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붕 날아다녔다간 ‘손볼 대상’으로
▲ 지난 4일 두산과 LG의 경기 중 두산 안경현이 LG 투수 봉중근(맨 오른쪽)의 공이 머리 옆으로 날아오자 흥분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둘은 다음 경기에서 화해했지만 벌금을 내라는 징계를 받았다. 연합뉴스 | ||
사건이 일어난 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봉중근은 메이저리그에서 싸움하는 것만 배워왔냐’, ‘나이도 한참 많은 안경현이 좀 참지 왜 그랬느냐’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재미있는 건 두산은 몸싸움 이후 연승 모드를 타며 순위가 올랐고 LG는 반대로 연패에 빠지면서 추락했다는 점. 우연의 일치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의 승자는 두산이었다.
▶벤치 클리어링과 매너
메이저리그에선 이처럼 마운드 주변에 양팀 선수들이 모여 집단 대치 국면을 벌이는 것을 ‘벤치 클리어링’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뛰쳐나가다 보니 정작 벤치에는 싹 청소된 것처럼 선수들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을 상징하는 용어다. 이번 LG와 두산의 벤치 클리어링에선 에피소드가 있었다. 몸싸움 당시 텔레비전 중계 화면을 자세히 지켜본 네티즌들은 어떤 선수가 붕붕 날아다니는 모습을 분명히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당사자가 아닌데도 오버액션하듯 날아다니며 불필요한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만약 네티즌 증언대로 제3의 선수가 넘어진 상대팀 선수를 발로 걷어찼다면 그 선수에겐 올 시즌 내에 반드시 보복성 빈볼이 날아갈 가능성이 높다. 누구보다 선수들이 잘 안다. 대개 심각한 수준의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지면 이튿날쯤 선수들끼리 모여앉아 ‘무용담’, 내지는 ‘목격담’을 교환하게 마련이다. 서로 얘기하다 보면 급박했던 상황에서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세세한 부분들이 그림처럼 짜 맞춰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가 아닌데도 저쪽 후배 선수가 이쪽 선배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거나 곁다리에 해당하는 인물이 쓸데없는 폭력을 쓴 게 알려지면 “다음에 한 번 준다”는 의견이 나오게 마련이다. 문제의 인물이 타자라면 그건 곧 그 타자에게 훗날 게임에서 빈볼이 날아갈 거라는 얘기가 된다.
▶예의 없으면 보복 당해
벤치 클리어링 때 예의 없이 행동한 선수가 투수라 가정해보자. 한국프로야구에선 투수가 타석에 서지 않기 때문에 컨트롤 미스를 가장한 빈볼에 맞을 일이 없다. 그렇다면 선수들이 암묵적으로 다른 팀 투수를 벌주기로 결정했다면 어떤 방식을 이용할까. 문제의 상대 투수가 등판하면 일단 1루 쪽으로 번트를 댄다. 1루수가 전진해 들어오면서 타구를 잡고, 그 사이 투수가 1루 베이스 커버에 들어가야 한다. 평범한 기습번트에 아웃 타이밍이니 대단한 상황도 아니다. 이 때 전력질주한 타자주자가 1루 베이스에 붙어있는 투수의 발을 밟고 지나간다. 스파이크에 밟히면 자칫하면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보이면서도 일종의 ‘응분의 대가’를 주겠다는 행동인 셈이다. 때론 이 같은 상황을 예측한 투수가 베이스에서 발을 빨리 빼내는 경우도 있다.
보복 성격으로 타자 머리 쪽을 향해 빠른 직구를 던지는 걸 메이저리그에선 ‘헤드 헌팅’이라 부른다. 유능한 CEO를 스카우트하는 걸 뜻하는 ‘헤드 헌팅’이 이 경우엔 말 그대로 ‘머리 사냥’의 뜻으로 쓰이는 셈이다. ‘헤드 헌팅’은 뭔가 이유가 있어서 이뤄진다. 상대 팀이 경기 후반 10-1 정도로 크게 앞서 있는데도 2-3루 도루를 시도한다거나, 승부와 크게 관계없는 홈런을 치고 눈에 거슬릴 정도의 세리머니를 한다면,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면 투수 본인의 판단에 따라, 혹은 벤치 지시에 따라 ‘헤드 헌팅’이 이뤄진다. 물론 이 같은 빈볼 때문에 벤치 클리어링 사태가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해 훗날 다시 맞붙을 때 ‘헤드 헌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돌고 도는 관계란 얘기다.
▶관중에겐 색다른 흥미
감독들은 선수들에게 독기를 불어넣기 위해 일부러 심판에게 대들어 퇴장을 유도하기도 한다. 때론 이 같은 퇴장 전법이 아니라 교묘하게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질 만한 상황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한 번 붙어보자’는 양 팀 벤치의 느낌이 운동장에서 고스란히 느껴질 때가 한시즌에 몇 차례 있다.
최근 들어선 그라운드 몸싸움에 대해 관대한 시선이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도가 지나치지 않다면 관중에게도 흥밋거리를 제공한다는 이유가 바로 벤치 클리어링 옹호론자들의 주장이다. 지나친 폭력에 대해선 비난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슴 서늘해지는 대치 국면에서 오는 긴장감을 즐기며 ‘프로야구의 또 다른 맛’이라고 정의내릴 때도 있다. 결국 적당한 수준이라면 괜찮다는 얘기가 되는데 문제는 그 ‘적당함’이 어느 정도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가끔씩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