 채 안 되는 박재홍이 훈련장에서 무시무시한 타구를 펑펑 쏘아 올리는 걸, 지나가던 쿠바 대표팀이 넋을 잃고 바라봤다 해서 ‘리틀 쿠바’란 별명이 생겼다.
지금도 야구 국가대표팀이 소집될 때면 어김없이 박재홍의 이름이 거론된다. 국내 리그에서 죽을 쑤고 있다 해도 역대 대표팀 감독들은 박재홍을 명단에 포함시키곤 했다. 그만큼 국제용으로 명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3월 WBC에는 허벅지 부상 때문에 부득이하게 출전하지 못했다. 대신 박재홍은 오는 12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출전을 자원했다. 나이로 봤을 때 생애 마지막 대표팀 차출이 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박재홍의 활약이 기대된다.
왕따?
박재홍은 ‘자기만 안다’ ‘독선적이다’는 편견에 시달린 적이 있다. 본인만 좋은 성적을 내면 그만일 뿐, 도무지 팀 화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지난해 말 SK와의 FA 계약을 앞두고는 ‘박재홍이 사실은 팀에서 왕따 대접을 받고 있다’는 정체 불명의 소문도 있었다.
실제 박재홍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없지 않다. 왁자지껄하게 어울리고 큰소리로 떠드는 걸 싫어한다. 그렇다고 이기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도 피해받고 싶지 않다는 성격을 갖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박재홍은 조동화 김강민 등 같은 팀 신진급 후배들을 데려다놓고 대선배로서 주루플레이 등을 직접 가르친 적이 있다. 소질은 풍부한데 경기 출전 기회가 적은 이들 저연차 선수들은 어렵게 실전 투입 기회를 얻으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 코칭스태프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보다 못한 박재홍이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주자 상황과 상대팀 내야진의 포메이션에 따라 어떤 식으로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를 직접 가르쳤다. SK 구단 관계자들은 “박재홍은 절대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선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박재홍은 지난해 말 SK와 4년간 총액 30억 원짜리 FA 대박 계약을 했다. 돈방석에 앉은 셈이다. 하지만 돈을 펑펑 쓰는 스타일이 못 된다.
지난 여름의 일이다. 혼자 사는 박재홍은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또 낭비라는 생각에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 원정 경기가 많아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이유가 됐다. 하지만 원정지 호텔의 시원한 에이컨 바람을 쐬다가 홈으로 돌아오면 더워서 집에 있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급기야 팀 동료 정경배에게 “니네 집 에어컨 있지? 나 좀 니네 집에서 재워주라”며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총각’ 박재홍과 달리 ‘유부남’ 정경배는 엄연히 부인이 있는 몸. 정경배는 “징그럽다”라며 도망쳤다.
건물 하나를 올려도 될 만큼 대박 계약을 터뜨린 선수가 에어컨 구입을 꺼린다면 ‘짠돌이’ 소리를 들어 마땅하지 않을까.
박재홍의 다른 면을 살펴보자. FA 계약으로 대박을 터뜨린 박재홍은 당시 “계약만 성사되면 하고 싶었던 일이 있다”며 “소아암 환자들을 돕겠다”고 밝혔다. 당시 박재홍은 “매형이 백혈병을 앓고 있어서 시간 날 때마다 병원에 들렀다가 다른 소아암 환자들이 투병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라고 말했다. 이후 1경기 출전 때마다 1만 원, 안타 1개당 1만 원, 도루 1개당 5만 원, 홈런 1개당 5만 원씩을 적립하고 있다. 선수 생활을 마칠 때까지 이와 같은 ‘사랑의 적립금’을 계속 쌓아나갈 작정이다. ‘에어컨 소동’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SK 와이번스 신영철 사장은 이 같은 박재홍의 모습에 반해 “실력뿐 아니라 품성도 대선수의 자격을 갖춰가고 있다. 구단에서도 적극 돕겠다”고 칭찬했다.
무뚝뚝?
운동장에서 만나는 박재홍은 사실 친절한 편은 못 된다. 뭘 물어봐도 단답형으로 돌아오는 대답 덕분에 무뚝뚝하다는 평가를 많이 듣는다. 때문에 언론과의 관계도 그다지 원활한 편이 아니다.
지난 2003년 박재홍이 기아 타이거즈 소속일 때의 일화. 시즌 중반 허벅지 근육을 다친 박재홍은 일주일 정도 광주 한국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다. 그때 기자가 병문안을 갔었다. 환자복 차림에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있던 박재홍은 뜻밖의 방문이라고 생각했던지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때 1인용 입원실 안에서 박재홍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기자 역시 애초 박재홍에 대해선 ‘살가운 면이라곤 없는 차가운 선수’라는 느낌을 받고 있었지만 당시 대화에서 예상 밖으로 감성적이고 따뜻한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박재홍은 차갑게 느껴지는 눈매 속에 정을 감추고 사는 선수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줄곧 최상급 선수로 성장해온 탓에 냉정해 보이지만 결코 마음마저 차갑지는 않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