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 때면 ‘난 프로다’ 마인드컨트롤”
|
||
| ▲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귀국 후 밀려드는 행사 참석 요청과 인터뷰 공세 등으로 정신 없이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김연아를 지난 22일 신라호텔에서 만나 단독 인터뷰했다.
대한빙상연맹의 박성인 회장이 격려금과 지원금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전날 귀국했을 때의 표정보다 한결 기분 좋은 얼굴로 오찬장에 들어선 김연아는 어머니 박미희 씨와 박분선 코치, 그리고 연맹 관계자들과 파리에서의 경기 경험들을 늘어놓으며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진 김연아한테서 이런 여유와 밝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두 시간여의 오찬이 끝나고 기자와 따로 만난 김연아는 중국 요리 코스를 다 먹었냐는 질문에 “배고파서 다 먹었어요. 평소 많이 먹는 편이거든요”라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이어트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마른 체형이지만 조금만 살이 올라도 점프하는데 지장을 주기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을 수 없는 아쉬움이 항상 존재하는 그이다.
1990년생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면서 인생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답변을 기대한다면 모순일 것이다. 더욱이 낯가림이 심하고 여전히 인터뷰가 어렵기만 한 고등학교 1학년생한테 기자의 존재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연아는 특유의 ‘솔직함’으로 기자를 파안대소하게 만들었다. 그 내용들을 정리해본다.
―언론에서 ‘요정’ ‘천사’ ‘미인’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나?
▲음…. 제 얼굴은 화장을 하면 예뻐 보이지만 화장 안 하면 별루예요. (기자가 ‘쌩얼(화장하지 않은 얼굴)’이 훨씬 더 예쁘다고 추임새를 넣자) 그렇죠? 호호. 사실 제 얼굴에 만족하는 편이에요. 대회에 출전할 때 메이크업을 주로 제가 하거든요. 화장하면서 불만족스러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
||
| ▲ 이영미 기자와 함께 ‘찰칵’. | ||
▲무서워서 못해요 그런 거. 누가 귀띔을 해줬는데 라디오 진행하는 이문세 씨가 방송 도중에 제 얼굴에 손을 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대요. 저도 공감하고 있어요.
―종목이 종목이다 보니까 메이크업이나 의상, 액세서리 등에 관심이 많을 것 같다.
▲맨날 훈련하고 대회에 출전하러 다니다 보니 필요한 걸 사러 다닐 만한 여유가 없어요.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그런 거 무지 좋아하거든요. 유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게 귀고리인데 선물받거나 언니 것을 슬쩍 하고 나올 때도 있어요.
―피겨는 음악과 떼려야 뗄 수가 없을 것 같다. 평소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인가.
▲솔직히 이전에는 음악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프로그램할 때도 선생님이 골라주시는 음악을 대부분 사용했고 다른 선수들이 썼던 음악 위주로 골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니어로 가니까 음악이 아주 중요하더라구요. 인터넷을 통해 다른 선수들 배경 음악을 들으며 관심과 수준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주위에서 밴쿠버올림픽에 대해 자주 언급을 한다. 하도 많이 밴쿠버 밴쿠버 하는 바람에 부담이 장난 아닐 것 같은데.
▲잠꼬대할 정도는 아니구요(웃음),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제가 신경 쓴다고 해서 부담이 부담 아닌 걸로 바꿔지진 않잖아요. 언론에서 저보다 더 부담 갖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호호.
―이제 고1이다. 하루 빨리 미성년자란 꼬리표를 떼고 싶지 않나.
▲이전에 성적 안 나고 국내 대회에만 출전했을 때는 빨리 대학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언니들이 대학가면 대부분 운동을 그만두더라구요. 너무 너무 힘들 때 나도 대학 가서 빨리 운동을 그만뒀음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었죠. 운동 그만두면 다른 학생들처럼 대학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거잖아요.
―지난번 공항 인터뷰에서 피겨 스케이팅을 직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겠다고 말했었다. 학생 신분으로 ‘직업’ 운운하니까 그 대답이 재미있게 들렸다.
