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 낮췄지만 ‘당원게시판 논란’ 연일 뭇매…3대 약점 극복 위한 구체적 플랜 보여줘야
세월은 흘러 한 대표는 지난 7·23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을 획득, 당대표 자리에 올랐다. 비대위원장까지 더하면 한 대표가 여당의 리더로 들어온 지 11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붙박이 4번 타자보다는 ‘대타’ 이미지가 강하다는 지적이다.
#스탠스 바꾼 한동훈
한동훈 대표는 용산과의 차별화에 총력전을 기울이다가 최근 들어 노선을 바꿨다(관련기사 ‘차별화 버리고 동조화’ 윤석열 대통령 담화 후 한동훈 급변침의 비밀).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여러 분석을 내놓는다. 우선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 후 나타난 보수 지지층의 기류 변화가 거론된다.
대구·경북(TK)과 60·70대 고령층 등 여당 핵심 지지층은 그동안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여러 의혹들로 인해 윤 대통령 지지를 철회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고개 숙여 사과한 이후 ‘미워도 다시 한 번’ 여론이 확산됐고, 집토끼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게 여권의 분석이다. 여기엔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당선인의 카운터 파트너로서 윤 대통령에 대한 기대치가 만들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윤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최근 2주 사이 8%포인트(p) 올라 20% 후반을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11월 21일 나왔다.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11월 18일부터 사흘간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표본 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한다고 한 응답자 비율은 27%였다.
직전 조사인 11월 1주 차에 19%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이번 조사에서 약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반등했다. 지역별로 보면 보수진영 지지세가 강한 곳으로 꼽히는 TK에서 14%포인트(p) 오른 45%를 기록했다. 이념 성향별로는 보수층의 긍정 평가가 4%p 오른 49%로 집계됐으며, 중도층의 긍정 평가는 직전 조사 9%에서 23%로 급등했다(자세한 사안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또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구체화되며 더불어민주당이 대혼돈에 빠진 것 역시 한 대표의 노선 변경과 연관이 있다. 지금은 ‘여당 내 야당’의 역할보다는 거야를 향한 공세가 필요하다는 여권 지도부 의견에 한 대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한 대표를 만난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한 대표가 다른 사람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한 대표는 용산에 대해 보여줬던 싸움닭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정책 행보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대표는 11월 19일 기자들과 만나 “정책을 펴야 하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길을 모색 중”이라며 “방향은 민생정치”라고 했다.
한 대표는 보수정당이 약점을 보였던 이슈에도 발을 담갔다. 그는 11월 19일 한국노총과 간담회를 갖고 정년 연장 등 노동정책 의제를 논의했다. 한 대표는 간담회 직후 기자들에게 “국민의힘이 노동문제를 경시하거나 피한다는 인상이 많이 있는데, 실제 그렇지는 않다”며 “(오늘) 한국노총과 대화하며 근로자 복지와 안전 등이 실질적으로 진전할 수 있는 길을 같이 찾아봤다”고 했다.
한 대표는 같은날에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관련해 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이 주최하는 정책토론회에도 참석, 핵연료 농축·재처리 기술을 확보하는 내용의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날에는 중소기업인 간담회를 열고 대출금리 하향, 육아휴직 및 파견근로 지원 등 중소기업계 지원책을 약속했다.
용산과 싸움을 붙여보려는 기자들 질문이 매일 쏟아지지만 스탠스를 바꾼 한 대표는 철저하게 낮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11월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실 인적 개편과 개각 기류에 대해 “대통령께서 지난 담화에서 변화와 쇄신을 말씀하셨으니 그런 차원에서 여러 고민과 검토를 하실 거라 생각한다”며 “규모 차원이 아니라 국정을 제대로 잘 운영하고, 더 일신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고려를 하실 것”이라고 했다. “바꿔라” “고쳐라”는 투의 공격성 발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뭇매 세례 맞는 대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의 ‘윤석열 대통령 부부 비방글’과 관련, 한동훈 대표 가족이 연루돼있다는 의혹을 놓고 국민의힘 내부는 뒤숭숭하다. 시간이 갈수록 논란이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되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여권 내부에서는 “여당 대표가 이렇게 뭇매를 많이 맞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며 한 대표의 권위 실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지적한다(관련기사 ‘윤석열 OOO 단속도 못해서…’ 한동훈 가족 이름 국힘 당원게시판 글 파문).
