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사는 ‘외형’ 증권사는 ‘실리’ 챙겨…일임형 온라인 판매 변수될 듯
ISA 계좌 1인당 평균 가입액은 67만 원 안팎이다. 이 가운데 은행은 46만 원으로 평균치를 밑돈 반면 증권사는 266만 원으로 평균 대비 4배에 달했다. 사진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 없다. 일요신문 DB
업권별 현황을 보면 은행은 ‘규모’를 챙겼고, 증권사는 ‘실리’를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가입자 가운데 은행에 계좌를 튼 고객은 136만 2000여 명에 달해 14만 2000여 명이 가입한 증권사를 압도했다. 반면 가입액은 은행이 6280억 원, 증권사가 3793억 원으로 가입자 수 대비 예치 금액에선 증권사가 우위를 보였다.
모든 ISA 계좌의 1인당 평균 가입액은 67만 원 안팎이다. 이 가운데 은행은 46만 원으로 평균치를 밑돌았다. 반면 증권사는 266만 원으로 평균 대비 4배에 달했다. B 은행 관계자는 지난 20일 “아무래도 기존 증권사와 거래했던 분들은 자산 운용에 적극적이라 투자에 공격적인 성향을 띠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가입 2주차 통계를 보면 은행은 23만 4000여 개의 계좌(신탁형)에서 966억 원의 가입금을 받았다. 하지만 증권사는 2만 8000여 개의 계좌(신탁형)에서 975억 원의 가입금을 유치했다. 일시적이나마 더 적은 계좌에서 더 많은 돈을 끌어 모은 셈이다. 또 신탁형 계좌는 고객 스스로 MP(모델 포트폴리오)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주로 안정적인 성향의 투자자가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이 강점으로 인식되던 신탁형 계좌에서의 ‘고전’은 예상 밖이라는 게 은행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증권사들 역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일임형 판매가 시작된 5주차 판매 현황을 보면 은행사의 가입액은 194억 원으로 증권사(16억 원)보다 10배 이상 많다. 또 은행사의 가입 5주차 판매 실적은 증권사의 누적 실적(170억 원)을 뛰어넘었다. 일임형 계좌는 신탁형에 비해 중위험 상품을 취급할 가능성이 높아 증권사에 유리한 것으로 해석돼 왔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20일 “자산운용업을 중심으로 업권별 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ISA제도 시행 전부터 금융권은 증권업계 인력을 충원해 펀드 등을 취급해 왔다. 기존 예·적금 처리, 대출 등 전통적인 상업은행 역할에서 벗어나 투자은행으로 진출을 준비해 왔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금융위)가 도입을 주도한 ISA는 당초 ‘국민재산 늘리기 프로젝트’로 명명됐다. 하지만 그 내막을 살펴보면 은행권의 고민을 정부가 들어준 측면이 있다. 금융위는 제도 준비 과정에서 은행에 신탁형 ISA만 허용했다가 펀드, 파생결합증권 등으로 구성된 일임형 ISA 판매까지 허용했다. 장기적인 저금리와 예금 유출로 신음하던 은행권으로서는 호재다.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투자일임시장 규모는 500조 원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됐다.
B 은행 관계자는 일임형 ISA 시장에서 은행의 성공을 자신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증권사가 전문성을 내세우지만 은행이 가진 장점은 각 금융기관의 우수한 상품들만 모아 MP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A 은행 관계자 역시 “우리나라 고객들의 투자 성향이 안정적인 편이라 증권사보다 은행을 찾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변수는 온라인 시장에서 우위를 지금처럼 은행이 가져갈 수 있느냐다. 금융위는 은행권의 투자일임업 진출을 허용하면서, 일임형 ISA의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는 은행 대비 지점망 확보에서 열세에 놓인 증권사 입장에서 기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철호 연구원은 “ISA 시장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판매채널 확보”라며 “그간 은행이 고객 유치에서 우위를 가졌던 것은 지점이 많고, 고객들 시각에서 친숙했기 때문인데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지면 ‘약자’인 증권사가 혜택을 볼 수 있다. 특히 지점망 환경이 열악한 작은 증권사들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체 가입자 가운데 은행에 계좌를 튼 고객은 136만 2000여 명에 달해 14만 2000여 명이 가입한 증권사를 압도했다. 반면 가입액은 은행이 6280억 원, 증권사가 3793억 원으로 가입자 수 대비 예치 금액에선 증권사가 우위를 보였다. 사진은 기사 특정 내용과 연관 없다. 일요신문 DB
반면 은행 중에선 국민은행, 신한은행, 중소기업은행 등 3곳이 선제적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들 세 은행을 제외한 남은 11개 ISA 취급 은행은 온라인 서비스 제공 시점을 확정하지 않았다. 지난 18일 온라인 서비스를 개시한 B 은행 관계자는 “온라인 가입 초기에는 증권사가 좀 더 유리할 것”이라면서도 “수익률 공개로 계좌 이동이 자유로워지면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각 은행과 증권사는 정확한 가입 실적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이 ‘과열 경쟁’을 우려해 언론 공표를 금지한 까닭이다. 단 복수의 금융·증권업계 관계자는 A 은행과 B 은행과 D 은행 등의 실적이 눈에 띈다고 전했다. 이들은 ISA 출시 직후 각각 2만 5000개에서 5만 1000개의 계좌를 유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증권사 중에서는 E 사가 고객 유치에 적극적이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깡통계좌’란 의혹을 받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초 증권사들은 ISA 도입에 회의적이었다”고 전했다. 시행 5주차 기준 신탁형이 9719억 원의 가입금을 받는 동안 일임형은 365억 원을 투자받는 데 그쳤다. 그러나 온라인 가입 허용으로 일임형 시장이 확대될 것이니만큼 업계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신탁형 VS 일임형 ‘차이점’ ―신탁형 ISA : 가입자가 직접 개별 상품을 선택해 투자하는 방식이다. 어떤 종목에 투자할지 수량은 어느 정도로 배분할지 가입자가 직접 결정할 수 있다.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상대적으로 하이리스크(고위험)에 따른 기대 수익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일임형 ISA : 은행 또는 증권사가 제시한 MP(모델 포트폴리오)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가입자는 상품 선택권이 없으며, 투자에 관한 권한을 은행 또는 증권사에 위임한다. 이 과정에서 MP는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 초고위험 등으로 나뉜다. 위험도가 높을수록 기대수익률이 높다. 단 일임형 ISA는 신탁형 ISA에 비해 수수료가 높다는 단점이 있다. |
보험업계 ISA 뛰어든 까닭은? 수익보다 VIP 관리용 [일요신문] 생명보험사(생보사) 중에서도 ISA를 취급하는 업체가 두 곳 있다. 삼성생명과 미래에셋생명이다. 이들 생보사들은 각각 신탁형 ISA를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가입 실적은 미미한 편이다. 제도 시행 5주차 기준 두 업체는 가입자 805명, 가입금 11억 원을 유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은행(6280억 원)과 증권사(3793억 원)가 올린 실적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두 업체 가운데 ISA 판매에 좀 더 적극적인 곳은 미래에셋생명으로 알려졌다. 지난 21일 업계 관계자는 “삼성생명은 미래에셋생명이 출시하자 뒤늦게 상품구성을 했다”며 “생보사가 ISA를 판매하는 이유는 수익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VIP 고객을 관리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생보사들은 일임형 ISA를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온라인 가입 서비스 도입에도 미온적이다. 삼성생명은 금융위원회에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미래에셋생명 역시 서비스 도입 시기를 ‘미정’이라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