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밝히지만… 비행기 때문에 은퇴”
▲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보고 또 봐도 빈틈이 보이지 않는 남자(제대로 보면 빈틈이 보일 것도 하다^^), 한 번쯤 ‘찐하게’ 소주 한잔 나누고 싶은 남자(감기에 걸려 당분간 술은 사절이란다), ‘카리스마’로 대변되는 겉모습보다 사람을 챙기고 좋아하는 소프트한 내면의 세계가 더 매력적인 남자(너무 띄워주는 거 아냐?)인 홍명보 코치(38)가 2007년 새해 첫 번째 ‘리얼토크’ 주인공이다.
지난 12월 25일 홍명보 장학재단이 주최한 자선 축구 경기를 성황리에 끝마치고 미국에 머물던 가족들이 완전 귀국하면서 이사까지 하게 돼 정신없는 연말을 보냈다는 홍 코치의 2006년, 희로애락이 가득했던 대표팀 생활을 들어본다.
―먼저 자선 축구 경기에 대해 얘기해 볼 게요. 좋은 취지로 4회째를 맞은 행사가 일부에선 홍명보 코치 개인 행사로 폄하하는 시각도 있더라구요. 자선 경기의 주인이 어린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홍 코치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스러울것 같아요.
▲사실 이 대회를 시작했을 때부터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나 홍명보라는 사람이 후배나 선배들을 앞세워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는, 생각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또 자선 경기에 참가한 많은 축구인들이 그런 대접을 받을 분들도 아니구요. 비난 때문에 자선 경기를 포기할 수는 없죠.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면 아예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겁니다.
―홍명보 코치가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한다고 발표됐을 때 당시의 반응은 ‘걱정 반 기대 반’이었어요. 홍 코치를 잘 아는 한 축구인은 ‘너무 빨리 나오는 것 아니냐’며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로 우려를 덧붙이기도 했었거든요.
▲저 또한 많은 망설임이 있었어요. 그러나 핌 베어백 감독(당시 수석 코치)이 도와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어요. 아드보카트 감독의 계약 조건에 절 포함시킨 것도 핌 감독이었구요. 사실 타이틀은 코치였지만 전 코치 역할보다는 선수와 감독 사이의 다리 역할을 대신하는 거였어요. 만약 제가 들어가서 선수들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거절했을 겁니다.
―당시 지도자 자격증이 없는 게 문제가 되기도 했어요. 그래서 홍명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냐 하는 비난도 있었죠.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제 욕심은 아니었고 대표팀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과정들이 있었잖아요. 만약 제 자리를 경험이 있는 코치, 감독을 해본 사람이 맡았다면 대표팀은 무너졌을 지도 모릅니다. 저처럼 어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순히 선수들과 감독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몸을 낮춘 게 잘 맞아 떨어졌어요. 그렇다고 할 말 못하고 지내진 않았어요. 제 생각과 다른 부분에선 과감하게 의견 개진을 했어요. 무엇보다도 지도자 자격증 때문에 월드컵 끝나자마자 파주로 들어가 교육을 받을 때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제일 힘들었어요. 절대적으로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죽겠더라구요.
―월드컵 이후의 진로 문제도 많은 관심을 모았었죠. 대표팀에 남느냐 떠나느냐의 갈림길이었잖아요.
▲핌 감독 때문에 남게 됐어요. 월드컵 이후 아주 어려운 시기에 대표팀을 맡았는데 모른 척할 수가 없더라구요. 지금까지 여러 감독들을 만나봤지만 핌 감독처럼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하는 지도자를 못 봤어요.
―하지만 핌 베어백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지도력에 대한 비난도 잇따르고 있는데.
▲대표팀 감독은 경기 결과로밖에 보여줄 수 없으니까요. 지금 대표팀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건 전술이에요. 핌 감독이 쓰는 포백을 K-리그에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선수들은 대표팀에 들어가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해요.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수밖에요.
―돌이켜보면 엘리트 코스만 밟고 지금까지 올라왔어요. 가장 젊은 나이에 대표팀 코치로 활동하고 있구요.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기와 질투의 세력들도 있겠죠?
▲당연하죠. 그러나 주위의 견제가 없다면 저 역시 발전이 없을 거예요. 전 충분히 받아들입니다. 지난 월드컵 때 지도자 자격증 문제가 거론됐을 때도 전 받아들이고 인정했어요. 하지만 그냥 공짜로 이 자리에 오른 건 아니잖아요.