친윤계는 당 자체 조사인 당무감사를 요구하며 한 대표가 직접 의혹을 해명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친윤계 김재원 최고위원은 11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당원 게시판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털어낼 것이 있으면 빨리 털어내고 해명할 것이 있으면 명명백백하게 해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도 같은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 당원 게시판에 한 대표의 배우자와 장인, 장모, 모친, 딸과 같은 이름으로 윤 대통령 부부 비방글이 올라온 것을 두고 “가족 중 1인이 다른 가족들의 명의를 차용해서 여론 조작 작업을 벌였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라며 “단순히 대통령을 비방했으니 당무감사 하자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당무감사도 당무감사지만, 한 대표가 그냥 가족들에게 물어보고 입장 밝히면 되는, 너무 간단한 문제”라며 “한 대표가 복잡한 조사나 수사 이전에 가족들에게 집에 가서 물어보면 끝나는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한 대표에 대해 연일 저격하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11월 1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용병정치에 눈먼 이 당(국민의힘) 이젠 바꾸어야 할 때”라고 밝혔다. 홍 시장은 “뒷담화나 하고 가족이나 측근들이 당원을 빙자해서 당원게시판에 비방글이나 쓰는 비열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 대표를 때렸다. 당원게시판 글에 대해 한 대표 책임론을 제기한 것으로 읽힌다.
친한계에서는 한 대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지속하는 일부 여권 지지층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김종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11월 18일에 페이스북 글을 게재, “한 대표 (노력으로) 대통령 담화를 이끌어 냈고, 중도층이 민주당의 선동에 넘어갈 가능성을 줄였다”면서 “(그런데도) 극우 유튜버는 ‘타도 한동훈’을 외치고 있다”고 했다.
적극적인 반박과 해명에 나선 친한계와 달리 한 대표는 당내 분위기를 고려한 듯 수세적이다. 그는 11월 21일 기자들과 만나 “위법이라든가 이런 게 아닌 문제들이라면 제가 건건이 설명해 드리는 건 적절치 않다”면서 “불필요한 자중지란에 빠질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사안에 대한 확대를 부담스러워한 것이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한 대표가 수세에 몰리면 싸움닭 기질을 드러낼 만도 한데 이렇게 자세를 낮추고 있는 것은 낯선 풍경”이라며 “용산에 대한 압박 작전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지금은 전면 후퇴해 참호 내에서 있을 시간이라고 본 것 같다”고 해석했다.
#약점 극복해야 붙박이 4번
당 내부에선 한 대표가 지난 1년 동안 세 확장을 스스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당내 현역 의원은 물론, 외부 인사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노력이 부족하고, 또한 그 실력 역시 실망스럽다는 의견이 많이 나온다.
한 대표는 당대표 취임 직후인 지난 8월부터 현역 의원들과 식사 정치를 이어갔지만 눈에 띄는 결과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선수별, 지역별로 다자 형식의 식사 정치를 했지만 “한 대표 혼자서 말을 다 하더라”라는 불평이 나오자 양자 대면으로 바꿨다. 그렇지만 이 양자 대면 식사 정치도 당내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한 대표가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인식하는 데 소홀하다는 평가가 눈길을 모은다. 윤 대통령과 이미지가 완전히 겹치는 검사 출신, 서울 부촌에서 자란 엘리트 학력, 그리고 보수정당 핵심 지지층인 영남과의 무연고는 한 대표의 3대 약점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한 대표는 이를 극복할 구체적 플랜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조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현역 정치인들은 물론, 언론인들과 스킨십을 할 때는 술을 못 마시지만 술잔을 들었다. 한 대표 지지율이 치고 나가지 못하고 그가 지휘하는 국민의힘도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보다 나을 게 없는 점을 고려하면 한 대표가 고칠 게 많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처럼 쇼맨십을 좀 더 갖출 필요가 있다. 자신이 걸어온 길과 다른 경로를 이제부터 타야 한다. 그래야 대타 신세를 벗어날 수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