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귀환’ 환호와 차가운 시선 교차
문대성 앞에 놓인 산은 많을 뿐 아니라 험난하기도 하다. 간추리자면 (1)국내 올림픽대표선발 예선전(이하 국내 예선전) 출전자격 획득, (2)올림픽 세계 예선전 등에서 한국선수의 출전권 확보 (3)국내 예선전(1·2차) 통과 (4)국내 최종전(토너먼트) 통과 (5)올림픽 최종라운드 우승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모두 5단계의 험난한 여정이다.
가장 먼저 문대성은 국내 대회에 출전해 기록을 남겨야 한다. 지난 5월 부산시태권도협회에 선수 등록을 했지만 2004년 전국체전 이후 공식전적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예선전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최근 2년간 전국대회에서 3위 이내에 입상한 성적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문대성은 오는 9월 실업연맹최강전에서 3위 이상의 성적을 올려야 한다.
또 이 사이 헤비급 후배들이 국제대회에 나가 올림픽 출전권을 따 와야 한다(2). 9월 말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리는 베이징올림픽 세계예선대회나 11월 아시아예선대회(우승)에 출전하는 선수가 일정 성적 이상(보통 3위 이내)을 거둬야 한국이 출전 티켓을 가질 수 있다. 만에 하나 티켓 확보 자체에 실패하면 한국은 남자 헤비급에 출전할 수 없다.
(1), (2)단계를 통과하면 문대성은 오는 11월 시작되는 두 차례 국내 예선전을 치러야 한다. 3위 이내에 들어야 다음 단계로 진출할 수 있다. 물론 문대성이 국내 예선전을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대한태권도협회가 국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최종전 출전 자격을 줄 수 있다. 2004아테네올림픽 당시 신준식이 이 같은 특별 추천을 받은 전례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문대성에 대한 특혜를 놓고 큰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4)최종전과 (5)올림픽진출 최종 라운드다. 최종전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고, 특히 최종 라운드는 이번부터 올림픽 티켓을 따온 선수에게 1승의 프리미엄을 주는 까닭에 그만큼 문대성에게 불리하다.
2006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김학환(26·한국가스공사)을 필두로 2007세계선수권 3위 남윤배(20·한국체대)와 고교생 국가대표 경력을 가진 허준녕(경희대) 등 쟁쟁한 후배들은 “문대성 선배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대성의 소속팀 감독이자 아테네올림픽 사령탑이었던 김세혁 삼성에스원 감독도 “문제는 올림픽 본선이 아닌 국내 선발 절차다. 아테네올림픽 때도 간신히 태극마크를 달았던 문대성이 3년 공백과 각종 불리함을 깨고 최종 올림픽 티켓을 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평가했다.
또 한국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한다고 해도 최근 남자 헤비급 강자들이 많아 문대성의 우승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문대성은 복귀 기자회견에서 “설령 올림픽에 나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태권도 인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권도계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로 도전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대한태권도협회의 양진방 전무도 “좋게 봐줘야 한다. 현실에 안위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의미 있는 도전이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섣불리 도전했다가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줬을 경우 태권 영웅의 이미지가 실추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태권도 선수 출신의 태권도 전문 미디어 <무카스뉴스> 한혜진 기자는 “문대성은 복귀 선언 한 달 전 방송 인터뷰에서 후배들을 위해 아름다운 은퇴를 택했다고 말한 바 있다. 선수 등록도 5월이 아닌 복귀 기자회견 2주 전이었다는 의혹도 있다. 객관적으로 협회의 도움 없이는 국내 대표선발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을 무시한, 욕심이 앞선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라고 우려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문대성이 올 초 김운용 전 IOC위원을 찾아가 식사를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문대성은 김운용 회장이 ‘잘나가던’ 시절에도 따로 방문한 적이 없다. 아테네올림픽 이후 국민스타가 됐지만 이후 인생의 목표를 찾지 못하던 문대성이 IOC선수위원을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해 ‘올림픽 2연패 도전’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IOC선수위원은 내년 베이징올림픽 직후에 결정된다.
이런 지적에 대해 문대성은 <일요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어렵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스포츠의 매력이 목표를 정하고 이에 도전하는 것 아닌가. 경기력은 직접 몸으로 뛰면서 보여주겠다. IOC선수위원도 목표이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욕심 내지는 않는다. 김운용 전 IOC위원을 만난 것은 개인적인 감사 표시였다”고 설명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문대성은 지난 5월 베이징 세계선수권 때부터 복귀를 심각하게 고민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회 현장에서 말리의 케이타가 우승하는 것을 지켜본 문대성은 자신의 기술이면 1년 뒤 올림픽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이후 대한태권도협회가 논란 끝에 남자 헤비급(80kg 이상)을 올림픽 출전체급으로 결정했고, 문대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복귀를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협회와 사전 조율이 있지 않았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현재 부산 동아대에서 훈련 중인 문대성은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있다. 요즘 태권도계 분위기상 특별 대접을 받으며 올림픽에 나갈 생각은 없다. 후배들과 당당히 겨뤄 올림픽에 도전하겠다.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다부지게 말했다.
유병철 스포츠 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