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3인방’ 분위기는 이미 접수
▲ 스프링캠프에서 류제국 최희섭 서재응(왼쪽부터). 함께 있어서일까, 세 명의 표정이 여유롭다. 연합뉴스 | ||
낯선 상대가 조크라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자고 웃는데 일단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다지 웃음이 나올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각설하고 어쨌든 로젠탈이 말한 의미는 분명했다. 그리고 라커룸에 바로 들어가면 이러한 분위기를 여지없이 느낄 수 있다. 훈련이 끝나고 캠프 라커룸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불펜 피칭을 마친 서재응이 오른 어깨에 얼음 붕대를 매고 있다. 그 옆의 다소 덩치가 더 큰 후배 투수 류제국이 역시 얼음 붕대를 함께 차고 어깨를 식힌다. 류제국의 라커는 서재응 옆에 붙어있다.
예상대로 탬파베이 홍보 담당은 “한국인 선수들끼리 서로에게 도움이 되라는 차원에서”라는 이유로 두 투수의 라커가 붙어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누군가 서재응 류제국 그리고 한국 기자들이 이야기하는 곳을 기웃거리더니 ‘f’가 들어간 상소리를 섞어가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한다. 야수 중 한 명인 훌리오 루고다. 기자들이 많이 와서 아예 의자를 꺼내 앉아 이야기를 하니 자신들이 불편하다는 소리다.
서재응이 “저 선수, 원래 저래요. 다른 선수들도 대개 저래요”라며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중남미 선수 위주로 선수들이 모이는 곳에서 한국 선수들은 1994년 박찬호의 미국 진출 이후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캠프에 무려 3명이 같은 클럽하우스를 쓰고 있다. 여기에 서재응은 고참급에 속하는 나이다. 라커룸 주도권이 중요해 보이진 않더라도 선수들에겐 은근히 신경 쓰이는 대목. 분위기를 대충 보니 이건 정말 ‘한국인 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보스턴-양키스, 그리고 메츠 등의 팀과는 또 다른 탬파베이의 캠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단 무척 거칠다. 오래되지 않은 팀(1998년 리그에 편입)이다 보니 시설은 좋아도 선수들은 젊고, 또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 메츠 캠프서 근엄한 표정으로 선수들에게 카리스마를 발휘하던 모이제스 알루의 표정과 비교해보니 더욱 그렇다.
서재응은 메츠-다저스 시절과 다르게 탬파베이의 특징을 ‘공평함과 기회’라고 이야기했다. 대개 비슷비슷한 경력의 유망주 또는 베테랑 진입 직전들의 선수들이 모여 있는 팀이 탬파베이 아니던가. 그러다 보니 눈치 볼 일도 없고 자신만 열심히 훈련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팀. 이러한 분위기는 스프링캠프 라커에서도 여지없이 나온다. 류제국 같은 경력의 선수에게 좋은 위치의 라커가 주어지기도 힘든데다가(유망주, 25인 로스터 진입 여부가 확실치 않은 선수들은 대개 한 곳에 같이 모아 놓는다. 그래야 캠프 중간중간 로스터 정리가 되면 라커 정리도 수월하다) 크게 웃으면서 자기 이야기도 거침없이 내뱉는다. 바로 서재응과 최희섭 덕분 아닐까.
서재응의 라커와 최희섭의 라커 사물함 위쪽에 류제국의 사진이 붙어있다. 류제국이 붙여놓은 것이다. “저 까먹지 말라고요.” 영리하고 얄미운 후배다. 류제국의 지금 위치는 5선발 경쟁서 탈락할 경우 불펜, 또는 마이너리그서 2007시즌을 시작해야할 처지다. 계속 함께 있으면서 새로운 팀 분위기 적응에도 도움을 달라는 ‘야구 카드’ 시위다.
류제국은 어떤 도움을 구체적으로 받고 있을까. “무엇보다도 목표가 생겼다. 형들을 보면서 그간 마이너에서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가’라고 막연히 신세 한탄만 했었다. 이제 그런 게 없어졌다.”
비단 정신적인 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재응은 매년 오프시즌 체중조절에 실패하는 류제국의 몸 관리에 많은 신경을 써주고 있다. 누구보다 마이너 시절부터 오프시즌 컨디션 관리에 애를 먹었던 서재응인지라 그런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최희섭과 서재응, 그리고 류제국은 오늘도 한 곳으로 몰려간다. 캠프장 근처에 위치한 서재응의 집이다. 아내 이주현 씨가 힘들어 하겠다고 하자 “사실 오래 전부터 지인들과 후배들을 집으로 자주 데려가 주현이도 익숙해져 있다. 오히려 지금은 후배들과 함께 안가면 더 허전해 한다.”
세인트피터스버그=김성원 JES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