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과 스캔들… 내가 뜨긴 떴나봐”
▲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위의 내용은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지식인 검색에서 ‘백지훈’을 치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질문들이다. 축구 외적인 질문을 한 네티즌들 대부분은 여학생. 백지훈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표현하고, 알고 싶어 하는 글들을 보면서 새삼 백지훈의 유명세와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요즘 국가대표팀에서 가장 잘나가는 선수는 단연 백지훈이다. 박지성이 부상으로 주춤한 상태고 박주영 또한 잠시 ‘쉬어가는’ 상황이라면 백지훈은 8월 수원으로 이적 후 11경기서 5득점을 올렸고 그중에서 결승골만 4골이다. 소속팀의 챔피언결정전과 올림픽대표팀, 아시안게임 대표팀 등을 부지런히 넘나들며 숨 돌릴 틈 없이 살고 있는 백지훈과 11월의 가을 낮 데이트를 즐겼다.
# 이적 후 ‘물 만난 물고기’
‘소리 없이 강하다’란 광고 카피가 떠올랐다. 지난해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나이지리아전에서 결승골을 넣기 전까지만 해도 백지훈은 그리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2군 생활이 주를 이뤘던 전남에서 FC 서울로 이적 후 백지훈은 ‘꽃미남’이란 부담스런 타이틀과 함께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더니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끈 대표팀에선 ‘황태자’란 칭호까지 받았다. 다소 잡음은 있었지만 지난 8월 수원 삼성으로 이적 후엔 ‘물 만난 물고기’였다. ‘언저리’에서 ‘중심부’로 확 튀어 나온 것이다. 날고 기는 쟁쟁한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숨 쉬기조차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삼성과의 만남이 절묘한 궁합을 자랑하며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저보다 잘 하는 선배들이 너무 많았어요. (이)관우 형까지 이적해 온 상황이었으니까요. 수원에 가선 제 자리가 없을 것 같더라구요. 게임 뛴다는 보장도 없는 거였죠. 정말 심각하게 망설였어요. 주위 분들 걱정시키면서까지.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수원으로 옮겨간 게 백번 천번 잘 한 일인 것 같아요.”
차범근 감독의 신뢰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쉽게 다가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차 감독이 자상하게 보듬고 이끌어주자 알아서 ‘눈칫밥’을 먹던 백지훈으로선 외로움과 낯설음에 괴로워했던 마음들이 조금씩 풀려나간 것이다.
“수원으로 이적하자마자 대표팀에 소집돼서 파주로 갔었어요. 그때 파주 대표팀 트레이닝센터가 어찌나 반갑고 편하던지…. 팀에 돌아가기가 싫더라구요.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 가서 다시 마음 고생할 걸 생각하니까 계속 대표팀에 있고 싶었어요. 그때는 대표팀에서 함께 생활했던 (김)남일이 형이나 (송)종국이 형, (이)운재 형도 어렵기만 했거든요.”
마음을 풀고 자리를 잡은 계기는 지난 8월 26일 K리그 제주와의 홈경기에서 종료 직전에 터진 극적인 결승골이었다. 자신의 이적 첫 골과 첫 승의 기쁨을 동시에 맛본 이후부터 백지훈은 상승 가도를 달렸다.
▲ 지난 12일 골을 넣고 환호하는 백지훈. 그는 수원으로 이적 후 지금까지 다섯 골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 ||
FC서울 시절 박주영과 죽고 못 사는 친구의 인연을 맺은 백지훈. 2005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FC 서울로 옮길 때만 해도 크게 주목을 못 받은 백지훈에 비해 박주영은 프로 입단 전부터 매스컴의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한민국 축구계를 들썩 거리게 했으니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백지훈으로선 여러 가지 회한들이 있었을 것이다.
“많이 부러웠죠.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박주영’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론 조금 속상했어요. 똑같이 골을 넣어도 주영이가 골을 넣으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고 제가 골을 넣은 건 박스 기사 정도로밖에 안 다뤄졌거든요. 당연한 일이었죠. 주영이는 대스타잖아요. 그래도 주영이와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어요. 참, 그거 아세요? 주영이가 기자들 있을 땐 말수도 적고 표정의 변화가 없지만 친구들이랑 있을 땐 엄청 수다쟁이예요. 가끔 인터뷰할 때 보면 배꼽 빠져요. 너무 다른 모습을 보이니까요.”
# 대표팀에 얽힌 비화들
요즘 백지훈은 ‘피곤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고 한다. 소속팀과 아시안게임, 올림픽 대표팀 등을 짧은 시간 동안 옮겨 다니며 게임을 뛰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대표팀에 처음 발탁됐을 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출전만 한다면 얼마든지 에너지를 뿜어 낼 수 있는 체력이었는데 지금은 배터리가 자꾸 충전을 필요로 하는 것만 같다고.
