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급 외청장 2~3명 날린다
▲ 최근 청와대가 민정팀을 중심으로 비리 혐의가 포착된 고위공직자에 대해 강도 높은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공직 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사진은 청와대 전경과 사극 스틸을 합성한 것. | ||
청와대는 5·31 지방선거 이후 공직자들의 근무기강 해이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판단하에 민정팀을 중심으로 비리 혐의가 포착된 고위공직자에 대해 강도 높은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성 전 국세청장과 김정일 전 방위사업청장의 잇따른 사퇴도 청와대의 암행 감찰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면서 고위 공직자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측의 내사 과정에서 차관급인 외청장 2~3명의 일부 비리 혐의가 포착돼 조만간 경질되거나 자진 사퇴할 것이란 얘기도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청와대는 암행감찰을 통해 드러난 고위공직자를 엄벌에 처하는 동시에 사법처리도 불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청와대가 고위공직자에 대한 대대적인 암행감찰에 돌입한 배경에는 흐트러진 공직기강 확립이라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 ‘레임덕 차단’이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투영돼 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극심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완패한 것은 여권에 등 돌린 민심을 대변하고 있고 김근태 의장 체제 출범 이후 당·청간 갈등의 골은 여전히 수면 아래서 꿈틀거리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대북정책과 미·일·중·러 4강 외교 노선에 중대한 고비를 맞이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농민·노동계·시민사회단체 등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해 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몰려있는 게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현 주소다.
여기에 정부 여당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할 공직사회 분위기도 심상찮다. 관가 주변에선 “일부 고위공직자들이 한나라당에 줄서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정권 말기 공직자 사회의 기강 해이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집권 여당에 대한 공직사회의 이탈 현상은 곧바로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청와대가 고위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암행감찰에 돌입한 것도 바로 이러한 ‘레임덕’ 현상을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청와대는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행정부와 정부산하단체 곳곳에서 레임덕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하고 공직자 근무기강 확립을 명분으로 대대적인 내부감찰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사 결과 비리혐의 등이 드러날 경우 엄격히 책임을 묻겠다는 분위기다.
정치권 주변에선 차관급인 이주성 전 국세청장과 김정일 방위사업청장이 잇따라 사퇴한 배경에는 청와대의 암행감찰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사표가 수리된 이 전 청장의 퇴진 배경을 놓고 정치권에선 갖가지 추측과 설이 난무하고 있다. ‘정치적 압력설’ ‘인사 관련 불화설’ ‘개인비리 투서설’ 등이 대표적이다.
이중 ‘투서설’은 청와대의 암행 감찰 의혹과 맞물려 그 진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전 청장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 개인비리 내용이 담긴 투서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접수됐고 이러한 투서 내용을 바탕으로 청와대가 이 전 청장의 사퇴를 압박했을 것이란 게 투서설의 골자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는 “국가청렴위원회가 청와대에 밀봉 문건(이 전 청장 비리 내용)을 전해줬다는 등 각종 설이 분분하다”며 “청와대는 이 전 청장이 사퇴한 합당한 이유와 배경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청와대 측과 이 전 청장은 ‘용퇴’라고 주장하면서 투서나 문건에 대해선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취임 7개월여 만에 사퇴한 김정일 전 방위사업청장의 낙마를 둘러싼 뒷말도 무성하다. 지난 19일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사직서를 제출한 김 전 청장은 “말레이시아 출장 때 골프를 친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던 중 차관급 인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신문 보도를 보고 결심을 하게 됐다”고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또 “6월 17일 프랑스에서 알제리로 가는 항공기 속에서 육사 동기생으로부터 5000유로(약 600만 원)가 든 봉투를 받았지만 귀국한 지 1주일 뒤에 되돌려줬다”며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정치권의 외압에 의한 사퇴 여부에 대해선 “전혀 아니다”며 강력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김 전 청장의 이러한 의혹들에 대해 내사를 벌여왔던 게 사실이다. 청와대는 7월 초 국방부에 말레이시아 출장 중 총리실에 출장 연장을 보고하지 않고 한국방위산업체 관계자 등과 골프를 친 김 전 청장을 조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 지난 4일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민정수석실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국방부에서 진상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해외 골프 접대 등 김 전 청장의 부적절한 행동이 사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비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청와대의 내사가 있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 이주성 전 국세청장(위)과 김정일 전 방위사업청장의 사퇴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 ||
차관급 외청장인 A 씨는 취임 초 겸손한 언행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최근 거만해진 말투와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변했다”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A씨는 본인의 지위를 이용해 신축 건물 인허가 과정에서 건축업체 등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청와대 감찰 결과 드러나 조만간 경질되거나 스스로 용퇴할 것이란 소리가 나돌고 있다.
또다른 차관급 외청장 B 씨는 조직 장악력에 한계가 있고 청와대 측과 내부 인사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어 경질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와대의 경질 분위기를 감지한 B 씨는 최근 청와대 고위인사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청와대는 B 씨가 취임한 지 1년이 채 안됐고 그의 사표를 수리할 경우 ‘외압설’ 논란이 가열될 소지가 높아 고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골프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현직 장·차관 및 정부 고위 공무원들도 청와대 감찰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최근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에 18홀 규모로 건립한 화성 상록 골프클럽에 3부 요인과 장·차관, 정부 고위직 인사들을 초청하는 라운딩 일정을 잡았으나 모 언론사가 취재에 들어가자 돌연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고위 인사들 중 상당수는 공단 측의 초청행사에 참가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나 청와대가 사실 유무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문제가 된 골프장은 아직 준공검사를 받지 않은 무허가 골프장이라는 사실 때문에 초청에 응한 고위 공직자들은 도덕적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단 측은 해명자료를 통해 “시범 라운딩은 코스가 설계대로 시공되었는지 여부 확인, 코스별 난이도 측정, 캐디 교육, 카트 등의 각종 장비 운행 숙달 및 성능 확인을 위한 것으로써 모든 골프장이 정식 개장 전에 거치는 필수 과정”이라며 “공단에서 고위공무원들을 초청한 것은 사실이나 초청에 응하여 계획이 확정된 바는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국가청렴위는 지난 3월 고위공직자들에게 ‘골프 금지령’을 발표한 바 있고 건교부 장관은 공직자들이 골프를 칠 경우 정직이나 해임 등 중징계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따라서 청와대 측은 내사 결과 공단 측의 골프 초청행사에 참여 의사를 밝힌 인사들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징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관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들은 조만간 단행될 차관급 인사 과정에서 청와대 민정팀을 중심으로 한 내부 감찰 결과가 상당부분 작용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번 차관급 인사는 장기 근무자 중 업무성과가 떨어지거나 개혁성이 미흡한 인사들이 주로 교체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개인비리나 부적절한 언행으로 구설수에 오른 차관과 외청장, 정부투자 기관장들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차관급 후임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 중 부동산 투기 의혹 등 비리혐의가 있는 인사는 그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의 암행 감찰과 맞물려 관가에 대규모 인사 태풍 조짐이 일면서 공직사회가 바짝 긴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편 이주성 전 국세청장과 김정일 전 방위사업청장 등 고위공직자의 잇단 사퇴와 관련해 낙마 배경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실제로 위법행위가 있었다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19일 “‘용퇴’라는 변명으로 각종 의혹을 덮으려 할 게 아니라 사퇴 이유와 배경을 사실대로 밝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참여연대는 또 “공직자는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공무를 수행한다”며 “고위 공직을 갑작스레 그만두게 됐다면 ‘용퇴’라는 변명으로 덮으려 할 것이 아니라 사퇴 이유와 배경을 사실대로 밝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한 책무”라고 주장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