▲아시다시피 신분은 학생이지만 생활은 학생이 아니잖아요. 평소 슬럼프에 빠질 조짐이 보이면 피겨 스케이팅을 직업으로 삼은 프로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거든요. 국내 대회에만 참가했을 때는 이런 생각도 못했죠. 그러나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유명한 외국 선수들을 보고 자극도 받고 오기도 생기면서 목표가 보이더라구요.
―친구들과 함께 하는 학교 생활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원래 공부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학교 안 가고 스케이트 타는 게 더 좋았거든요(웃음). 물론 친구들이 같이 놀지 못하는 건 많이 아쉽죠.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가니까 걔네들이 더 바빠지더라구요. 전요, 시합나가는 게 재미있어요. 물론 시합할 때는 떨리고 긴장되지만 대회를 통해 제가 준비한 모든 걸 보여주는 과정들이 정말 즐거워요. 특히 국제대회는 시합 끝나고 파티도 하고 외국 선수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많거든요. 그런 생활이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
|
||
| ▲ 김연아가 지난 18일 프랑스에서 열린 2006-2007 국제빙상경기연맹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시리즈 4차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멋진 연기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 ||
▲그 이유를 알면 제가 이렇게 있겠어요? 스케이트를 시작하면서 참으로 많은 스케이트화를 신어 봤어요. 그런데 단 한 번도 제 발에 맞는 게 없었어요. 그것 때문에 연습을 꾸준히 할 수가 없더라구요. 연습을 하다가 발목이 아파서 그만두기를 수백 번도 더 했거든요. 일본에 스케이트화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장인이 계신다고 해서 곧 일본으로 떠날 거예요. 그분을 만나면 저랑 엄마가 풀지 못했던 궁금증을 풀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잔뜩 기대하고 있어요.
―그래서 한때 은퇴를 결심했던 건가.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지만 스케이트화 문제가 가장 컸었죠. 부츠가 절 너무 힘들게 하니까 타기가 싫더라구요. 밖에서는 ‘그래도 해야지’ 하고 마음을 고쳐 먹다가도 막상 링크장에 가면 끔찍했어요. 너무 고통스러웠으니까.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신발이 잘 맞으면 날아갈 듯이 타다가 또 안 맞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니까 하기 싫어졌죠. 저보다 엄마가 더 힘드셨을 거예요. 많이 우셨으니까. 그때 만약 그만뒀다면 오늘의 저도 없었겠죠?
―인터뷰를 무척 어려워하는 것 같다. 친한 사람들한테는 말도 잘 하고 수다도 많이 떤다고 들었는데.
▲대부분 우승 소감, 뭐 이런 거 많이 물어보시잖아요. 솔직히 우승했다고 해서 거창한 소감이 떠오르진 않거든요. 그냥 지어내는 거죠. 우승하는 순간 그동안 고생하고 힘들었던 거 생각 안 나요. 그냥 1등 했구나 하면서 기쁠 뿐이지. 그래도 요즘엔 많이 하다 보니까 익숙해졌어요. 기자들이 원하는 대답이 따로 있더라구요. 이젠 그걸 알겠어요.
―‘피겨 요정’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밴쿠버올림픽에서 메달 따는 거예요. 색깔은 정말 중요하지 않아요. 메달만 땄으면 좋겠어요. 그 다음의 진로는 잘 모르겠어요. 은퇴를 하게 되면 아이스 쇼를 하거나 코치로 활동할 수도 있겠죠. 이전보다는 훨씬 안정된 환경에서 운동을 하기 때문에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좋아하는 연예인이 수시로 바뀐다는 김연아는 최근 ‘동방신기’한테 ‘필’이 꽂혔다고 한다. 그러나 연예인보다 더 좋아하는 직업군이 있는데 바로 남자 피겨 스케이트 선수. 외국에서 내로라 하는 피겨 스타들 대부분이 ‘꽃미남’들이라 김연아는 대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의 연기와 기술, 그리고 외모에 푹 빠져 지낸단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