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 때만 되면 ‘불쑥’
▲ 조범현 SK 감독 | ||
사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김인식 감독은 지난 2004년 말 한화와 2년짜리 계약을 한 뒤 성공적인 두 시즌을 보냈다. 2005년에는 문동환 조성민 지연규 등 한물갔다고 평가받았던 투수들을 재활시키는 데 성공하며 ‘재활공장 공장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올 초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대표팀을 맡아 4강 신화를 달성했다.
게다가 올 포스트시즌에선 KIA와 현대를 잇달아 격파하고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이처럼 지난 2년간 지도력을 인정받은 김 감독이 최근까지 재계약 문제가 확정되지 않은 채 포스트시즌을 치르고 있어 야구계에선 궁금증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상태였다.
김인식 결국 재계약
프로야구계처럼 소문이 무성한 곳도 없다. 게다가 국내 최대 규모의 프로 스포츠인 탓에 8개밖에 없는 감독직에 대해선 항상 루머가 따라붙게 마련이다. 일각에선 한화가 김인식 감독과의 재계약을 꺼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난 2년간의 성적과 지도자로서의 친화력을 높게 사지만 건강 문제가 염려된다는 그럴 듯한 이유까지 곁들여졌다.
김 감독은 지난 2004년 말 한화 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뇌경색으로 쓰러진 적이 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는데 올 초만 해도 거동이 많이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그나마 김 감독이 좋아하는 술과 담배를 끊고 재활에 노력한 덕분이었다.
또 다른 쪽에선 김 감독의 LG행이 유력하다는 추측도 있었다. LG는 올 시즌 중반 이순철 감독이 사퇴한 뒤 양승호 감독대행이 팀을 꾸려왔지만 시즌 종료 후 새 감독을 물색 중이었다. LG 고위층에서 김 감독을 물망에 올려놨기 때문에 한화와의 계약이 늦춰지고 있다는 해석도 덧붙여졌다. 물론 한화의 재계약 확정 보도가 나왔으니 결과적으로는 모두 소문에 불과한 셈이 됐다.
발표시기에도 ‘민감’
감독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오래 살려면 프로야구 감독 같은 직업은 절대 선택하면 안 된다”라고. 6개월간의 치열한 승부와 이에 따른 스트레스, 시즌 최종 성적에 따라 언제 경질될지 모르는 숨 막히는 세계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상당히 매력적인 직업이다. 한국에서 프로야구 감독은 대통령 다음으로 희소성이 있는 직업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렇기에 특정 팀의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면 자의든 타의든 새 사령탑으로 많은 사람들이 거론되게 마련이다.
최근에는 몇몇 언론에서 ‘LG의 차기 감독으로 현대 김용달 타격코치가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대 측에선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팀이 한화와의 플레이오프에 한창인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LG는 지난 20일 11년간 ‘현대호’를 이끌었던 김재박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김재박 감독 또는 김용달 코치 중 한 사람이 LG로 갈 것이라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지난 2002년 삼성 라이온즈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적이 있다. LG와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당시 조범현 배터리코치가 SK 감독으로 내정됐다. 당시 SK는 언론에서 미리 추측 보도가 나오자 얼마 후에 공식 발표를 해버렸다. 삼성 측에선 “시리즈를 앞둔 팀의 코치를 데려간다고 발표하면 우리를 뒤흔드는 것 아니냐”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당시 삼성이 LG를 4승2패로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조범현 코치의 SK로의 이동은 후유증이 없었다.
반면 이번 플레이오프에선 현대가 결국 한화에 1승3패로 역전당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언론 보도가 현대의 탈락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를 떠나 이 같은 점 때문에 각 구단이 사령탑 선임 때 발표 시기를 조절하려는 노력을 하곤 한다.
▲ 김재박(왼쪽), 김인식 감독 | ||
2003년 말 현 삼성 선동열 감독이 삼성 수석코치로 입단할 때의 얘기다. 당시 선 감독을 둘러싸고 여러 구단에 폭풍이 몰아쳤다.
SK는 당시 안용태 사장의 진두지휘 하에 선동열 감독 영입에 적극적이었다. 안용태 전 사장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선 감독을 무조건 영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첫 번째 파도가 일었다. 그러나 SK가 선 감독에게 걸맞은 대우를 약속해주지 못하면서 흐지부지 됐다.
비슷한 시기에 두산 베어스에도 폭풍이 몰아쳤다. 당시 KBO 수장이자 두산 베어스 구단주였던 박용오 총재가 선 감독에 대한 개인적인 친분을 앞세워 적극적인 영입 경쟁에 나섰다. 정작 난처해진 사람은 당시 두산을 맡고 있던 현 김인식 한화 감독이었다. 구단에서 노골적으로 선 감독을 영입하려 하자 난감해진 김 감독은 결국 “후배를 위해 물러나겠다”며 두산 감독직 사퇴를 표명했다. 이후 두산이 적정한 대우를 약속하지 못하자 선 감독의 두산행은 물거품이 됐다. 덕분에 김인식 감독만 중간에서 붕 떠 1년간 야인 생활을 하며 지냈다. 선 감독은 지금도 그 얘기만 나오면 “참으로 민망했다”고 언급한다.
얼마 뒤 선 감독은 스승인 김응용 당시 삼성 감독에게 “내 밑에서 수석 코치로 경험을 쌓으면 1년 뒤에 감독직을 물려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삼성에 입단했다.
언론사 투서 싸움도
몇 년 전에는 각 신문사에 비슷한 내용의 투서가 날아든 적도 있다. “왜 ○○○가 우리 연고팀 감독을 맡고 있는가. □□고 출신이 우리 팀 감독이 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 마디로 현 감독을 자르고 □□고 출신의 인물로 바꾸라는 주문이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이 같은 일이 반복되면 엉뚱한 인물에게 불똥이 튀어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소문이 나면서 ◇◇고 출신 인물들이 의심을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올 가을 ‘감독 시장’의 특징은 현역 감독의 다른 팀 이적 가능성이 상당히 많이 언급됐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김인식 감독의 사례뿐만 아니라 현대 김재박 감독의 LG행도 그렇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일전에 기자에게 “앞으로 30년 정도 지나면 프로야구 감독의 평균 수명을 조사해 일반인들과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만큼 힘든 직업이란 의미다. 그러나 여전히 프로야구 감독은 매력적인 직업이다. 그렇기에 무수한 말과 수많은 소문이 오가는 것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