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에 끌려가고 말았다
▲ 삼성 입단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글썽이는 이상민.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3명의 바보가 한 명의 진짜 선수를 울렸고, 수만 명의 팬이 함께 울었다.’ 이상민의 선배인 한 프로농구 구단의 코치는 이번 사건을 이렇게 요약했다. 3명의 바보는 KBL KCC 삼성이고, 진짜 선수는 바로 이상민이다.
이상민은 농구계에서 적이 없는 선수로 유명하다. 원래 말수가 없고 나서는 것을 싫어해 친절하지 않다는 인상을 주기 쉬운데 이상하게도 팬들은 물론이고 기자나 농구 선후배 사이에서 그를 욕하는 사람이 없다. ‘잘나면 씹히는’ 한국 문화에서 최고 기량에 최고 인기를 누리면서도 이상민처럼 적이 없는 경우는 정말이지 드물다.
올해 초 필자가 사전 예고도 없이 밤 늦은 시간 KCC 숙소의 방으로 불쑥 찾아갔을 때 이상민은 학부모가 된 심정, 대선배 허재 감독에게 힘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는 의무감, 삼성에서 고생하고 있는 후배 서장훈에 대한 걱정 등을 차례로 토해냈다. 어느 것 하나 진심이 아닌 대목이 없었다.
결국 이상민은 행동으로 이를 입증했다. FA 서장훈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의 연봉을 무려 1억 2000만 원이나 깎는 양보를 했다. 최하위의 수모를 당한 팀을 위해, 허재 감독을 위해, 그리고 서장훈을 위해 자신이 희생한 것이다. 광고 출연을 통한 연봉 보상이 있건 없건 자존심을 버린 ‘이상민 다운’ 행동이었다.
그때 이상민은 이렇게 말했다. “(서)장훈이만 FA가 아니에요. 저도 올시즌이 끝나면 자유계약선수가 돼요(웃음). 하하 하지만 전 무슨 일이 있어도 KCC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허재 형이나 (강)동희 형처럼 말년에 이 팀, 저 팀으로 옮겨 다니고 싶지 않거든요.”
▲ 삼성 유니폼을 입은 이상민. 왼쪽은 안준호 감독이고 오른쪽은 조승연 단장. | ||
KCC는 악법에 저항을 하든 아니면 다른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이는 향후 다른 구단들도 마찬가지다). 즉 규정을 개정하지 못한다면 당초 이상민 대신 임재현을 보호선수에서 제외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삼성과 협의해 구단의 역사와도 같은 프랜차이즈 스타를 데려가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하지만 KCC는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부렸다. 애써 잡은 임재현을 제외하면 가드왕국 삼성이 데려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곧 삼성이 임재현을 데려가 트레이드한다는 소문이 돌자 이상민으로 방향을 바꿨다. 삼성이 이상민만은 찍지 않을 것으로 낙관했던 것이다.
이에 삼성은 처음에는 이상민이 아닌 다른 선수에다가 2008신인드래프트 지명권을 요구했다. KCC가 이를 받아들였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KCC는 거부했다. 5월 28, 29일 양일간 삼성의 요구에 응하지 않던 KCC는 분위기가 이상함을 직감하고 30일 오전 뒤늦게 신인지명권을 주겠다고 부랴부랴 말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약이 오른 삼성은 ‘슈퍼 KCC’에 대한 다른 구단들의 반감에 힘을 얻어 이상민 지명을 단행했다.
KCC의 고위 관계자는 “30일 오전 전화를 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말했으나 삼성 측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보도자료를 내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KCC 구단이 삼성에 고자세를 보이고 있는 동안 서장훈 추승균은 안준호 삼성 감독에게 전화를 해 “제발 (이)상민이형은 찍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구단 고위층과 프런트가 선수들만도 못한 것이다.
삼성도 비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삼성 측은 “프로구단으로 당연한 결정”이라고 얘기하지만 최소한의 동업자 정신도 없다는 야유가 들끓고 있다. 이상민이 대승적으로 수용해서 그렇지 만약 잠시 고민했던 것처럼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은퇴를 선언했다면 삼성은 아예 보상선수를 한 명도 얻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었다.
이상민을 위로하는 반면, KBL KCC 삼성을 비난하는 네티즌들은 5월 30일을 ‘한국 농구의 참사’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유병철 스포츠 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