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들 지도자로 잘 컸을 때 ‘뿌듯’
▲ 타고난 승부사 5년간의 야인생활을 끝내고 SK 사령탑으로 돌아온 김성근 감독. 올 시즌 팀을 선두로 끌어올리며 지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사진=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SK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65). 창단 이래 최다인 11연승을 달리며 7월 6일 현재 프로야구 1위 자리를 확실하게 선점한 김 감독은 지난 6월 28일 개인통산 900승 고지를 밟는 감격을 누렸다. 900승은 1476승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난 삼성 라이온즈 김응용 사장에 이은 두 번째 대기록. 1984년 OB사령탑을 맡은 이래 태평양(1989~1990)-삼성(1991~1992)-쌍방울(1996~1999)-LG(2001~2002) 등을 거치며 ‘저니맨 감독’이란 불명예스런 타이틀도 안았다. 물론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다.
지난해 10월 5년간의 야인 생활을 끝내고 SK 사령탑으로 돌아온 김성근 감독은 기존의 강한 카리스마를 잠시 뒤로 감추고 스포테인먼트를 내건 구단과 함께 호흡하며 몸소 많은 변화를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8개팀 중 가장 많이 훈련을 시키는 감독, 철저한 데이터 야구, ‘벌떼 마운드’ 운용, 악착같은 승부사 기질 등은 김 감독의 고정화된 이미지를 크게 바꿔놓지 않았다.
그래도 세월의 흐름에 ‘고독한 승부사’도 조금씩 외형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웃음이 많아지고 한층 넉넉한 분위기를 풍겼으며 출퇴근시 셔츠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 등 이전 스타일과는 많은 차이가 났다. 모처럼 쉬는 월요일, 기자와 인터뷰하러 나온 김 감독은 역시 청바지 차림의 ‘젊은 청년’ 모드였다.
형식적인 멘트가 아닌 진심을 담아 김성근 감독의 900승 기록을 축하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감독 오래 하다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기록”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록에는 수많은 선수들의 땀과 노력이 담겨 있다며 먼저 선수들에 대한 고마움을 피력했다.
“며칠 전 김현욱(삼성 코치)이가 전화를 해선 ‘감독님 축하드립니다’라고 하기에 이건(900승) 내 게 아니라고 말했어. 정명원(현대 코치)한테도 ‘너 때문에 40승은 이뤘다’라고 했지. 김경문(두산 감독), 박철순, 최창호, 박정현, 신윤호 등 많은 선수들이 내 밑에서 고생해서 이룬 결과물이야. 만족하냐고? 무슨 소리.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
김 감독은 900승이란 커다란 그릇보다는 여기까지 오면서 1승, 1승을 올린 그 과정이 훨씬 더 값지고 소중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이런 멘트로 기자의 감정선을 울린다.
“난 900승이란 게 별로 와 닿지가 않아. 내가 제일 기쁘고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 알아? 내 밑에서 참고 견뎌낸 선수들이 야구장 밖에서 헤매지 않고 야구장 안에서 아마추어와 프로팀 감독과 지도자로 활약하는 모습을 볼 때야. 내 나이에 1승이 뭐가 중요하겠어? 훌륭한 지도자, 인격적으로 완성된 지도자가 많이 나와야 우리나라 야구가 더 발전하는 거잖아. 난 그런 지도자들을 많이 키우고 싶어.”
자연스럽게 SK에서 수석코치로 활동 중인 이만수 코치에 대한 화제로 옮겨갔다. 올시즌 전 제주도에서 가진 인터뷰 때 김 감독은 이 코치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많은 ‘노하우’들을 전수하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게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제주캠프에서 선수들과 첫 대면한 이만수가 대뜸 한 말이 있었지. ‘감독님, 이 선수들 데리고 어떻게 야구를 합니까?’라고. 만수 입장에선 참으로 오랜만에 한국 프로야구에 다시 발을 내딛으며 많은 꿈과 포부가 있었을 거야. 미국에서 배운 것도 많고 선수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도 많았을 것이고. 그런데 막상 선수들을 대하니까 막막했던 거지. 그래서 캠프 마지막 날, 내 방으로 불러서 처음으로 뭐라고 좀 했어. 지도자는 그때 평가가 아니라 지금의 걸 기준으로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가지고 있는 재료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건 지도자가 아니라고 말이야.”
김 감독은 이만수 코치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코치가 ‘팬티 퍼포먼스’를 할 때 그는 모른 척하면서도 유심히 지켜봤다. 모든 걸 본인의 판단에 맡겼고 좋고 나쁨을 스스로 터득하길 바랐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김 감독은 티 내지 않고 몰아갔다. 지도자답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 무엇인지를 엄하게 가르치기도 했고 공격적으로 내몰기도 했다.
▲ 지난 4월 홈 개막전에서 시구를 한 후 이만수 코치의 축하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 ||
이 코치 얘기가 나온 김에 항간에 떠도는 ‘김성근 후임 감독설’에 대해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구단과의 2년 계약이 끝나면 김성근 감독에서 이만수 코치 체제로 가는 건가요?”
“그건 내가 터치할 문제가 아니야. 구단에서 할 일이지. 그리고 만수가 얼마나 잘 하느냐가 중요해. 본인한테 달려있는 거라구.”
“혹시 구단에서 (김 감독과) 재계약을 요구한다면요?”
“나? 난 안하기 쉬울 걸? 그때 상황봐야 알겠지만 나이도 있고, 또…. 계약이 끝나면 아마 다른 포스트에서 일하고 있을 거야. 난 SK에 처음 올 때 기반만 만들어 줄 생각이었어. 세대교체를 시켜주고 팀 컬러만 바꿔주면 내 임무는 끝난 거야. 그런데 이 기자, 이런 얘기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 아니야?”
