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방울 안섞여도 우린 가족…동생들 위해 오늘도 내가 요리사”
양곤식 김치를 담그고 있는 빈민아동 공동체 맏언니 칭칭. 이 나라 국민들도 김치를 잘 먹는다.
저녁식사가 시작됩니다. 긴 식탁들이 놓인 식당에는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한국분들이 와서인지 한국말이 들립니다. 식탁에는 양배추볶음과 멀건 배추국이 있습니다. 고추장과 김치는 한국분들이 가지고 왔습니다. 칭칭이 부엌에서 숯불에 큰 가마솥을 놓고 기름에 볶은 양배추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양이 너무 많아 두 명이 가마솥을 휘저으며 볶아낸 요리입니다. 모두 맛난 저녁을 하고 있는 시간. 대나무로 허름하게 따로 지은 부엌을 가봅니다. 어둑한 부엌 한편에 칭칭이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습니다. 식사를 차려주고 난 뒤 잠깐 휴식의 시간. 식사 해야지. 제가 말합니다. 네, 좀 이따가요.
많은 식구들의 하루 세 끼 식사. 준비하는 사람에겐 하루 종일 일이 끝나질 않습니다. 정말 먹는다는 게 뭔지. 식사하는 동안 칭칭이 부엌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영화 속 한 주인공이 생각납니다. <바베트의 만찬>의 바베트. 오래된 영화이지만 제 머릿속엔 한 장의 장면이 남아 있습니다. 파리의 전설적인 요리사 바베트가 정찬이 끝날 무렵, 부엌 한 구석에 혼자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입니다. 유명한 요리영화인데 왜 이 장면만 기억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덴마크의 시골 해안마을. 아무도 모르는 한 여인이 피신해옵니다. 이름은 바베트. 어느날 그녀에게 1만 프랑의 큰돈이 거저 생깁니다. 그리고 자신을 받아준 마을사람들에게 파리의 정찬을 만들어주겠다고 합니다. 음식재료들이 배로 들어왔는데 너무 이상한 재료들이라 마을사람들은 놀랍니다. 마침내 식탁을 준비하는 그녀. 식탁보를 정성스레 다립니다. 은촛대와 크고 작은 접시와 냅킨을 놓습니다. 1845년산 아몬틸라드 와인과 거북이 스프. 맛을 돋우는 1860년산 샴페인. 물과 술과 커피의 각기 다른 잔들. 빵과 메인요리와 과일과 커피까지 파리에서 가장 비싼 요리가 만들어집니다. 이른바 카이유 엉 사코파쥬 요리입니다.
마을사람들은 천천히 음식의 깊은 맛에 빠져들지만 정작 이 요리를 만든 바베트가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다행히 식탁에 초대받은 손님인 한 장군의 설명을 듣고 요리의 역사를 듣게 됩니다. 이 장군은 젊은 청년시절 이 마을의 한 처녀를 사랑했고, 먼 훗날 성공하여 지금 이 식탁에 우연히 앉게 되었습니다. 그 처녀는 여전히 홀로 살며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예술가처럼 진지하게 요리하는 바베트의 모습. 요리의 행복한 맛을 통해 마을 사람과 사람 간에는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온 1만 프랑의 큰돈을 요리하는 데 다 썼습니다. 그래서 마을에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만찬으로 인해 바베트가 파리의 전설적인 수석 요리사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바베트가 어두운 부엌에서 땀을 닦으며 혼자 커피를 마시는 모습입니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 마지막 장면. 부엌에서 커피를 마시는 전설의 요리사 바베트.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