“처음 대표팀에 뽑혔을 때는 기자들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면 젊기 때문에 괜찮다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좀 힘드네요. 옮겨가는 팀마다 선수들이 다르니까 호흡 맞추기도 어렵구요. 체력적인 부담도 커서 하루 빨리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해요.”
지난 14일 한일전에 참가하기 위해 홍명보 코치가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에서 발을 맞췄던 백지훈. 대표팀을 진두지휘했던 홍 코치에 대한 느낌이 어떤 지를 물었다.
“글쎄요. 전반전은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홍 코치 님은 단 한 번도 자리에 앉지 않으시더라구요. 이전과는 달리 주문하시는 것도 많고 목소리도 커지셨어요. 홍 코치 님도 많이 긴장하셨을 텐데 내색하지 않고 경기 후 오히려 선수들에게 고맙다면서 수고했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진규(주빌로 이와타)와 안동고 동창이자 죽마고우인 백지훈은 고3때 청소년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됐던 당시의 일화를 털어놨다.
“진규랑 청대(청소년대표팀)에 들어갔는데 팀에선 ‘짱’으로 있다가 대표팀에서 막내 생활하려니까 적응이 안 되었어요. 잘하는 선배들도 너무 많고 쉽게 말 붙이기 어렵고 낯선 분위기에서 숨 쉬기조차 버거웠죠. 그때 진규랑 얘기 끝에 대표팀에서 도망가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박성화 감독님이 만류를 했는데도 그냥 나와 버렸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철딱서니 없는 행동이었는데 그때는 대표팀에 뽑히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랐어요. 그 다음 다시 대표팀 소집이 있었는데 진규는 뽑혀 들어갔고 전 못 갔어요. TV에서 대표팀 경기를 보며 제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죠.”
‘아드보카트호’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던 이호(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김진규, 박주영, 백지훈은 ‘4생결단’을 결성했다. 한때 기자들 사이에선 ‘4생결단’이 와전돼 ‘4대천왕’으로 알려졌지만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네 명의 선수가 모든 부분에서 앞장 선 모습을 보이자는 취지에서 만든 게 ‘4생결단’이었다. 4명 중 이호와 백지훈을 제외한 두 선수는 여자 친구가 있다. 그러다보니 네 명이서 놀러갈 때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있는 애들은 뭐 할 때마다 일일이 보고를 해요. 어디를 가면 ‘지금 누구랑 어디간다’고 전화를 하더라구요. 전 그런 게 너무 싫거든요. 서로의 사생활에선 자유롭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친있는 애들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많이들 궁금해 하시는데 아직 전 여친이 없어요. 가끔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이성이 있음 좋겠다 싶지만 지금은 딴 생각할 여유가 없잖아요.”
한때 연예인 유설아(본명 유혜진)와의 열애설이 나돈 적이 있는데 유설아랑은 ‘진짜’ 편하게 만나는 친구라고 강조한다. 두 사람이 찍은 사진이 미니홈피에 올려지면서 유설아는 백지훈의 팬들로부터 질투 섞인 홈피 공격을 받다가 급기야 미니홈피를 닫는 지경에까지 다다랐다.
“정말 미안했어요. 설아뿐만 아니라 설아 친구들한테까지 댓글이 이어졌나봐요. 민망하기도 하고 기분이 참 묘했어요. 한 번은 영화배우 문근영 씨랑 사귄다고 소문이 났었어요.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죠. 사실 문근영 씨는 제 이상형이었거든요. 고1 때 <가을동화>란 드라마를 보는데 (김)진규는 그 드라마보면서 막 울고 그랬어요. 슬프다고. 전 그때 문근영 씨를 보면서 한눈에 반했어요. 너무 예쁘더라구요. 이런 얘기가 와전이 돼서 제가 문근영 씨랑 사귄다고 발전되는 거예요. 재미있어요. 이런 소문들을 보면.”
백지훈은 갈 길이 바쁘기만 하다. 19일 성남과의 K리그 챔프 1차전을 치른 뒤 20일 일본으로 건너가 올림픽축구대표팀의 한일평가전 2차전을 뛰고 귀국해선 25일에 다시 K리그 챔프 2차전에 출전한 다음 26일엔 아시안게임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 카타르 도하로 출발한다.
“독일월드컵 때 단 1분도 월드컵 그라운드를 밟아보지 못했어요.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도 컸죠. 제 자신에 대해서. 힘들 땐 월드컵을 떠올려요. 자극과 오기를 주니까요. 있을 때 즐기란 말 있죠? 저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즐기면서 보낼 거예요. 이런 시간들이 다시 오는 게 아니니까요. ”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