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제안 안먹히자 훼방꾼 변신?
유진그룹의 (주)동양 접수 계획이 삼표의 반대표로 제동이 걸렸다. 사진은 서울 중구 (주)동양 본사. 일요신문DB
지난 3월 30일 서울 종로 YMCA에서 열린 ㈜동양 정기주주총회에서 최대주주인 유진(지분율 13.02%)은 이사의 수를 현재 10명에서 15명으로 증원하자는 안건을 제출했다. 이어 유진과 지분경쟁을 벌이던 2대주주 파인트리자산운용(파인트리·지분율 10.3%)까지도 의기투합해 ‘이사 16명으로 증원’ 안건을 냈다. 하지만 이들 안건은 소액주주들의 동의를 구하는 데 실패하며 결국 부결되고 말았다.
안건이 통과되지 못한 데는 3대주주 삼표와 ㈜동양의 현 경영진의 연합 영향도 컸다. 삼표의 정도원 회장과 특수관계인은 동양 지분을 3.19% 보유하고 있다. 치열한 표 대결 전에는 3대주주의 향방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다른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결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삼표의 결정이 이번 주총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삼표는 해당 지분을 ㈜동양의 현 경영진에 위임했다. 유진의 ㈜동양 경영 참여, 나아가 ㈜동양 인수를 노골적으로 반대한 셈이다. 하지만 앞서 삼표 관계자는 “지금은 동양 지분을 계열사들에 넘긴 상태”라며 “우리 지분이 유진에 갔어도 대세에는 영향이 없었으며 우리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라고 선은 그은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시멘트업계에 따르면 삼표가 ㈜동양 주총 전 유진과 접촉, 안건에 찬성표를 던져줄 테니 훗날 유진이 동양의 경영권을 손에 넣게 되면 동양이 보유한 토지 등 알짜자산을 저렴하게 넘겨달라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이미 삼표와 대형 거래처인 유진 사이에 딜이 오갔을 테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삼표가 동양 쪽으로 가세하지 않았겠느냐”고 관측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런 제안이 실제로 있었던 셈이다.
‘동양 사태’로 그룹이 몰락해 계열사들이 뿔뿔이 갈라지기 이전부터 시멘트업체인 동양시멘트와 건축자재·건설·플랜트 등 사업을 하고 있는 ㈜동양은 토지 등 많은 자산을 공유하고 있었다.
실제 ㈜동양과 동양시멘트의 공식 홈페이지 및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부산을 비롯해 창원, 군산, 강릉, 동대구 등의 사업장 주소가 일치하고 토지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앞서 지난해 7월 삼표는 동양시멘트 인수전에서 유진을 꺾은 바 있다. 따라서 ㈜동양의 경영권이 경쟁사인 유진그룹으로 넘어가게 될 경우 삼표는 치명적인 영업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부산 암남동에 위치한 사업장의 경우 시내와 인접한 감천항에 위치해 전략적 요충지로 꼽힌다. ㈜동양에서 이 사업장의 토지 지분 일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동양의 부지는 대부분 바다에 인접했지만 아직 유휴지로 남아있다. 반면 동양시멘트가 보유한 부지는 사업소로 활용되고 있지만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동양의 양해 없이는 해상운송의 이점을 살리기 힘들다.
이에 만약 경쟁사인 유진기업이 ㈜동양 경영권을 확보해 유휴지에 시멘트공장 등을 세울 경우 삼표의 동양시멘트는 부산지역 시장 점유율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삼표의 경우 이미 동양시멘트를 인수했기 때문에 내부 자료를 통해 이러한 사정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양시멘트를 인수한 삼표그룹은 (주)동양이 유진그룹에 넘어갈 경우 영업손실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동양과 동양시멘트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삼표가 3% 남짓 지분을 캐스팅보트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유진 측에 사전에 접촉했다”며 “삼표는 유진 측에 주총에서 유진에 찬성 의사를 보내줄 테니, 나중에 경영권을 확보하게 되면 부산과 창원 등 동양과 동양시멘트가 공유하고 있는 알짜 토지를 공시지가 수준으로 팔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유진 측에서 제안을 검토한 결과 삼표가 요구한 동양 소유의 부지는 경영 전략상 중요한 곳이었다. 공시지가 수준으로 싼 가격에 삼표에 넘기게 되면 배임의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본 것 같다. 이에 고심 끝에 삼표의 제안을 거부했다”며 “그러자 삼표가 주총에서 동양 현 경영진들의 손을 들어주며 훼방을 놓은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유진그룹 관계자는 “주총을 앞두고 삼표 측에서 협의를 한 것은 맞다”면서도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기는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두 기업 사이에 모종의 제안이 있었음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반면 삼표 측에서는 이러한 내용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삼표 관계자는 “우리가 뭐가 답답해 유진에 그런 제안을 했겠느냐”라며 “반대로 유진 측에서 우리를 찾아와 찬성표를 던져줄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논의를 통해 반대 의사를 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표 측의 설명대로 보자면 ㈜동양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진 이유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있다. 삼표와 유진은 레미콘사업에서는 1·2위를 다투는 경쟁사이지만, 시멘트사업에 있어서는 유진이 삼표의 ‘대형 거래처’인 협력관계다. 따라서 협력사인 유진과 갈등을 야기하면서까지 ㈜동양 현 경영진의 손을 들어줄 이유가 없다. 그 이면에 삼표와 유진 사이에 은밀한 제안이 오갔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는 이유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