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순철’ 속내는 부드러워요
▲ MBC ESPN의 야구 해설을 맡아 ‘비난 해설’로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이순철 위원. 평소 등산 코스인 아차산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지난 30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아차산에서 이 위원을 만나 가볍게(?) 등산을 하며 리얼토크를 진행했다. 참고로 아차산은 이 위원이 아침마다 즐겨 찾는 곳으로 등산을 통해 건강을 챙긴다고 한다.
“난 괜찮은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겠어요?”
5월 말, 푹푹 찌는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 작열하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등산하며 인터뷰하겠다는 발칙한 상상을 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4년 전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원정 경기 없을 때는 항상 아차산을 찾았다는 ‘꾼’과 아차산 초입의 약수터 방문이 고작이었던 기자와는 애초부터 게임이 안 되는 산행이었다. 1차 목표로 잡은 팔각정을 향해 출발을 하면서 녹음기를 들고 인터뷰를 시작하는데 몇 십 미터 올라가지 못하고 헉헉거리는 바람에 이 위원이 “정말 괜찮겠느냐”고 자주 묻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쩔 수 없이 중간에 잠시 쉬기로 하고 얘기를 나눴다.
“시즌 시작하고 어느덧 6월인데 이젠 해설하시는 게 좀 편안해지셨어요?”
“아녜요. 생방송이라는 게 참 그렇더라구요.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잖아요. 그게 가장 두려웠어요. 전에는 해설하는 거 편하게 들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엄청난 준비를 필요로 하대요. 야구 이론도 뒷받침돼야 하고 현장에 대한 순발력도 있어야 하고…. 경계선에서 오락가락해요. 마치 온탕과 냉탕 사이에서 잘하면 ‘온탕’으로, 못하면 ‘냉탕’으로 빠지는 기분이랄까? 그날 해설이 ‘냉탕’이었다면 전 ‘뻥쟁이’가 되는 거죠.”
LG트윈스 감독으로 지낸 시간 동안 ‘비난’과 ‘비판’이란 단어를 안고 산 탓인지는 몰라도 이 위원은 유독 자신을 향한 ‘시선’에 대해 신경을 썼다. ‘비난 해설’이란 명칭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선수들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가 단순한 비난으로만 보여지는 게 싫은 까닭이다.
“솔직히 ‘비난 해설’이란 타이틀을 경계하고 두려워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 비난이 다 제게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전 비난을 위한 비난은 안 합니다. 논리와 타당성이 충분히 뒷받침되는 비난을 하려고 노력하거든요. 더그아웃을 벗어나 중계석에서 야구를 보니까 전에 보이지 않던 부분들까지 눈에 들어와요. 선수들의 문제점이 보이는데 그냥 넘어갈 수가 없잖아요.”
지난 시즌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LG 트윈스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 위원으로선 아무리 해설위원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고 해도 지난해까지 감독으로 지냈던 LG 더그아웃을 다시 찾기가 가장 어려웠을 것 같다. 알찬 해설을 위해서 경기 전 더그아웃을 돌며 감독과 선수들을 만나 정보를 얻는 게 해설위원의 보이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쉽지 않았죠. 특히 나보단 선수들이 어려웠을 거예요. 하지만 감독은 꼭 만나러 갑니다. 전력이 노출되지 않는 선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면 해설하는 데 큰 도움이 되거든요.”
▲ 네티즌들이 만든 이순철 위원 패러디물. | ||
“워낙 말씀이 없으신 분이라…. (화제를 돌려) 해설위원의 신분이다 보니 선수들에게 더 편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해요. 부담가질까봐 농담을 던지기도 하죠. 올시즌 개막일이었나? 대구에서 삼성-두산전이 열렸는데 그때 중계 해설을 맡았거든요. 경기 전에 두산 더그아웃에서 오랜만에 안상준을 만났어요. 상준이는 제가 LG에서 물러나고 미국 갔다 오니까 그새 두산으로 트레이드 됐더라구요. 상준이의 시범 경기 성적이 워낙 좋아 한마디 했죠. ‘나 있을 때는 맨날 아프던 놈이 여기(두산)선 잘 하네. 넌 배신자야’라는 농담이었어요. 그런데 다음날 인터넷 기사에 ‘넌 배신자야’라는 글이 뜨는 거예요.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이젠 선수한테 함부로 말하면 안 되겠다 싶었죠.”