김 감독이 걸어온 지도자 인생은 ‘변방’이었다. 하위팀, 전력이 약한 팀, 상처받은 팀들을 맡아서 우승을 못 시켰어도 그들을 상위팀으로 끌어올리며 ‘김성근의 매직’을 보여준 ‘미다스의 손’이었다.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갔다고 정리할 수 있다. 올시즌 1위를 달리고 있는 SK도 지난해엔 6위에 그친 팀이다. 선수들 구성원의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김 감독이 부임 첫 해 SK를 1위로 올려 놓은 것. 김 감독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선 겸손을 버리고 대단한 긍지를 나타냈다.
“시즌 전에 코치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어. ‘나 혼자서도 SK를 4강에 올려 놓을 수 있다’고. 하지만 너희(코치)들이 창의력과 잠재력을 발휘해서 한번 만들어 봐라, 난 뒤에서 지켜보겠다고만 했지. 그런데 4월엔 잘나가다가 5월 중순 이후부터 삐거덕거리기 시작하는 거야. 이때부턴 그냥 지켜볼 수만 없었어.”
김 감독은 자신이 태만했다고 먼저 반성했다. 처음엔 성적이 워낙 좋아서 뭐가 나쁜지를 몰랐는데, 연장전 패, 1점차 패가 이어지면서 성적이 곤두박질치자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6월부터 다시 나서기 시작했다는 그는 투수들과 개인 면담도 하고 방망이가 살아나지 않는 선수들을 데려다 밤늦게까지 특타훈련을 시키는 등 이전의 ‘혹사 감독’으로의 부활을 선전포고했다.
“사람들은 나더러 자꾸 혹사, 혹사 하는데 밖에서만 그렇게 말하지 말고 직접 들어와서 보라고 말하고 싶어. 김성근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직접 와서 보라고 말이야. 혹사당했다고 하는 선수들, 과연 그들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그들이 왜 전성기 때처럼 공을 던지지 못하는지, 혹시 사생활엔 문제가 없었는지, 아니면 기자들이 모르는 무슨 속사정이 있었는지, 그걸 다 알고서 하는 얘기냐구. 난 결단코 내 입지를 위해, 팀 성적만을 위해 선수들을 다그친 적이 없었어. 그들이 야구로 먹고 살려면 어떻게 해서든 뛰게 만들어줘야 하잖아. 사람의 능력은 파면 팔수록, 노력하면 할수록 발휘되는 법이야. 선수 자신들조차 몰랐던 능력을 개발시켜주려는 것인데 왜 그게 혹사시키는 거냐구?”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 패한 후 1년만 더 하면 확실한 팀 컬러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었지. 그런데 자꾸 위에서 압력이 들어오더라구. 난 단세포동물인데다 성질이 더러워서 누가 간섭하면 튕겨져 나가거든. 그걸 뻔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꾸 들어오려고 하니까 힘들었지. 주위의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감독을 흔들면 팀은 망가지는 거야.”
김 감독은 술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특히 야구 관계자들과의 술자리는 일부러 피한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오해와 억측이 뒤따른다.
“이전 해태 2군 감독으로 있을 때 1군 감독이었던 김응용이 때문에 슬픈 일이 참 많았어. 그 친구는 잘 모를 거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참으로 초라했지 뭐. 그때 혼자서 술을 많이 마시러 다녔어. 야구 관계자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 가서 혼자 술 먹고 노래 부르고 놀았어. 일본 롯데 지바 시절에도 엄청 속상한 일이 많았어. (이)승엽이가 성적을 못내니까 발렌타인 감독한테도 미안하고 선수들 보기도 멋쩍고, 무엇보다 승엽이가 힘들어하니까 가슴이 아프고, 하여튼 여러 가지로 부대꼈지. 그땐 매일 술집으로 직행했어. 물론 혼자서. 그래도 그렇게 감독이 아닌 코치나 트레이너로 있는 시간 동안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 힘들어도 웃고 좋아도 웃고 항상 웃으려고 했어. 인상쓰면 상대 안 해주니까.”
옛날에는 무조건 승부에만 집착했다고 한다. 뒤돌아 볼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관중들을 생각하고 팬 서비스를 떠올린다. 관중이 적으면 괜한 걱정과 문제점들을 떠올리며 체크에 들어간단다. 이런 부분에선 김 감독 자신도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우승에 목마른 SK 팬들에게 김 감독은 올시즌 어떤 선물을 줄 수 있을까. 그걸 마지막 질문으로 던졌다.
“앞으로 한 번의 고비가 더 올 거야. 나와 선수들이 얼마만큼 그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지. 선발이 안정되지 않으면 단기전에선 힘들어. 아무리 정규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뭐해? 포스트시즌이 중요한 거잖아. 난 SK를 코리안시리즈에 올라가서 싸울 수 있는 팀으로 만든다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해. 내 후임자가 그 결과를 완성시키면 되는 거구.”
김 감독은 결코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워낙 ‘잘리는 데’ 이골이 난 경력 탓인지 어느 질문에도 대답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가정도 건강도 사생활도 모두 저당 잡히고 오로지 야구만 알고 살아온 인생이었기에 그는 이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당당할 것만 같다.
부산에서 만났던 롯데 정수근이 이런 말을 했었다. “SK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똑같은 야구를 해도 그들은 너무 재미있게 야구를 한다”며 잔뜩 부러움을 나타낸 그 말이 잊혀지질 않는다. 다른 팀 선수들이 부러워하는 팀이 지금의 SK이고 그 중심에는 김성근 감독이 있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