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가 놓친 남자 지켜보던 이들 있었다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된 B 씨는 구치소에서 ‘범인이 더 있다’는 편지를 피해자 가족 측에 보냈다.
“잊을 수가 없다. 웃통을 훌렁 까고 찬물을 끼얹어도 식지 않는 것처럼, 이대로는 이 못된 상처를 떠나보낼 수 없다.” 시간은 하릴없이 흘러갔지만, 부부는 여전히 아들의 사진을 꺼내면 눈물을 쏟는다. 식욕이 없어 체중은 줄고, 약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잠도 잘 수 없다.
“제 동생, 제 처남이라고 생각하고 조사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겠습니다.” 그런 부부 앞에 한 형사가 나타났다. 그는 아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수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아들이 숨진 지 7개월 만이었다.
숨진 아들인 박준호 씨(당시 32)는 지난해 5월 23일, 부산 사하구 하단 2동의 한 노래방에서 새벽까지 후배 2명을 만나고 있었다. 노래방에서 나온 뒤 박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남성 일행과 마주쳤다. 그런데 그 중 두 명의 남성이 “왜 쳐다보냐”는 이유로 시비를 걸었다. 분위기는 험악해져 갔다.
당시 상황이 기록된 CCTV를 보면, 김 씨 일행 가운데 한 명은 박 씨를 넘어뜨린 뒤 무릎으로 머리를 가격했다. 박 씨가 바닥에 쓰러지자 얼굴과 머리를 또 다른 일행이 발로 찼다. 후배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간 박 씨는 이상증세를 보이며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박 씨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수술로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담당 의사는 가족들에게 “망치나 몽둥이 등 둔기로 맞은 것처럼 머리에 심한 충격이 가해졌다”고 말했다. 8일 뒤, 박 씨의 호흡이 멈췄다.
부산 사하경찰서는 폭행 사건 하루 만인 5월 24일 새벽, CCTV에 폭행 장면이 찍힌 2명을 긴급 체포했다.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나머지 일행 3명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경찰은 이들에 대해 범행 가담에 대한 진술이나 증거를 찾지 못했다. 앞서 구속된 폭행 가해자 A 씨(24)와 B 씨(22)를 검찰에 중상해 등 혐의로 송치했고 검찰은 박 씨가 사망한 이후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지난해 11월 27일 오전, 법원은 A 씨와 B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점, 젊은 나이라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판시했다. 징역 3년은 상해치사죄의 최저 형량이다. 가해자 A 씨와 B 씨는 재판이 끝난 직후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박 씨의 아버지는 재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의심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는 “경찰 수사가 미흡했다고 생각했다. 폭행 가해자는 분명 한 명이 더 있었다. 둘이 아니라 셋이서 집단 폭행을 한 것이다”라며 “처음 수사 과정에서부터 폭행 가담자가 더 있다는 정황이 나왔지만 당시 경찰은 A 씨와 B 씨가 ‘폭행은 둘이서만 했다’고 진술한 점, ‘증거가 없다’는 점을 들며 손을 놨다”고 말했다.
실제로 앞서의 CCTV와 다른 각도에서 촬영된 화면을 보면, 구속된 A 씨 일행 중 한 명이었던 C 씨의 발이 쓰러진 박 씨 머리 가까운 곳에서 허공에 올랐다 내려오는 장면이 포착된다. 박 씨의 아버지는 앞서 1심 재판 과정에서 해당 CCTV 화면을 직접 영상 판독 기관에 의뢰해 느린 화면으로 편집해 경찰에 제출했지만, 영상 분석을 맡은 국과수는 “가격하는 순간은 사각지대에 가려 화면에 잡히지 않는다. 폭행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법원도 같은 이유로 C 씨에 대한 혐의를 기각했다. 박 씨의 아버지는 지난해 12월 중순, 항소심 진행과 동시에 재조사와 수사팀 교체를 요구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김영수 경사를 만나게 된다.
CCTV가 증거로 인정받지 못하자 남은 것은 ‘핵심 목격자’뿐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번화가 사거리였다. 박 씨의 아버지와 김 경사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목격자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건 현장을 수십 차례 방문하면서 주변 상인들을 찾아 “폭행 장면을 목격한 적 있나”라며 물었다. 거듭된 방문에 조용히 귀띔을 해주는 상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직접 목격했다고 주장한 상인도 나왔다. 이들은 “때린 건 세 명이었는데 왜 둘만 구속됐냐”며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박 씨 아버지가 “이 사실을 경찰에 직접 진술해달라”고 부탁하자 상인들은 손사래를 치기 시작했다. 김 경사가 직접 부탁하면 말을 더욱 아꼈다. “C 씨가 ‘주먹’으로 해당 지역을 휘어잡고 있어, 보복이 두렵다”는 이유였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조사된 또 다른 목격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박 씨의 아버지가 직접 찾아가 진술을 부탁하자 “혹시 모를 보복이 두렵다”며 거부했다. 목격자는 점차 늘어나지만 법적 효력을 갖춘 핵심 진술이 없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재수사가 시작된 지 4개월이 지났고, 어느덧 항소심도 선고 일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사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공범이 있다”는 양심고백이 나온 것.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B 씨는 경찰과 피해자 가족들의 추적으로 목격자가 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박 씨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C 씨가 선배라 보복이 두려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늦었지만 용서를 구하고 싶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 씨의 아버지는 “편지에는 1심 재판부 과정을 비롯해 모든 상황을 바꿀 만한 구체적 진술이 들어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B 씨의 편지를 보면, C 씨는 두 손으로 박 씨의 무릎을 잡아 넘어뜨렸고, 그 직후 B 씨는 일행이 말리는 과정에서 폭행 장면은 보지 못했으나 ‘퍽’하는 큰 소리를 들었다는 등 사건 발생 당시 C 씨가 숨진 박 씨와 함께 CCTV 사각지대로 들어간 이후와 도주한 상황이 묘사돼 있다. B 씨는 또한 함께 구속된 A 씨가 “C 씨는 현재 폭력 등의 혐의로 집행유예 기간이다” “공범이 늘어나면 형이 가중된다. 모르는 척하라”며 은폐를 지시한 사실도 고백했다.
공범에 대한 양심고백과 은폐 정황까지 나오자, 확인 과정은 모두 김 경사의 몫이었다. 형량을 줄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거짓 진술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경사는 대질신문부터 현장을 꼼꼼히 분석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양심고백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목격자들은 용기를 내 경찰에 진술을 하기도 했다. 일부 상인은 1심 재판부터 A 씨와 B 씨 측이 “박 씨가 술에 많이 취해 스스로 넘어져 머리를 다쳤다”고 주장한 사실에 대해 항소심 재판장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 씨는 그 날 술을 마시지 않았다“며 주장을 뒤집기도 했다.
이후 B 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김 경사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려 영장을 발부했다. 이후 C 씨는 지난 19일, 상해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박 씨의 아버지는 “C 씨는 1심 재판이 기각된 이후 보란 듯이 자신의 SNS에 골프장 방문 사진 등을 게시하며 ‘살았다’ ‘운이 좋았다. 앞으로 착하게 살아야지’라는 글을 올렸다”며 “여기에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B 씨를 찾아가 ‘조용히 있으면 나중에 후하게 대접해 주겠다’고 말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런 정황들을 알게 된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김 경사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혼자 4개월간 포기하지 않고 한 사건만 추적하면서 눈총도 많이 받고 고생을 많이 했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건 항소심 선고일은 오는 5월 4일이다. 이날 C 씨의 기소 여부가 선고에 반영될 예정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