이순철하면 제일 먼저 깐깐하고 까칠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솔직히 기자도 이 위원을 직접 만나기 전에는 2005년 인터뷰 소동(당시 <일요신문> ‘배칠수 생생인터뷰’에서 방송인 배칠수 씨가 LG 투수 진필중을 인터뷰하다가 훈련 시간 전에 끝내지 못하는 바람에 이순철 감독이 홍보 담당자를 불러 간접적으로 호통을 쳤었다)의 기억이 생생한 탓에 이 위원에 대한 선입견이 강했다.
“야구 외적인 부분에 대해선 그렇게 깐깐하지 않아요. 하지만 야구에 관해선 토론이든 뭐든 지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이미지가 강해 보였나? 지도자 생활하면서 오해받은 부분도 많아요. 일방적으로 오해받고 오해 당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모든 게 성적 탓이죠. 성적이 안 나오니까 이런저런 구설수에 자주 올랐죠.”
“가장 많이 쏟아졌던 비난의 내용이 이상훈, 김재현을 SK로 보낸 것과 유지현이 은퇴하고 서용빈 또한 그만두게 한 부분이었어요. 이 부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이 많을 것 같은데요.”
“아직은 그 얘기를 할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해요. 요즘 LG 팬들 유지현, 서용빈 안 찾죠? 서로 운이 안 맞았다고나 해야 할까? 누가 누굴 탓하겠습니까. 나이가 젊다 보니까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어요.”
“감독으로서 실패했다고 생각하세요?”
“중간에 잘렸으니까 실패한 거죠(웃음). 물론 처음에는 중도하차에 대해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마지막이 아니기 때문에 인정했어요. 그만두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메이저리그와 루키리그를 돌면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야구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할까요? 야구장을 벗어나 있으니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어요. 안타까움도 컸습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이어 나갔다. 2006년 6월 5일, 성적 부진과 LG 팬들의 사퇴 압력에 못 이겨 결국 LG트윈스 사령탑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이 위원에게 감독 시절 가장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물었다.
▲ LG 트윈스 감독직에서 중도하차하며 마음고생이 심했던 이순철 해설위원.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다며 오히려 겸허해한다. | ||
해태 시절 동기였던 삼성 선동열 감독에 대해 언론을 통해 도전장을 던졌던 이유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우리 선수들 자극 받으라고 한 얘기였죠. 사실 선수 구성면에선 게임이 안 되잖아요. 누가 봐도 이순철이 일부러 그런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프로야구 흥행과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해 삼성과 라이벌 관계인 것처럼 몰고 갔죠. 당시 선 감독에게 전화 걸어서 내 발언을 오해하지 말라고 얘기한 적도 있어요. 선수끼리 그런 속사정을 모르겠어요?”
이 위원은 젊은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두 차례나 거머쥔 선동열 감독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아무리 좋은 선수가 많아도 감독이 잘 아우르지 못한다면 결코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둘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선 감독이 선수 때는 카리스마가 없었거든요(웃음). 그런데 감독되고 나서 (카리스마가) 많이 보이더라구요. 야구의 70%는 투수 놀음이잖아요. 투수 출신인 선 감독이 삼성 투수들을 잘 조련하고 있는 것 같아요. 투수 분야만큼은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통해 이끌어 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인터뷰를 하며 천천히 팔각정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필’ 받으면 정상까지 올라가려 했지만(^^) 더운 날씨 탓에 정상까지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산행의 3분의 1 수준인 팔각정에 앉아 얼마 전에 있었던 SK 이만수 코치의 ‘팬티쇼’에 대한 얘기로 화제를 옮겼다.
“스포츠 종목 중 모자부터 유니폼, 신발까지 제대로 갖춰 입고 하는 운동은 야구밖에 없어요. 그래서 좀 보수적이죠. 복장에 대해선. 이만수 코치의 ‘팬티쇼’는 모양새는 좀 그랬지만 자신을 희생하면서 프로야구 흥행을 위해 몸을 던지는 모습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단 일회성으로 끝나야 하는 거죠.”
이 위원의 아내가 승마 선수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지금도 전국체전에 도 대표 선수로 참가하고 있고 지도자로 활동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외동 아들인 성곤이가 경기고에서 유격수로 활약 중인데 야구인 2세치고 성공한 선수가 흔치 않아 심히 걱정된다는 아버지의 고민도 내보였다.
마지막으로 언제쯤 현장으로 컴백할 계획이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진짜 우문이네요. 제가 가고 싶다고 가는 게 아니잖아요. 불러줘야 가는 거지. 전 길게 보고 있어요. 욕심은 많지만 마음만 앞세워 이전처럼 실패하고 싶지 않거든요. 다시 돌아간다면 (팬들에게) 욕은 많이 안 먹었으면 좋겠어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