▲ 지난 6월 아시안컵 예선전 대만과의 경기에서. ‘카리스마’ 홍명보 코치 뒤로 베어벡 감독이 보인다. | ||
▲항상 의식하고 있어요. 홍명보니까, 홍명보라서, 홍명보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많죠. 그런데 홍명보이기 때문에 더 많이 칭찬 듣고 비난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에요. 오히려 더 공격을 받을 때도 있죠.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지도자 상이 있을까요?
▲전 절대로 선수들에게 억압과 강요를 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선수를 이해시키는 게 중요해요. 지도자는 선수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아야죠. 이전에는 한국 축구의 문제를 잔디 구장이나 유소년 육성 정책 등 주로 환경적인 부분을 거론했는데 전 앞으로 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정확한 지도를 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봐요.
―월드컵 끝나자마자 2010남아공월드컵 차기 감독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왔었어요. 입장이 애매하셨을 것 같아요.
▲굉장히 불편했죠. 그동안 매스컴, 미디어와의 관계를 중요시했는데 그 일로 좀 실망했어요. 아무런 증거도 없이 단지 ‘그럴 것이다’라는 설로만 절 대표팀 감독에 올려놓는다면 너무 무책임한 거죠.
―언젠가는 대표팀에서 ‘잘릴 것’이란 생각 해보셨어요?
▲그럼요. 2008년까지 계약이 돼 있지만 올해 아시안컵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물러나야겠죠. 당연한 얘기입니다. 중요한 건 잘릴 걸 염려하기 보단 후회 없이 하는 거예요.
―너무 멋진 말만 하시네요. 항상 반듯한 이미지라 좀 부담스럽기도 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웃음). 전 항상 준비하는 편이에요. 제 앞길에 대해서. 그래서 공백 기간이 없는 편이에요.
―선수 생활 중 최고의 황금기는 언제였나요?
▲1999년과 2000년이요. 일본에서 선수 생활할 때였죠. 그때는 축구만 했던 게 아니라 일본팀(가시와 레이솔)에서 주장을 맡고 선수들과 참으로 편하게 지냈어요. 성적도 아주 좋았구요. 그 다음이 2002년 월드컵이에요.
―후회되는 시기도 있을 것 같은데요.
▲별로 없어요. 미국에 갔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 게 조금 후회되긴 해요. 하지만 미국에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죠.
―LA갤럭시에서 은퇴를 했는데 이제야 밝히는 은퇴 진짜 이유가 있다면?
▲정말 솔직히 말해서 비행기 타기가 힘들어서 그만뒀어요. 미국에 10개의 프로팀이 있는데 대여섯 개 팀이 동부에 있었어요. LA에서 동부를 가려면 새벽 5시에 집에서 출발해 오후 5시 정도가 돼야 원정팀 숙소에 도착했거든요. 시차 적응을 할 틈도 없이 다음 날 경기를 뛰어야 하니까 체력적인 부담이 엄청났죠. 1년 정도 더 할 수는 있었어요. 옵션도 그랬구요. 하지만 미련 없이 그만뒀습니다. 비행기 타기가 싫어서….(웃음)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꼭 하고 싶었어요. 국가대표팀 감독에 대한 꿈이 있나요.
▲대표팀 감독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자리예요. 경쟁력도 있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 나이도 어리고 좀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해요. 지난번 일본과의 친선 경기 때 제가 임시 감독을 맡은 적이 있었잖아요. 혼자서 모든 걸 준비하고 진행시키려다 보니까 굉장히 힘들었어요. 물론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자신감이 생겼지만 지금 제 머릿속에는 대표팀 감독에 대한 그림이 전혀 그려져 있지 않아요.
프로팀에서의 지도자 생활에도 흥미가 없다고 말했다. 1년 내내 축구만 하는 생활을 너무나 오랫동안 경험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자유롭게 대표팀 코치와 다른 사회적인 일들을 병행해 나가고 싶다고 한다. 홍명보 코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퍼거슨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되새김질 했다.
“일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자신은 곤경에 빠졌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 문구가 참 좋았어요. 그런 철학을 가지고 일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반듯남’에게 이렇게 한 번 딴지를 걸어봤다. “이상하게 깨진 적(욕먹은 적)이 별로 없어요. 왜 그렇죠?” “지금까지 안 그랬다면 앞으로 그런 날이 오겠죠? 그때가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하하.”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